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연예考試] 연예인 입문에 열병앓는 10대·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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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1.01.30 18:15:27 | 수정시간 : 2001.01.30 18:15:27
  • [연예考試] 연예인 입문에 열병앓는 10대·20대



    재수생 이수지(20)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낸다. 그러나 그가 다니는 학원은 대학입시 학원이 아니다. 대학로에 있는 서울 재즈 아카데미. 가수나 뮤지션 혹은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전문 학원이다.

    그가 등록한 보컬반의 경우 이번 분기의 수업은 각자 자신있는 노래를 연습했다가 원하는 사람에 한해 앞에 나가서 부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개는 한 소절을 넘기기 힘들다. 강사인 민금선씨가 발성, 발음, 호흡, 감정표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때로는 주눅들 만큼 혹독하게 교정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 재즈 아카데미를 찾은 것은 지난해 4월. 이유는 단하나,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다. '딴따라'학원을 다니는 데는 일체 돈을 대줄 수 없다는 부모의 반대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비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10개월동안 그는 1주일에 두번인 수업 외에도 틈나는 대로 학원에 와 노래도 듣고, 연습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협연도 했다. 강사의 지적사항을 녹음했다가 집에 가서 다시 연습도 한다.

    "무조건 TV에 매달리는 가수가 되긴 싫어요. 뜻맞는 사람과 밴드를 만들어 무대에 서고 싶어요." 물론 기회만 되면 오디션도 보고 음반도 내볼 작정이다.




    교사 디자이너에 이어 희망직업 3위



    모델 양성기관인 모델라인 56기생 정미선(21)씨와 윤서영(20)씨의 생활도 이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3개월 전부터 매일 학원에 나와 1주일에 세번은 프로모델로부터 모델의 기본인 워킹을 연습하고, 두번은 카메라 포즈 및 스타일 연출, 리듬감을 얻기 위한 재즈 댄스 등을 공부한다.

    이중 가장 힘든 건 역시 워킹. 특히 여자인 정씨는 7cm 높이의 구두를 신고 2시간 내내 걷다보면 다리가 욱신거린다. 수업도중 자주 다리를 구부리며 한숨 돌린다.

    하지만 마냥 요령을 필 수는 없다. 동기생들이 걸을 때는 벽에 어깨와 엉덩이를 붙이고 서있는 '매미'로 자세를 잡는다.

    "비틀거리지마" "가슴 펴고, 어깨 힘 빼야지" 등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강사들의 불호령은 이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때로 기합도 받는다. 그래도 재미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요"라는 윤씨의 대답은 간결하지만 확신에 차있다. 정씨는 "앙드레김 쇼에 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할 정도로 벌써 목표가 뚜렷하다.

    그를 위해서는 워킹 연습을 더 많이 하고, 약점인 허벅지 살도 더 뺄 각오다.

    이들처럼 가수나 모델, 탤런트 등 이른바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연예인 지망 열기는 특히 10대 사이에서 뜨겁다. 가히 '연예고시'라 할 정도다.

    지난해 노동부 산하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서울시내 남녀 중ㆍ고등학생 2,995명을 대상으로 희망 직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예인이 초ㆍ중 교사와 디자이너에 이어 3위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 중에 연예인 지망생이 많다.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남학생 사이에서는 연예인 보다는 프로게이머 같은 인터넷 관련 직종이 더 인기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들의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직업은 초ㆍ중 교사, 의사, 법조인의 순이었다. 연예인은 없었다.




    선발대회 오디션 열리면 응시생 '구름떼'



    단지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만 있는 건 아니다. 연예인을 희망하는 젊은층 대부분은 연예인이 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을 취한다. 각종 선발대회 및 오디션에 적극적으로 응시하고, 자신이 희망하는 분야의 학원을 다니며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지난해 10월 MBC 탤런트 29기 공채 시험에는 15명 모집에 4,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300: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응시자중 고등학생도 20%나 되었다.

    지난해 6월에 있었던 케이블 방송 m.net과 이관희 프로덕션, LG 텔레콤이 공동 주최한 '2000 카이 퓨전스타 선발대회'도 마찬가지. 가수, 탤런트, VJ 합해 모두 34팀을 뽑는 이 대회의 경쟁률 역시 VJ 한 분야의 경쟁률만 300:1을 훨씬 넘어섰다.

    선발대회나 오디션만 경쟁률이 치열한 건 아니다. 서울 재즈 아카데미나 모델라인, 연기자 양성기관인 한국방송문화원과 각 방송사 산하의 방송 아카데미 등 시험에 대비한 학원을 다니는 데도 적게는 몇대 일, 많게는 수십대 일의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모델라인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엄나래씨는 "한 기수에 14~24세의 키 180cm(남자)/170cm(여자) 이상의 조건을 가진 40명을 모집하는데 매번 100명 이상이 몰려 자체 오디션을 통해 수강생을 선발한다"고 말한다. 서울 재즈 아카데미도 분기 별로 600명 모집에 평균 3:1의 경쟁률을 보인다.

    음악이나 연기를 배우러 유학을 떠나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재즈와 대중음악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미국 보스톤의 버클리 음대의 경우 전체 학생 5,000명중 한국 유학생이 230명에 달한다. 연예계에서도 유학파들은 일반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최신 경향을 무기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단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대에 설 수 있다면 학업도 포기"



    더러는 연예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방송문화원에서 연기수업을 받고 있는 이승호(17)군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중3 때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영화감독이 될 결심을 했다는 그는 "학교에서는 연기나 영화에 대해 배울 게 없었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좋은 감독이 되려면 연기도 알아야 할 것 같아 학원에 등록했다. 주3회 학원에 나오는 것 외에 책이나 비디오를 보고 디지털 카메라로 영화도 찍어보는 등 나름대로 열심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1, 2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아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지금은 간신히 어머니의 이해는 얻었다고 한다. 같은 학원의 김영운(21)씨도 마찬가지. 대학 국문과에 입학했다가 연극동아리 활동으로 연기에 맛을 들여 학교를 휴학하고 연기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사이 뮤직 비디오에 얼굴을 내밀고 몇몇 드라마에 지나가는 사람 등으로 보조출연을 경험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시야가 넓어졌다"는 그는 얼마전 아예 연기 관련학과로 다시 대학입학원서를 냈다.

    이런 연예인 지망생 열기의 원인은 여러가지다. 일단 연예인의 사회, 경제적 조건이 변한 것을 들 수 있다. 가수 출신인 김홍탁 서울 재즈 아카데미 원장은 "친척들 중에는 아직도 나를 '노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연예인은 밥벌이를 못한다'는 고정관념의 발로다. "요즘은 물론 다르죠. 시장도 커졌고 음악이나 연기로 큰 돈을 만질 수도 있으니까요."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딴 세상 사람'에서 '일반인 중 하나'로 변한 것도 이유다. 매체가 늘어나면서 연예인에 관한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까지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되면서 연예인에 대한 신비감 혹은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mtm의 윤경일 강사팀 과장은 "요즘 애들은 어른과는 달리 누구나 연예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하나, 지금의 10대, 20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카메라와 마이크와 친하다. 겁내지 않는다. 길거리 캐스팅을 담당하는 한 매니지먼트사 직원은 "예전에는 얼굴 예쁘다고 사진 찍자거나 말을 붙이면 도망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같이 있던 친구들까지 자기도 봐 달라고 아우성일 정도"라고 말한다.




    맹목적인 동경, 부작용 속출



    연예인 지망생의 상당수는 스타를 꿈꾼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연예인 지망생은 곧 스타 지망생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이 좋아서"(이수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까"(이승호),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화해 사람들에게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매력적이어서"(정미선)라고 말하는 경우에도 그들에게서는 스타의 꿈이 엿보인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예인 지망생 중에서는 맹목적으로 스타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이들에게 스타는 그 분야의 최고가 아니라 무조건 멋있고, 유명하고, 돈 많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처럼 받아들여진다. 한번 스타는 영원한 스타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스타만 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스타가 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학원 수강생 중 실제 연예인이 되는 경우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모델 학원의 관계자는 "몇 개월씩 교육을 받아도 정식 무대에 서는 사람은 전체 수강생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 최고의 대우를 받는 A급 모델이 되는 사람은 한두명이 될까 말까다. 자체 발표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가 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타의 화려함만을 동경하는 이들은 엉터리 연기학원이나 데뷔시켜주겠다며 접근하는 브로커, 홍보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 등 연예인 지망생을 노리는 각종 범죄자에게 쉽게 넘어간다.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을 접해온 mtm의 고현렬 실장은 "스타는 마냥 화려하기만 한건 절대 아니다. 뼈를 깎는 고통도 따르게 마련이다.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에는 벼락스타란 있을 수도 없고, 설사 요행으로 스타가 된다 해도 금새 도태되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연예계에는 한때 반짝 인기를 얻었다가 대중으로부터 잊혀진 채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또 연예인이 되지 못한 이들이 겪어야 하는 '낙제생'의 좌절감을 걸러줄 만한 마땅한 장도 없다. 10대, 20대의 연예인 지망 열풍이 아직 긍정과 기대보다는 염려를 더 많이 낳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koshaq@hk.co.kr

    입력시간 2001/01/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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