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추억의 LP여행] 라나 에 로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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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1.08.08 19:20:33 | 수정시간 : 2001.08.08 19:20:33
  • [추억의 LP여행] 라나 에 로스포

    두꺼비의 음악파트너 찾기 30년



    최초의 혼성포크듀오 뜨와에무와의 성공은 수많은 혼성듀오의 탄생을 불러왔다. 그중 라나 에 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라는 뜻의 이태리어)가 발표한 '사랑해'는 지금도 동창회나 석별의 모임에서 서로를 단합시켜주는 불멸의 연가로 애창되고 있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최초의 남북적십자회담때 우리측 이범석 수석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라나 에 로스포를 청와대로 불러 치하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남북대표가 손을 잡고 합창한 최초의 노래가 '아리랑'이나 '우리의 소원'이 아닌 '사랑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사랑해'는 1969년쯤부터 작사 작곡자 미상인채로 대학가에 불리어지던 임자없는 캠퍼스송이었다. 70년말 라나 에 로스포가 음반을 취입하면서 처음으로 주인이 서강대생 변혁으로 밝혀졌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노랫말에 곡을 붙였다는 애절한 사연이 알려져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한민은 '작사작곡 모두 변혁이 아닌 당시 중앙대생 오경운으로 밝혀졌음'을 귀뜸해 주었다.

    리더 한민은 여복이 터진 남자가수로 참새들의 입방아와 뭇남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1970년 창립때부터 2001년 현재까지 교체된 여성파트너만해도 12명쯤 된다.

    그는 단국고 1학년때 처음 기타를 배워 6사단에서 군복무를 마친 1968년, 종로 YMCA옆 세기음악학원에서 기타강사와 무명 통기타가수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커플즈'라는 이름을 만들며 여자파트너를 찾던중 같은 음악학원 올갠선생인 작곡가 김학송의 소개로 목소리가 독특했던 여 하사관 출신 김은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첫 파트너 김은희와는 연습과 음반작업을 병행하며 6개월간 활동했다.

    <1집음반 사랑해-성음, DG가27, 71년1월10일>을 발표했을 때 이미 김은희는 미8군을 거쳐 YMCA 청개구리에서 미니리사이틀을 갖는 등 주목받던 솔로가수.

    2대는 2개월도 못넘기고 역시 솔로로 독립해버린 숙명여대 작곡과 출신인 장여정이었다. 세번째 파트너는 예그린 합창단출신 최안순으로 2집 < 소리-지구, JLS120495, 71년9월7일> 취입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최안순은 솔로독립후 '산까치야'라는 히트곡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여가수. 4대는 서울합창단에서 소프라노파트를 맡았던 이경란. '두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입단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5대는 동아방송 성우였던 부산 남성여고출신 오정선으로 최장기간인 1년6개월간 활동했던 미모의 여가수. 3집 <사랑해주오> 4집 <그리운 목소리>등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이때 남긴 히트곡은 '그대여'. 오정선은 '노래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모자라서..혼성듀오는 결혼할 사이면 좋을 것 같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팀을 떠났다.

    6대는 TV드라마 주제가로 유명했던 '꿈나무'의 주인공 유리씨스터즈 중 동생 강인원. 이들이 결성되었던 73년은 록그룹의 전성시대. 한민도 그룹 피노키오의 리드기타 권오진 등을 영입하며 5인조 YOUNG & 라나 에 로스포를 결성, 포씨즌을 주무대로 포크록을 시도하는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인원은 작곡가 김강섭의 소개로 만난 전주여고출신의 재원이였지만 이런저런 갈등만을 안고 헤어졌다. 7대는 허니비씨스터즈의 리더였던 조성자. 8대는 '여고시절'등 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출신 이애순이었다.

    음색이 섹시했던 이애순과는 <고독> 이란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하며 남대문 프린스살롱을 주무대로 활동했지만 살롱앞 다방주인과 눈이 맞아 잠적한 스캔들로 결별을 했다.

    9대는 진주간호대 출신으로 목회자 집안의 딸이자 교회성가대원 유경숙. 처음으로 신장이 162cm인 한민보다 작은 157cm의 파트너를 맞이한 이유는 '자신보다 작은 여자와 팀을 해야 오래 간다'는 점괘 때문이었다.

    유경숙과는 <이게 사랑이란다>를 취입했다. 10대는 한민조차 기억이 가물한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을 주제로 한 소설을 발간한 안혜숙. 11대는 하사와 병장의 이동근의 소개로 합친 영등포여고 출신 윤수정. 1년정도 활동하며 <잘가요 안녕>이라는 카세트 테이프만 발표했다.

    80년 트로트가수로 변신한 한민이 82년 음악디렉터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뒤 작년초에 안양의 라이브업소에서 만난 현재의 파트너는 12대 김희진. 이들은 올해 독집 CD도 발표하며 라나 에 로스포의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한민은 '음악적로는 은희와 최안순이 좋았다'다며 '남들은 여복이 많다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교체 때 마다 늘 고통스러웠음'을 고백한다.

    그래서인가 그의 마지막 소망은 '은퇴까지 함께 할수 있는 파트너'임을 숨기지않았다. 그래도 반짝인기에 수많은 가수들이 명멸하는 요즘, 30여년의 장구한 풍상속에서도 여전히 팀명을 유지하며 음악생활을 이어가는 라나 에 로스포의 전설은 후배들에게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입력시간 2001/08/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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