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로비스트] '치마폭 로비'에 남자들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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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7 17:12:00


  • 95년 로브 라이너 감독이 만든 ‘대통령의 연인’은 미국 대통령과 그의 애인이자 로비스트인 한 여인과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멜로 영화다. 차기 재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총기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하는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

    이에 맞서 환경관련법을 의회에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의 애인이자 로비스트인 아네트 베닝. 결국 미국 대통령은 베닝의 요구에 따라 총기법 상정을 포기하고 만다. 비록 영화지만 여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남자 움직이는 것은 ‘여자’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고, 그런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여자’라는 말이 있듯 로비 세계에서도 여성은 종종 남자보다 휠씬 효과적인 로비를 수행한다. 이스라엘 영국과 함께 대미 로비 강국인 대만이 대미 외교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장지에스(蔣介石)의 부인인 쑹메이링(宋美玲) 여사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로비계에서의 여성의 파워는 실로 엄청나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고속철도 사업도 바로 강귀희(65·노이폼하우스대표)라는 한국의 한 여성에 의해 결정됐다. 숙명여대 2년때 초대 미스코리아가 될 만큼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던 강씨는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 37세에 홀홀단신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르 서울’이라는 한식당을 차려 프랑스 정·재계 유력 인사들과 교분을 다졌다. 이중에는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같은 거물급 정치인들이 즐비해 국내에서도 그의 명성이 알려질

    정도였다. 강씨는 75년 이런 인맥을 통해 동아건설이 르노사 트럭을 수주하도록 하는 사업을 성사시켜 총매수금 580만달러의 5%인 29만달러를 에이전트 비용으로 받는 등 크고 작은 계약을 성사시켰다.

    강씨의 로비력이 프랑스내에서도 인정을 받으면서 83년 프랑스의 유력기업인 알스톰사로부터 한국의 고속철도 건설에 떼제베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초대형 에이전트 의뢰를 받게 된다.

    강씨는 당시 알스톰사와 총 수주액의 5%(3%의 정치자금과 기타 제비용 포함)를 커미션으로 받는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후 강씨는 85년 전두환대통령 내외의 프랑스 방문시 이순자여사에게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며 환심을 끌었다. 또 프랑스와 국내 인맥을 활용해 크레송 여성총리를 차기 대통령인 노태우씨와 면담토록 주선하는 등 활발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





    고속철도 로비전, 여성로비스트가 승리

    그러나 경쟁사인 독일 ICE와 연계된 미국 벡텔사의 강력한 반대 로비로 수차례 위기를 겪었다. 벡텔사는 노태우 대통령이 평소 신세를 많이 진 미국의 슐츠 전 국무장관을 앞세워 조건이 좋았던 떼제베를 제치고 고속철도 사업권을 따내려고 전방위 로비전을 펼쳤다. 또 김종필씨를 비롯해 박태준포철회장, 김윤환의원 등은 일본 신간선을 지지, 치열한 3파전이 펼쳐졌다.

    입찰이 3차례나 유찰되면서 강씨는 알스톰사로부터 에이전트 사퇴 압박까지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강씨는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자신의 경북여고 후배인 김옥숙여사를 찾아가 떼제베를 선택하도록 해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이때 강씨는 “정치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요”라고 정치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운을 띄워 다급해진 상황에 돌파구를 열기도 했다. 강씨는 당시 조선호텔 17층에 있는 VIP룸에서 장기 투숙하면서 국내 고위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다.

    강씨는 호텔에서 전화할 때도 경쟁사의 도청이 있을 것을 우려, 암호로만 이야기를 주고 받는 치밀함을 보였다. 결국 강씨의 12년에 걸친 노력끝에 알스톰사는 총 수주액 21억달러에 떼제베를 공급하는 대신 차세대기술 한국 전수, 22억달러의 차관 제공 등의 조건으로 고속철도 사업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당초 계약에 따르면 강씨는 총액 21억달러의 5%인 1억500만달러(약 840억원·당시 환율)를 커미션으로 받아 이중 3%인 6,300만달러를 정치자금과 제반 경비로 내주고 나머지 4,200만달러(약 336억원)를 챙길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 ‘로비스트의 신화가된 여자’에서 자신은 국익을 위해 커미션 대부분을 포기, 단 200만달러(약 16억원)만 받았다고 기술했다.

    국내의 어느 로비스트도 감히 나서지 못했던 대한민국 최대의 사업이 한 여인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사업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요인 때문에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여성이었기에 더 유리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90년대들어 여성로비스트 급증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자 로비스트는 9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80년대 워싱턴에 등록된 여자 로비스트가 단 3명에 불과했으나 95년에는 35명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100명에 가까울 정도로 증가했다. 로비의 대상이 대부분 남자라는 점이 바로 여성 로비스트의 증가를 불러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별다른 적대감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남자들끼리는 할 수 없는 깊은 관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실제 여성 로비스트와 정·관계 고위인사들이 단순히 로비스트와 로비 대상의 관계를 넘어 불륜까지 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지난해 프랑스 정가는 롤랑 뒤마(77) 헌법위원회위원장이 90년대 중반 외무장관 재직시절 여성 로비스트와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포옹하고 있는 사진이 일간지에 폭로되면서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 섹스 스캔들의 여주인공은 프랑스 최대 석유화학그룹인 엘프사가 무기판매와 관련해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 고용한 여성 로비스트 크리스틴 드비에르 종쿠르(51)였다. 그녀는 당시 뒤마 장관의 공보담당으로 재직하면서 엘프사의 로비스트로 포섭됐다. 결국 그녀는 미테랑대통령이 반대했던 1,100만달러 상당의 프리깃함 6대를 대만에 판매하는 사업을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98년 구속돼 수사를 받았는데 그녀의 은행 계좌를 추격한 결과 엘프사로부터 제공된 자금이 무려 5,900만 프랑(약 160억원)이나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니트람’‘오르르’‘네르시브’‘시시’등과 같이 서양 언어에는 없는 이름으로된 그녀의 스위스은행 계좌중 일부가 엘리제궁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또 한번 프랑스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종쿠르는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공화국의 창녀’에서 뒤마와의 섹스 스캔들을 털어 놓았다. 한 노정객의 말로가 섹스 스캔들로 참혹하게 짓밟힌 것이다.





    섹스스캔들로 이어지는 경우 많아



    ‘슬픔이여 안녕’(54년 발표)의 프랑스 여류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63)은 93년 9월7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그리움을 표현하는 한편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말미에 ‘저의 우정에 대한 믿음과 ‘마타하리’로서 이 마지막 임무에 대한 용서를 당신께 부탁드립니다’며 글을 맺었다.

    사강은 올해초 르몽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거액의 커미션을 받고 92년부터 2년여간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미테랑에게 사업 청탁을 해 일을 성사시켰다고 폭로했다.

    르몽드지는 미테랑도 사강에게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마타하리로서가 아니라 ‘짓궂은 소녀’로서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대부분의 청탁을 들어줬다고 전했다.

    로비의 생명은 돈과 인맥이다. 그러나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베갯머리 로비’만큼 저비용으로 확실한 위력을 발휘하는 로비도 없다. 또 대부분이 여성의 의견대로 결말이 난다는 점도 ‘베갯머리 로비’의 특징이다.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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