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로비스트] 투명성이 '로비 천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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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7 17:15:00


  • 올 4월 미국을 방문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어깨는 무거웠다. 중국이 13년간 씨름을 해 온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중국의 수입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외국기업의 중국내 활동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언질을 해왔지만 아직 자신할 수 없던 터였다. 더구나 당시 미국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핵기술을 훔쳐간 사실을 조사한 ‘콕스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반중국 감정이 높아져 있었다.

    주룽지 총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내심 중국에 WTO 회원국 자리를 내 줄 의향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울러 클린턴 대통령이 의회 반중국파와 노동조합의 반대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감잡고 있었다. 때문에 주 총리는 ‘클린턴의 입지를 키워줄 방법’을 궁리했다. 적어도 WTO 문제에서는 클린턴을 돕는 것이 중국을 돕는 것이었다.





    '로비는 정당한 기업의 홍보행위'인식



    주 총리의 묘안은 ‘이상 빠오웨이 궈후이(以商包圍國會)’였다. ‘기업인을 이용해 의회를 포위한다’는 심산이었다. 중국의 WTO가입으로 가장 이득을 볼 기업인들로 하여금 중국을 대신해 대의회 로비에 나서게 한다는 것이다. 기업인은 미 의원들의 중요한 헌금창구다. 당연히 재계는 의회의 1순위 압력단체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주 총리의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미국 주요 도시를 순방하면서 가는 곳마다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파티와 간담회를 열어 뜻을 넌지시 비친 것이다. 계략은 맞아 떨어졌다. 중국은 마침내 지난달 15일 미국과의 협상에서 WTO 가입을 약속받았다.

    미국은 ‘로비의 나라’로 불린다. 로비가 그만큼 양성화해 있고 공공연히 행해진다는 말이다. 로비는 더이상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정당한 홍보행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이 가능한 것은 로비행위가 철저한 감시의 대상이 되고, 통제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물론 미국에서 로비가 처음부터 곱게 보인 것은 아니다. 로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로비스트는 ‘1830년 경 연방의회나 주의회 로비에서 서성대는 사람’을 일컫는데서 왔다. 특정인이나 이익집단의 부탁을 받고 입법과정과 정부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관련자들을 만나기 위해) 의회나 관청 로비에서 서성대는 사람이다.

    미국 연방 차원에서 로비 관련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6년. 이른바 ‘연방 로비규제법’을 제정해 로비스트의 등록과 활동내용 보고를 의무화했다. 미헌법 수정조항 1조가 규정한 청원권의 한 형태로 수용하되, 그 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90년대 초반 이 법에 따라 워싱턴 지역에서 로비스트로 정식 등록된 사람은 6,000여명. 로비규제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인적 정보를 기재해 의회에 보고한 사람의 숫자다.

    하지만 이 법은 예외조항이 너무 많아 실효성에 대한 회의가 많았다. 아울러 로비를 받는 당사자인 의회의원이나 정부 관리에 대한 규제가 약해 빈틈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의회는 95년 12월19일 기존 법을 대폭 강화해 로비스트의 개념을 크게 넓혔다. 이 법의 규정에 따르면 로비스트로 등록해야 하는 사람은 기존의 6,000여명 보다 3배에서, 최고 10배까지 늘어나게 된다.





    법적 규제와 철저한 시민감시



    새 법이 규정한 로비의 개념은 ‘정책입안자나 결정자와의 직접적인 접촉 뿐 아니라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로비스트는 ‘업무 시간의 최소 20%를 의원, 의원사무실 요원, 정부관리와 접촉하는데 보내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로비대상에는 의원과 정부관리 뿐 아니라 6,000여명에 달하는 의원 보좌관도 포함된다.

    로비스트를 고용한 개인과 단체에도 보고 의무를 지웠다. 하지만 6개월 동안 5,000달러 미만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개인이나 2만달러 미만의 단체는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로비의 3각관계를 형성하는 고객, 로비스트, 의원 등 로비의 대상자를 모두 규제대상에 넣은 셈이다.

    현재 로비스트들은 새 법에 따라 상하원 사무처에 자신을 등록하고, 일년에 두차례 자신들의 고객과 고객의 위탁내용, 로비대상 정부기관을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로비의 대가로 받는 사례금의 대체적인 액수도 밝혀야 한다. 이 법은 또 로비대상에 대한 범위규정도 확대했다. 기존의 법이 로비활동의 대상을 의회로 한정한데 비해 새 법은 행정부도 포함시켰다. 아울러 변호사에 대한 예외조항을 없애고 대신, 일의 성격에 따라 로비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로비 규제법과 표리관계를 보이는 것이 ‘의원 선물수수 금지법’이다. 하원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식사 포함)의 범위를 한차례 50달러 이내로 제한하고 품목도 23개로 못을 박은 것이다. 의회가 자체 제정한 이 법을 어긴 의원은 윤리위에 회부돼 처벌받게 된다. 이 의원이 다음 선거에서 재당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로비에는 행위자와 대상자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같이 양날의 규제대책을 세우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물론 이 법의 제정에는 의원들의 선물수수 관행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의원들이 로비스트에게 받는 대가는 크게 선거자금과 각종 선물, 공짜 식사 등이다. 새 법의 규정에 따라 선물과 식사는 제한을 받지만 선거자금은 그렇지 않다. 선거자금법은 단체의 기부금 액수에는 한계가 두고 있지만 개인은 기부금을 무제한 낼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자금 내역을 선거 후 모조리 공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견제기능은 발휘할 수 있다.



    군수업 분야가 가장 치열한 로비대상



    로비스트 중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집단 중 하나는 행정부 전직 관리들. 재직시 맺어 놓은 인간관계와 재직중에 얻은 내부 정보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관예우’와 비슷한 현상도 있다. 퇴직한 공직자가 기업체 간부나 로비스트로 자리를 옮기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 빈번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강화된 로비 규제법은 여기에도 메스를 댔다.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부대표 역임자는 종신토록 외국을 위한 로비활동을 못하게 했다. 행정부 임명직 관리와 연봉 10만6,000달러 이상의 고위관리들은 퇴직 후 1년간 행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활동을 제한받는다. 최근 사직한 제임스 루빈 전 재무장관이 다국적 금융그룹인 씨티코프에 중역으로 들어가 빈축을 산 것도 이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로비의 천국인 미국에서도 로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의는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경쟁 정신과 로비가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테제 때문이다. 로비를 홍보를 포함한 정당한 기업행위의 한 형태로 보는 측과 불공정 행위로 보는 시각이 대립되고 있는 것이다.

    냉전종식 후 미국에서 로비가 가장 뜨거웠던 분야는 군수업이다. 국방비 절감 차원에서 무기구매를 줄이자 이를 막기 위해 군수업체들이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수업체들은 한편으로는 군사이론가들을 동원해 자신들에 유리한 군사이론을 만들어 내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구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을 비롯한 의회 실력자들의 출신주 군수업체들이 기존의 생산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로비가 성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정책과 의회의 입법이 상식을 허무는 파격으로 나타날 수 없도록 감시하는 시민의식 때문이다. 로비를 정상적인 채널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법적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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