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어제와 오늘] 그래도 ‘상기하자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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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0.06.27 16:56:14 | 수정시간 : 2000.06.27 16:56:14
  • [어제와 오늘] 그래도 ‘상기하자 6·25’



    ‘6·15 남북공동선언’이후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눈 ‘6·25’는 어떻게 불려야 하나.

    서울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벌어진 50주년 기념식에는 ‘6·25 전쟁’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국방부가 1953년에 낸 전쟁기록에는 ‘한국동란’으로 돼 있다.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쟁 참전 광장에서 읽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기념 성명 제목은 ‘한국전쟁 50주년’이었다.

    ‘6·25 전쟁’과 ‘한국전쟁’간에 차이는 있는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이 전쟁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상기하자 6·25’라는 대목이 한 곳에도 없다.

    “이제 6월은 통한의 달이 아니다. 6월은 희망의 달이 되어야 한다.” “6·25의 원인은 100여년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조상들의 무능에 있다. ” “그건 스탈린의 음모에서 비롯됐다.” “주한 미군은 통일 후에도 동아시아 안보를 위해 주둔해야 한다. ”등 미래 지향적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은 잊어버리자는 투다.

    클린턴 대통령의 성명에서는 이 전쟁이 ‘잊어 버릴 수 있는 전쟁’은 아니다.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할 전쟁’이다. 한반도 남쪽에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총 200만명의 미군이 투입된 이 전쟁은 잊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의회는 6월 25일을 한국전쟁 반발 50주년 기념일로 지정했다.

    또한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한국 참전 용사의 정전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기로 했다. 미국은 여지껏 ‘Forgotten War’(잊혀진 전쟁)로 불리던 이 전쟁을 ‘not forgotten War’(잊혀지지 않은 전쟁)로 바꾸고 이를 지키려 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관한 인터넷 웹사이트 ‘Korea War Project.com’을 운영하고 있는 한 베이커(텍사스주 거주)는 한국 국방부가 ‘6·25전쟁 50주년’행사후 참전용사들의 시가행진을 중단키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코멘트를 했다. “또다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잊으려고 하는가.”

    베이커는 1951년 10월 ‘단장의 능선’에서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를 구하려다 실패한 해병대 구조 헬기 조종사 에드워드 소령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구하지 못한 해병 헬리콥터 조종사 아서 드레이서 소위를 기리는 “드레이서, ‘당신은 잊혀질 수 없다.’”는 홈 페이지를 만든 장본인이다.

    미국의 언론, 역사학자, 참전용사들은 한국전쟁에 관해 여러가지 수식어를 붙인다. 워싱턴 포스트의 스티브 보겔 기자는 50주년을 맞아 워싱턴 주변에 생존해 있는 10여명의 참전용사를 만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 전쟁은 “준비안된 전쟁’이었다고.

    1950년 7월 7일 오산의 죽미령 고개에서 33대의 T-34 북한군 탱크를 보았던 스미스 기동타격대 칼 버너드(74) 소위는 이를 실감나게 증언했다. “미군만 보면 북한군은 도망갈 것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그러나 탱크를 향해 2.6인치 바주카포를 쏘아댔지만 탱크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많은 병사들은 바주카포 조차 다룰 줄 몰랐다. 그런데도 바주카포 소리만 들어도 적은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엔군이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할때까지 2만756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1994년 미 국방부가 최종 집계한 전사자는 3만3.652명. 3,262명은 병사하거나 사고로 죽었다. 3년의 전쟁 치고는 큰 희생이었다.

    그래선지 CBS TV의 마이클 위레스는 “1,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에는 그 전쟁을 상징하는 노래가 있지만(베트남전의 경우 ‘모든 꽃들은 베트남에서 사라졌나’) 한국전에는 이를 상징하는 노래마저 없다”고 평했다.

    지난 5월 ‘맥아더의 전쟁-한국 전쟁과 한 미국영웅의 실패’라는 책을 낸 스탠리 와인드라우브는 “거의 잊혀졌던 이 전쟁은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이다”고 썼다.

    소위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그는 제2차 대전에 관해 2권의 저서와 ‘디스렐리’에 관한 자서전을 쓴 펜실베니아 대학 역사학 석좌교수다.

    그는 적어도 한국전 발발에서 맥아더 해임까지 11개월은 “맥아더의 고집과 세계전략속에 덜 훈련된, 전투력이 부족한 군대가 밀고 밀리며 해낸 엉망의 전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전쟁을 동란으로 보든, 전쟁으로 보든 적어도 한민족 200만명 이상이 희생된 이 전쟁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06/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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