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문화로 세상읽기] 쉬리와 축제, 그리고 남북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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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0.06.28 19:36:04 | 수정시간 : 2000.06.28 19:36:04
  • [문화로 세상읽기] 쉬리와 축제, 그리고 남북합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영화에 대한 애착과 관심.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가 영화광이고, 그래서 직접 제작까지 맡기도 했고, 남한영화를 열심히 보고, 신상옥 최은희씨 납치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남한의 감독이고, 배우이기 때문이었다고.

    국가정보기관이 일방적으로 전했던 그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다분히 악의적이고 부정적이었다. 흔히 우리나라 제벌 2세들이 가지는 호사, 호색 취미를 연상시키는 해석들.

    북한 주민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을 착취해 영화나 즐기고, 배우들과 놀아난다는 식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통치수단이고, 그가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했으며, 북한영화가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북한영화는 분명 다른 모습을 띠었다. 대사 위주, 선동과 사상교육 일색에서 탈피하며 예술적인 완성도를, 상업적 재미를 중시하는 듯했다. ‘피바다’나 ‘꽃파는 처녀’가 아니라 홍길동, 임꺽정, 안중근 같은 위인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고 내용도 최근 TV방영으로 보았듯이 ‘시뻘건’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영화라고 오락성을 무시해도 된다면 큰 착각이다. 영화가 인민들의 교화에 중요한 수단이라면 오락과 예술성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신·최 부부를 납치한 것도,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밀사’ ‘사랑 사랑 내 사랑’(춘향전) ‘소금’ ‘타출기’를 만들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일본 흥행에 성공했고, 곧 국내 극장에서 상영될 ‘불가사리’는 북한영화라는 선입견만 없다면 그야말로 가족오락용 SF물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소문대로 영화광임을 증명해주었다. 심심찮게 영화얘기를 화제로 올렸고, 남북교류중 그가 유일하게 직접 언급한 분야도 영화였다.

    그는 이번 칸영화제 본선에 나간 ‘춘향뎐’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본 한국영화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평가하기도 했다. 이것이 단순히 별난 취미일까. 그는 ‘쉬리’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합작얘기가 나오자 ‘쉬리’같은 영화는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만약 계속 그러면 우리도 그런 영화를 만들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합작 가능한 작품으로 임권택 감독의 ‘축제’를 들었다.

    ‘쉬리’는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그렸고, ‘축제’는 아니니 당연하다. 그러나 영화광이 그렇게 단순할까. 그럼 ‘쉬리’에서 북한 강경파가 남북화해의 방해자로 나오기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남북화해정책에 반발할 세력이 있다는 설정이 불쾌해서일까.

    어쩌면 전문가 수준인 그 영화광 역시 ‘쉬리’를 편하게 볼 수 없었던 일부 우리 관객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우리의 분단 현실을 멜로적 오락거리로 삼은 것에 대한.

    ‘축제’는 죽음과 장례에 관한 영화이다. 죽음과 전통장례의식의 의미를 짚어본 ‘축제’는 그 속에 한과 눈물과 화해를 담고 있다. 노인에 대한 존경, 노인이 갖는 사랑과 가족의 영속성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했듯이 오히려 북한 사회가 더욱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들이었다.

    ‘쉬리’는 한국영화 역사를 새로 쓴 최고 흥행작(500만명)이고 ‘축제’는 임권택 감독 최악의 흥행작.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작 모델로 선택한 것은 그러나 ‘축제’였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오래전부터 한국 영화는 남북 합작이나 북한 현지 촬영을 말해왔다. 남북정상회담후 다시 고개를 내민 합작추진바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이 소문만 무성하지만 ‘춘사 아리랑’ ‘명성황후’ ‘명성항후 시해사건’ ‘아버지’ 그리고 월드컵축구영화 등은 작품의 무대가 북한에까지 들어간 영화들이다.

    그러나 ‘사상 첫 북한’이란 말로 상업성이나 화제를 모으려는 생각이라면 애당초 포기하는 것이 좋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하는 ‘좋은 영화’가 아아니라면 영화의 남북교류는 정말 잘못된 일회용 ‘북한 이용하기와 특수(特需)’에 불과할 것이다. 철저한 상업성도, 사회주의 선전도구도 아닌 50년 단절을 이을 공통정서의, 어찌보면 어정쩡한 영화. 그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할리우드의 상업성에 너무 병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0/06/2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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