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롯데그룹의 안과 밖] 1등주의로 무장한 '사무라이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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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7 18:27:00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다른 재벌그룹 총수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른 풍모를 지녔다. 우선 신회장은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성공한 기업가이다. 열아홉살이던 1941년 맨주먹으로 일본에 건너간지 58년만에 일본에서는 ‘일본 롯데’를, 한국에서는 ‘한국 롯데’를 재계의 선두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신회장은 또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사업을 하기 때문인지 이름이 둘이다. 한국에서는 ‘신격호(辛格浩)’라고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는 ‘무사적(武士的)’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을 사용한다.







    1등 못할 사업엔 손도 안대



    흥미로운 것은 신회장의 경영 스타일 역시 ‘사무라이 경영’이라는 말을 연상시킬 정도로 다분히 ‘무사적’이라는 점. 신회장은 ‘단칼에 적의 목을 베는’ 사무라이처럼 의사결정의 끊고 맺음이 분명하며, 1등을 하지 못할 사업에는 아예 눈을 돌리지 않는다. 또 사무라이가 적을 만나면 완전히 섬멸하는 것처럼 일단 시작한 사업은 철저하게 ‘1등주의’를 고수한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 롯데제과, 호텔롯데 등의 면면과 경영전략은 ‘사무라이 경영’그 자체이다. 이들 3개 기업은 각각의 업종에서 명실상부한 1위업체이면서도 다른 경쟁회사들이 ‘1위기업의 물량공세가 너무 심하다’고 반발할 정도로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우선 롯데백화점과 할인점 부문의 마그넷을 거느리고 있는 롯데쇼핑. 롯데쇼핑은 99년 추정 매출액이 2위인 신세계(3조원 가량·E마트 매출 포함)보다 1조2,000억원이나 많은 4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여전히 경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98년 이후 대형 아파트나 고급 승용차 등 다른 업체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막대한 물량과, 고가의 경품을 내걸어 유통업계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았다. 특히 지난달에는 경쟁업체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 ‘창립 20주년 성원감사 초특급 경매대전’의 일환으로 경기 용인 수지의 48평과 32평 아파트를 저가에 내놓는 물량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또 신세계그룹의 E마트에 비해 열세인 할인점부문에 대해서도 5년안에 50개의 점포를 개설한다는 목표아래 전국 요지의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서는 “롯데가 지방 유통업체를 모두 잡아 먹으려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이다.

    롯데제과와 롯데삼강이 버티고 있는 제과와 음료, 빙과부문에서도 롯데그룹의 독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빙과부문에서는 ‘형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롯데제과와 롯데삼강이 가장 강력한 적수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요컨대 연간 8,000억~9,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빙과시장을 놓고 롯데제과(점유율 38%)와 롯데삼강(16%)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계 컨소시엄의 해태음료 인수와 관련, 코카콜라와 제일제당 등 경쟁업체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미 ‘경험법칙’으로 확인된 롯데의 ‘사무라이식 경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그룹 관계자는 “56년부터 66년까지 10년동안 일본 껌시장을 놓고 세계 최대의 껌 메이커인 미국 리글리사와 싸움을 벌여 승리한뒤 신회장은 철저하게 ‘1등 주의’를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제끼리도 예외없는 '맺고 끊기'



    끊고 맺는 것이 정확한 신회장 특유의 ‘사무라이 경영’은 철호, 춘호, 준호 등 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회장은 67년 고국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이전까지 자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던 동생들과 갈등을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신회장은 67년 롯데제과의 공동 소유자로 등기되어 있던 둘째 동생 철호씨와 갈등을 빚은뒤 철호씨를 롯데에서 독립시켰다.

    또 73년에는 새우깡과 농심라면으로 유명한 농심의 신춘호 회장도 자신 명의로 되어 있던, 서울 명동의 유명한 중국집인 ‘아서원’ 부지를 놓고 신격호 회장과 갈등을 빚은뒤 전격적으로 롯데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

    재산을 둘러싼 신격호 회장과 동생들과의 다툼은 96년에도 벌어졌다.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공장터 3,600여평의 소유권을 놓고 막내동생이자 롯데그룹 부회장이던 준호씨와 법정소송을 벌인 것이다. 당시 준호씨는 “양평동 땅은 부친이 물려준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했으며, 신회장은 “명의신탁한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동생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맞섰다.

    물론 신격호 회장과 동생들은 나중에 모두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분쟁과정에서 보여준 신회장의 단호한 입장은 신회장 특유의 성정(性情)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롯데그룹의 후계구도와 관련해서도 신회장은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한다’라는 확실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흔희 신회장의 두 아들중 장남인 동주씨에게는 ‘한국 롯데’를, 둘째 아들인 동빈씨에게는 ‘일본 롯데’의 경영권이 승계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신회장이 그룹의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으므로 ‘롯데의 후계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오로지 신회장만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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