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편집실에서] 불행이 반전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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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8 11:15:00
  •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61년 육군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씨가 63년 8월30일 대장으로 전역하면서 한 연설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는 79년 10월26일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피살될 때까지 철권통치를 했습니다. 그의 ‘불운한 군인’론이 나라를 구하기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한 당시 현실을 탓한 것이지, 아니면 쿠데타를 일으켜 본 장본인으로서 앞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군인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경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는 구국의 일념으로 쿠데타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물러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부인을 총탄에 잃고 자신도 부하의 총에 맞아 비명에 갔으니 불운을 넘어 불행한 군인이었습니다.

    또 그의 기대와는 달리 두명의 불행한 군인, 전두환 노태우씨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박정희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 ‘김태정씨 같은 불행한 검찰총장 법무장관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냈습니다. 그와 그에 대한 수사를 지휘한 박순용 검찰총장, 그와 함께 조사를 받은 박주선 전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세사람은 DJ비자금사건 수사진이었습니다.

    당시 세사람은 총장 중수부장 수사기획관으로 ‘즉각 수사하라’는 여당의 압력에도 불구, 수사유보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당시 상황으로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용됐습니다. 김 전총장은 올 1월의 대전법조비리사건과 옷로비 의혹사건에도 불구, 5월 법무장관에 발탁됐습니다. 이에 앞서 4월에는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탄핵은 부결됐으나 찬성이 많았습니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검사가 검사를, 경찰이 경찰을 수사하고,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전 검찰총장·법무장관을 피의자로 조사하고, 구속시킨 상황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들의 잘못을 떠나 그같은 일이 벌어진 우리의 현실 때문입니다.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치욕’‘침통’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번 치욕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김 전총장 등입니다. 그러나 크게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지 못한 검찰 조직과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치인에게도 그 책임이 있습니다.

    김 전총장의 추락은 물러날 줄을 아는 지혜와 ‘만사(萬事)인 인사(人事)가 망사(亡事)’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김 전총장이 물러날 기회는 여러번 있었습니다. 대전법조비리사건, 옷로비사건,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등입니다. 물론 그는 사의를 표명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승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옷로비 의혹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대통령은 김 전총장에 대한 신임을 강조하듯 법무장관으로 영전시켰습니다. 대통령의 사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데 대한 반성이자 이번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수사가 일련의 사건전개 과정을 속속들이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사람의 사법처리로 사건이 마무리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로비 과정, 외압시비를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김 전총장은 신동아그룹 외화유출사건 수사 때 외압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수사가 납득할만한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앞으로 틈만 나면 불거질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 ‘김태정 리스트’입니다. 그동안 숱하게 나돌았던 리스트들이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으면서 툭하면 불거지지 않았습니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됩니다.

    국민들은 검찰총장에게 외압을 가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하고 무척이나 궁금해 합니다. 리스트는 의혹으로 발전하기 십상입니다. 이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검찰은 더이상 추락할 곳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검찰이 신뢰를 되찾도록 해야합니다. 검찰 스스로는 물론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검찰에게는 이번 불행이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jr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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