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부실 청문회, 이럴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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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0.07.04 20:03:27 | 수정시간 : 2000.07.04 20:03:27
  • 부실 청문회, 이럴 바에야…

    '통과의례'에 그친 총리 인사청문회, 제도 보완 시급






    6월 29일 국회는 이한동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찬성은 139표.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불참한 것을 감안하면 비(非)한나라당 표가 단 한표의 이탈도 없이 총리 인준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헌정 사상 첫 인사청문회는 ‘통과 의례’에 그쳤을 뿐 국회 표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 의원들의 표는 오로지 당략에 따라 움직였다.




    준비부실, 편들기등 미비점 속출



    이번 인사 청문회는 당초 기대에 많이 못미쳤다. 먼저 청문회 준비 기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한 사람의 20여년 가까운 행적을 조사하는 데 열흘간의 준비기간은 너무 짧았다.

    국회가 독립적 조사 능력을 갖추거나 정부에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못했던 것도 부실 청문회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인사청문회가 제 구실을 하려면 정부는 공직 후보자의 재산 상황, 납세 자료에 대한 충실한 자료를 제공해야만 한다.

    미국 등 인사청문회가 정착돼 있는 국가에서는 이 과정에서 후보자가 부적격자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 정부는 자료 제출에 너무 무성의했다. 특히 야당 특위위원들은 요구 자료의 절반도 얻지 못했다. 법률·조세·회계 등 전문가 조력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점, 청문회 대상자가 위증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게 돼 있는 점 등도 제도적 미비점으로 지적됐다.

    운용면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총리서리가 정치권 출신인 탓에 이번 인사청문회는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정파적 편들기의 도구로서만 기능했던 것. 이는 총리로서의 ‘적격성 심판’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야당 특위 위원들은 흠집 내기에 주력했고, 여당 특위위원은 해명 기회를 주려 애썼다. 야당측 위원들은 부동산 투기 의혹, 말 바꾸기, 정치적 변신 등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지만 총리 후보자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할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대진 못했다.

    여당측 일부 위원은 “20년 정치 역정동안 한번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은 비결은 무엇이냐” 등의 봐주기식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첫 사랑의 에피소드를 말해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하는 특위 위원들까지 있었다.

    때로는 고압적으로, 때로는 모르쇠로 책임을 회피한 총리후보의 답변 태도도 청문회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재산 형성과정의 의혹은 고의성이 없었다거나 부친 등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정치적 변신 등에 대해서는 당론, 또는 시대상황 탓으로 돌렸다.






    도덕성에 상처, 인지도는 높아져



    이 총리는 이틀간의 청문회를 통해 꽤 많은 것을 잃었다. 국민은 이제 ‘이한동 총리’하면 ‘말바꾸기’를 맨 먼저 떠올리게 됐다.

    당적을 옮긴 것에 대한 해명도 설득력이 모자라 ‘정치인 이한동’으로서는 두고 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부인의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의 위장 전입, 종합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던 사실 등이 드러나 도덕성에도 적잖은 흠집이 생겼다.

    물론 잃기만 한 건 아니다. 어찌됐든 인지도는 한껏 올라갔다. 혹시라도 대권까지 꿈꾸고 있다면 이는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




    무용론속 최소한의 ‘여과장치’평가



    ‘청문회 따로, 표결 따로’의 결과는 곧바로 “청문회를 해서 뭐하나”라는 ‘청문회 무용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를 있으나 마나한 요식 행사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록 그 성과가 보잘 것 없었다고 할지라도 청문회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했고, 앞으로도 계속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적지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국민은 이번 청문회에서 총리 후보자의 됨됨이, 경륜, 가치관 등을 대충은 살펴볼 수 있었다. 적나라하게 발가벗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총리 후보자가 부끄러워 할 부분들을 많이 지켜봤다.

    이는 고위 공직자의 꿈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작지 않은 가르침을 줬다. 과거의 행적과 재산 형성과정에 관해 스스로 뒤돌아보게 만들었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할 경우 크나큰 부담이 되리라는 교훈을 심어줬다.

    이는 임명권자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공직후보자를 고르는 데 종전보다는 한층 신중을 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인사청문회는 부적절한 공직 후보자를 걸러내는 최소한의 여과 장치 역할은 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공직사회가 보다 투명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최성욱 정치부기자 feelchoi@hk.co.kr

    입력시간 2000/07/0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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