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다 벗은 검찰, 판도라 상자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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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7 18:15:00


  • 99년 12월4일 오후 10시25분. 대한민국 최고 사정기관인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11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눈길과 카메라 플래시가 작열했지만 정작 이날의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태정 전 법무장관. 불과 6개월전만해도 우리나라 최고 사정기관의 총수로, 법무행정의 총책임자로 승승장구했지만 서울구치소에 입감될 구속피의자로 처지가 바뀌어 있었다.

    김씨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잠시 허공을 쳐다본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특유의 큰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현관을 빠져나가 구치소행 승용차에 올랐다. 대검청사는 수사팀만 제외하고 대부분 서둘러 퇴근해버려 오히려 을씨년한 분위기였으며 신승남 대검차장만이 1층로비 구석에 서서 착찹한 심경으로 배웅해주었을 뿐이었다.





    파란많은 27년 검찰인생 ‘옷바람’에 추락



    파국으로 끝나버린 김씨의 27년 검찰인생은 부침과 반전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인 연정희씨는 김씨가 출세하는데 숨은 공로자였지만 결국 옷로비의혹 사건에 휘말려 김씨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김씨는 사법시험 합격후 진해에서 해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던중 평범한 집안의 고교졸업 학력의 연씨를 만나 결혼했다. 사시합격자라면 배우자를 고를 때도 학력과 배경을 따지던 당시 풍토를 고려하면 이들의 결혼은 파격적이었다. 김씨는 사석에서 “오로지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사랑이 지극하다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말이다.

    호남출신인 김씨의 검사생활은 순탄치는 않았다. 서울이나 지방검찰청 본청은 커녕 지청만 6번이나 맴도는 서러움을 겪었다. 김씨는 그 때를 회고하면서 ‘팔도검사’라고 말하며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82년 김석휘 당시 검찰총장의 눈에 띄어 의정부지청 부장검사에서 일약 대검 중수부 3과장으로 발탁되면서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김씨는 선이 굵은 일처리와 특유의 친화력, 낙천적인 성격 등을 바탕으로 중수1과장, 서울지검 특수3부장, 특수1부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중수부장, 법무부 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쳐 김영삼정부 시절인 97년 8월7일 검찰총장에 올랐다.

    김씨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능력과 처세술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씨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씨는 모 검찰총장집에서 열릴 예정인 부부동반모임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다른 검사부인들과 일하다 허술한 옷차림 등으로 인해 총장부인이 파출부로 오해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남편내조에 충실했다.

    김씨는 검찰총장으로 있으면서 대선전 정국의 뇌관이었던 ‘DJ비자금의혹사건’에 대한 수사를 전격적으로 유보하는 ‘도박’을 감행,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김씨는 부인의 옷로비의혹 관련설에도 불구하고 올해 5월 법무장관으로 영전했으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까지 터지자 여론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불과 보름만에 경질되고 말았고 결국 총장·법무장관 출신으로는 건국이래 최초로 구속되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초토화된 검찰“이제부터 반격이다”



    얼마전까지 모시던 총수를 자신들의 손으로 수감시킨 검찰은 한마디로 줄초상을 치른듯 주말동안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수뇌부와 검찰은 전직 총장까지 구속시킨 마당에 더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관계자는 “수사의 흐름을 잘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검찰은 일단 김씨를 상대로 옷로비의혹사건 내사 최초보고서의 입수경위와 작성자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최종 타깃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전회장과 부인 이형자씨, 신동아그룹 로비스트로 알려진 박시언씨 등이라는 것이 정치권과 서초동 주변의 분석이다. 특히 김씨가 고백한대로 검찰총장을 협박할 정도인 신동아그룹측 인사들의 로비실체에 대해서는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당초 신동아그룹 최전회장 사법처리를 앞두고 많은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압력을 행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수감된 김씨를 설득하거나 추궁하거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가능한 밝혀내겠다는 입장이다.

    여론도 신동아측 로비스트인 박시언씨의 등장과 이형자씨의 거짓말의혹이 드러나면서 신동아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다 검찰내에서도 김씨에게만 십자가를 지게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씨가 기밀문서를 박씨에게 넘겨준 것은 경솔한 행동이었지만 신동아측의 무차별 로비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김씨는 아직 최전회장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한 실체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심경변화를 일으켜 이름을 거명할 경우 정국은 그야말로 한치앞을 가늠할 수 없는 혼돈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 ‘경제논리 걸림돌’어떻게 치우나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든 검찰내에서는 특수부팀들의 위축을 불러올 수 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검찰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재벌비리에 대한 수사는 전방위 로비는 물론 ‘경제우선’논리에 번번히 제동이 걸릴 때가 많아 법대로 처리하기가 어렵다”며 “물론 김씨가 올바르게 처신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총장 출신과 청와대 법무비서관까지 날라갈 정도인데 어느 검사가 (재벌비리를) 수사하는데 적극성을 보이겠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최 전회장 수사를 담당했던 문영호 대구지검 2차장도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최전회장에 대해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수뇌부의 지시에 밀려 한동안 수사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며 “내가 홍성지청장으로 전보발령이 나자 ‘신동아측이 만세를 불렀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초동 주변에서는 김씨 구속으로 이어진 이번 옷로비의혹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옷로비의혹사건 내사 최종보고서에서 최전회장의 구속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밝혀진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96년 서울지검 특수2부장 시절 출입기자들과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른바 안보논리와 경제논리다. 이것에 걸리면 법이 무색해질 때가 많다.”3년후에 터질 서경원 전의원 1만달러 수수사건과 옷로비의혹사건을 예견한 걸까.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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