• 주간한국 :[로비스트] '제3의 권력' 로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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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7 16:52:00


  • 하나뿐인 산의 최정상에 가장 먼저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찾는 피말리는 싸움. 바로 그것이 현대의 ‘로비 전쟁’(Lobby War)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로비는 ‘견제와 균형’을 깨고 ‘꼴찌를 으뜸’으로 뒤바꿀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그래서 입법·사법·행정 3부로 이뤄진 현대 국가조직에서 로비는 ‘필요악’일 수 밖에 없다. 로비의 힘은 때론 ‘100만의 군대보다 강하다’고 할 만큼 엄청나다. 그래서 로비는 ‘보이지 않는 권력’또는 미국 상·하원에 빗대어 ‘제 3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46년 연방로비스트법을 제정하면서 ‘로비 망국론’까지 제기했을 정도다. 리스트 정치 등 최근 국내의 저급한 로비 행태가 잇따라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사활을 건 물밑 경쟁을 벌이는 국내외 로비스트들의 세계를 추적해 본다.



    검찰의 옷로비 의혹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올 7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뒷편 한 사무실에서 조촐한 창립 행사가 열렸다. ‘투명한 로비 문화 정착’을 표방하는 국내 첫 전문 로비스트회사가 간판을 내건 것이다.

    전 대통령비서실 공보담당특별 보좌관이 대표이사, 전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이 상임이사를 맡았다. 그리고 전 내무부장관과 대구광역시장을 역임한 J씨, 안기부 제2특보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낸 K씨, 모방송국 보도본부장을 역임한 B씨, 동아그룹부회장과 대한통운 사장을 지냈던 A씨등 정·재계와 언론계, 관계의 내로라하는 인사 30여명이 고문과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려 놓았다.

    잇단 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이 회사는 심심치 않게 언론에 소개돼 국내 기업과 단체 사이에선 꽤나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나 설립 5개월이 지난 이 회사의 업무는 일반 이벤트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이 해외를 상대로한 기업 PR 뿐이다. 국내 기업과 이익단체, 지자체들이 로비행위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해 의뢰를 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직 국내에서 로비는 ‘불법적이고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국내에는 로비 활동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전무할 뿐아니라 로비에 대한 전문 인력 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음지에서 커 온 국내 로비 문화가 양지로 나온다는 것은 현 상황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전관예우·안면에 의존하는 한국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차장급 출신인 A씨는 공직을 나온 뒤 국영기업체에서 2년간 근무하다 지난해말부터 모재벌 그룹의 고문으로 위촉됐다. 대우는 계열사 부사장급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오전 회사에 들러 일간 신문을 읽고 여비서를 통해 일일 상황 보고 정도만 체크하고는 오후 일찍 사무실을 나선다. 결재나 간부회의 등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직책은 고문이지만 회사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완전히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간혹 그룹 회장 비서실측에서 정부나 의회를 상대로 그룹 차원의 민원이나 로비가 필요할 때에만 연락이 온다. 그것이 그의 업무의 전부다. ‘국회 재경위를 통하려면 어느 의원과 접촉하는게 좋다’‘서울시가 추진하는 관급공사를 따내려면 아무개 국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식이다. 그룹내에서 마땅한 로비 인물이 없으면 A씨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A씨의 오후 주된 일과는 예전 몸담았던 곳의 선·후배들과 향우회, 동창회 등을 통해 소개받은 정계 인사들과의 끈끈한 인연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했던 동료나 선·후배라도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인맥은 평소 특별한 일이 없을 때 더욱 열심히 챙겨야 한다”는게 그가 터득한 나름대로의 인맥 유지 전략이다. 그의 전략은 ‘전관예우’와 ‘인맥’에 의존하는 한국적 로비스트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엔 진정한 로비스트가 없다



    우리나라는 로비로 안되는 일이 거의 없는 나라이지만 진정한 로비스트가 없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정·관계 유력자들과 선이 닿는 사람들을 골라 금품과 이권을 미끼로 은밀한 밀거래를 성사시키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 성공하면 달콤한 ‘로맨스’가 되지만 발각되면 ‘검은 스캔들’로 관련 인사들이 줄줄이 매장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로비 부재는 외교 활동에서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76년 한·미간에 외교적 마찰까지 일으켰던 ‘코리아 게이트’사건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미국 지미 카터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자 정상적인 외교 루트를 배제한 채 중앙정보부와 함께 대리인 박동선씨를 내세워 미의원들에게 1인당 75만~95만 달러의 뇌물을 주는 불법 로비를 벌이다 적발된 것이다. 미국 본토도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다분히 한국적인 로비의 전형이었다.

    구 소련의 붕괴로 팍스 아메리카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미(對美) 로비는 그야말로 불꽃튀는 물밑 전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뉴라운드 협상을 앞두고 세계무역기구(WTO)의 맹주국인 미국을 상대로한 로비 활동은 절정에 달해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인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에 따르면 미의회나 행정부처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펴고 있는 단체는 100여개국 2,00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자국의 농산물 보호등과 같은 통상 외교를 비롯해 교역 증진, 외환지원, 무기계약, 원조증액, 내전지원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뉴라운드 앞둔 미국은 ‘로비 전쟁터’



    최근 대미 로비에 열중인 나라는 캐나다 멕시코 일본 영국 대만 이스라엘 중국 인도네시아 아이티 등이다.

    일본은 그간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을 비롯해 로널드 브라운 상무장관 등 거물급 정부관리 출신을 로비스트로 채용해 자국 이익 보호에 나서고 있다. 또 돈 본커, 전하원의원, 마크 앤드루스 전상원의원과 같은 의원들외에 변호사 컨설턴트와 같은 법률회사, 학계 인사들을 채용해 연간 6억~7억달러의 자금을 무차별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중국도 약점인 인권문제와 최혜국대우 연장을 위해 이글버거 전 국무장관, 제임스 릴리 전 주중대사, 칼라 힐스 전 미무역대표부(USTR)대표 등 초호화 전현직 관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북경 당국은 보잉사나 AT&T와 같은 미국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 물품을 구입할 때 중국 로비 비용을 분담시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활용하는 지혜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의 대미 로비가 수위를 높여가면서 미국내에서 로비회사는 전에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97년 1만2,960명이었던 로비 고객의 수는 지난해 21%가 늘어난 1만5,705명으로 증가했다. 로비 비용도 97년 10억6,000만달러에서 14억2,000만달러로 무려 40%나 급증했다. 이에따라 미의회에 등록된 로비스트도 97년 1만4,946명에서 1년만에 37%가 늘어난 2만512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국익 위한 전략적 로비에 힘써야



    로비회사의 호황은 많은 전·현직 거물 공직자와 의원들이 관직과 기업 로비스트 사이를 넘나드는 이른바 ‘회전문현상’을 일으키는 병폐마저 생기고 있다. “미국은 더이상 국가가 아니라 로비스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한 위원회에 불과하다”는 가시돋힌 비판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최근 미국을 공포에 떨게하는 총기난사를 막는 총기단속법이나, 금연법, 보험법, 의약법 등이 이익 집단의 로비로 무산되는 심각한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미의회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로비공개법을 더욱 강화, 로비스트에 대한 관리와 향응의 범위를 축소하는 보완책을 실시했으나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본래 로비(Lobby)의 사전적 의미는 영국이나 미국 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이 원외인사들과 접견하는 별실을 뜻한다. 별실에서 이뤄진 로비의 부정적인 시각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변한 현대사회에서 로비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은 이권에 매달려 검은 돈과 줄대기에만 의존하는 우리의 ‘중개브로커’ 수준이나 ‘안방 로비 싸움’에서 벗어나 이제 국가적 이익을 위한 전략적 로비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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