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그래, 너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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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8 10:31:00


  • “그래, 너 많이 컸다.” 충무로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자랑스럽다, 축하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에는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있다.

    시기와 질투의 감정도 묻어있다. 보잘 것 없었거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이던 동료들이 어느날 스타가돼 어깨가 뻣뻣해지고, 목에 힘이 들어가가 거만해 졌을때 영화인들은 “많이 컸다”는 말로 뒤틀린 심사를 표현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다.

    충무로 뿐 아니라 우리사회에 만연한 벼락 출세와 그에 따른 겸손함의 상실을 반영하는 냉소이다.

    특히 충무로에 이런 말이 자주 들리는 것은 하루아침에 영화 한편으로 스타가 되고, 스타가 되면 모든 투자자와 제작자가 매달리고, 매스컴들이 미친듯이 추켜 세우는 풍토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날 스타가 된 사람을 만나면 태도가 달라 무안하거나 화가 난다. 스타니까 당연히 가치가 높아졌고, 당연히 헤프게 보일 수 없고, 당연히 무명이나 신인 때와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연기자로서 제작자로서의 무게와 책임이지 인간적인 거만함은 아닐 것이다.

    먼저 배우 P씨. 그가 러시아에서 공부를 하다 ‘유리’란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는 너무나 진지하고 정직해 보였다. 물론 겸손했다. 자기는 가장 인간적인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삭발한 머리에 예사롭지 않은 눈빛. 장차 스타가 될 징후는 농후했다. 영화는 실패해도 그는 TV드라마를 거쳐 스타가 됐다. 멜로배우로 최고가 됐다.

    불과 2년만. 그 ‘불과 2년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을 기억조차 못했다. “누군데 아는체 하지?”란 말을 얼굴에 쓰면서“누구시죠?”그는 비록 말로 한 약속이지만 최근 ‘아나키스트’의 출연을 번복해 영화사, 영화를 우롱했다. 이유야 어떻든 로케현장인 중국 상하이까지 다녀오고서는 다른 영화를 하겠다는 얘기. 인간적인 연기가 인가다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지.

    그런 그를 “얼싸 좋아라”하고 받아준 제작자 C씨. 운좋게 첫 영화가 사회상황과 맞아 성공해 지금은 그는 흥행영화제작자로 자리잡았다. 제작현장에서부터 고생한 그가 강조했던 것은 늘 바닥에서 고생하는 영화인들, 그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의 ‘의리’였다. “나는 삼마이(건달)이다. 그래서 인간적 관계와 의리가 소중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출연을 번복한 배우를 쓰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막강한 힘을 가진 시네마서비스에 맞서 제작과 배급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힘을 합치기로 해 놓고는 다른 한손으로 시네마서비스와 손을 잡았다. 의리보다는 돈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느 TV프로그램이 그를 한국 제1의 제작자로 과장하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된 얘기지만 C씨만큼 “많이 컸다”는 얘길 들은 배우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스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동안 한국의 액션영화는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고, 모든 시나리오가 그를 염두에 두고 쓰여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감독에게 조차 난감해할 정도로 촬영현장을 자기식대로 끌고 나갔고, 그래서 한동안 그가 주연한 영화를 놓고 ‘C가 감독이다 ’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최근에는 여배우 J까지 그런 모습이다. 출연하는 영화가 연속 흥행에 성공하자 그의 매니저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인터뷰하러 가기 어렵다. 그러니 다른 데서 인터뷰할 때 찾아와서 해라.” J 역시 흥행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듯 불과 1년전의 “이 영화 잘되야 하니 잘 봐 주세요”란 말이 “흥행에 염두를 두고 하지 않았다”로 바뀌었고, 분명 부족한 연기임에도 전혀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스타가 되면 모두 이런가. 그건 아니다. 배우 안성기씨는 인기가 높을수록 자신을 낮췄고, 출연료도 너무 많다며 스스로 깎았다. 이런 선배를 바보로 아는 영화판의 많이 스타들. 물론 말하는 사람의 사적 감정도 있지만 “그래, 너 많이 컸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자신들이 줄어들고 있음을 아는지. 옛날처럼 왜소해 졌을 때 그 사실을 깨닫거나, 아니면 영원히 모를 바보가 충무로에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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