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땅이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狎鷗亭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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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2.08 10:33:00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조선조 때 세도가 한명회의 정자인 압구정동이 있었는데서 비롯된 땅이름이다. 정확히 오늘날 압구정동 산 301번지 3호 언덕바지였다. 동호대교 남쪽 끝자락의 뚝섬 쪽으로 돌출한 벼랑위 였으니 구정(鷗亭)초등학교 뒤쪽 현대아파트 74동자리쯤 될 것 같다.

    ‘압구정’이란 ‘친할 압(狎)’과 ‘갈매기 구(鷗)’ 곧, ‘벼슬을 버리고 강촌에 묻혀 갈매기와 친한다’는 뜻의 정자다.

    그러나 이 정자의 주인공인 한명회는 정난(靖難), 좌익(佐翼), 익대(翊戴), 좌리(佐理)의 네 개를 겸한 공신이요, 세조 성종 두 임금을 들여 세웠으며, 예종 성종의 국구(國舅)로서 영의정으로 평생동안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다.

    그는 송나라 정승 한충헌이 임금을 들여 세운 공을 흉내내어 자신을 한충헌에 비겼고 또, 한충헌의 정자가 압구정인 것을 본 떠, 명나라 한림학사 예겸에게 청하여 압구정을 자신의 정자 이름으로 삼은 전형적인 사대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재물을 몹시 밝혀 탐욕하였고, 주색을 즐겼으며, 널리 여러 집들을 점유, 첩을 많이 두어 사치가 극에 달하였다. 그가 권자에 있는 동안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빠짐없이 정자에 초대, 잔치를 베풀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왕만 쓰게 되어 있는 용봉(龍鳳)차일을 이 압구정에 쳐서 호사의 극치를 맛보려다가 성종의 눈 밖에 나고 대간이 그를 탄핵하기도 하였다.

    압구정의 잔치에는 수령, 방백들이 보낸 선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친해보고자 했던 갈매기는 한명회의 기심(欺心: 자기의 양심을 속임)을 알았던지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아 ‘친할 압(狎)’ 대신 ‘누를 압(押)’자를 써서 ‘압구정(押鷗亭)’으로 비아냥돼 불러기도 했다.

    ‘임금이 하루에 세번씩/ 은근히 불러보아 총애가 흐뭇하나/ 정자가 있으되와서 노는 주인 없구나/ 가슴 가운데 기심만 끊어졌다면/ 비록 벼슬바다 앞이라도/ 갈매기와 친압(親狎)할 수 있으려만’ 최경지(崔敬止)라는 선비가 한명회의 위선과 부귀를 풍자한 글이다.

    우리 한자에 집을 보통 집 ‘가(家)’자로 쓴다. ‘가(家)’자는 ‘ ’와 ‘豕’의 합성문자다. 말하자면 돼지(豕)가 비를 안맞을 정도의 집( )이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人)이 살기 ‘좋은(吉)’집을 ‘人+吉’=집 ‘사(舍)’로 쓴다.

    그런데 집이 사치스러울 때 흔히들 집 ‘옥(屋)’자로 쓴다. ‘옥(屋)’는 주검 ‘시(尸)’자와 이를 ‘치(至)’자의 합성문자. 집이 사치스러우면 ‘죽음(尸)에 이른다(至)’는 뜻으로 재물에 대한 탐욕이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압구정은 한명회의 의도대로 새와 친하지도 못했고 또, 새가 날아오지도 않았으므로 ‘구(鷗)’자에서 새(鳥)를 빼면 ‘압구(狎區)’가 된다.

    서울에서도 가장 고급아파트(屋)가 줄을 지어 늘어선 지금의 압구정동은 이름 그대로 강남구를 ‘압구(押區)’하면서 강남땅의 노른자위가 되어 있다. 일부 부유층들이 압구정동의 내력을 외면한채 그의 영화와 부귀만을 재현하며 사치의 극을 달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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