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대통령家와 혼맥] 평범할 수 없었던 '보통 결혼식'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01.07 13:15:37 | 수정시간 : 2003.01.07 13:15:37
  • [대통령家와 혼맥] 평범할 수 없었던 '보통 결혼식'

    건호씨 평범한 가정의 딸 배정민씨와 백년가약



    성탄절인 12월 25일 오후 연세대 동문회관. 오후 1시에 시작된 회사원 유모(28)씨의 결혼식이 끝나자 갑작스레 3층 결혼식장 로비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올라오는 계단 입구에 출입금지 표시가 내걸리고, 직원들이 병풍을 꺼내와 둘러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신 분은 피로연장으로 이동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전기 이어폰을 귀에 꽂은 건장한 사내들의 안내에 유씨의 친지들이 하나 둘 수군댔다.

    “노무현 아들이 결혼식을 한다나 봐.” “우리 구경이나 하고 갈까.” 예식장 문을 닫은 경호원들은 의자 아래를 하나씩 들춰보며 점검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아들 건호(29)씨의 결혼식은 그렇게 호기심과 엄중한 경호가 교차되는 가운데 시작됐다.


    결혼식 전부터 최고의 화제



    건호씨의 결혼식은 이미 대선 직후부터 세간의 화제였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별하면서도 자칫 논란에 휩싸이기 쉬운 위치에 서게 된 사람이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결혼을 인륜지대사 중에서도 으뜸 행사로 쳐온 한국의 풍습에 권력자에 대한 호기심까지 더해진 호사가들의 관심은 예상됐던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권력을 정식으로 넘겨 받지도 않았으면서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대상인 ‘최고 권력자’ 노 당선자가 일반인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니….

    ‘하객은 얼마나 많이 올까.’ ‘누가 화환을 보내고 축의금은 얼마나 걷힐까.’ ‘눈 도장 찍기 위한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겠지.’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계속됐다. 하지만 노 당선자의 “가족 행사로 조용히 치르겠다”는 뜻이 알려지면서 이런 말들은 쏙 들어갔다.

    물론 노 당선자의 집에는 “청첩장을 보내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신랑 신부 양가에서 이미 친지와 지인에게 각 400장 씩 총 800장의 청첩장을 발송했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랐던 것이다.


    경찰, 경호문제로 ‘마음고생’



    연세대 동문회관 결혼식장은 좌석 350개의 예식장과 피로연장으로 구성돼 있다. 연대 동문인 경우 50만 원 이상의 기부금, 일반인은 75만 원 이상을 기본적으로 내야 하고 식장 이용료로 따로 11만 원을 더 받는다.

    물론 대부분 뷔페식으로 준비되는 식사를 결혼식장 대여와 패키지 형식으로 예약해야 한다. 예식장 운영 경비도 이런 방식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노 당선자 측은 따로 식사 주문을 하지 않았다. 결혼식장 관계자는 “하객이 너무 많을 것으로 예상됐고, 경호상 문제도 있을 것 같아 식사를 주문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전례는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경찰도 마음고생을 했기는 마찬가지. 각종 보도를 통해 노 당선자의 참석이 일반에 공개된 행사이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히 경호경비를 준비해야 했다. 연세대 관할 서대문경찰서 경비 관계자들은 노 당선자측 경호팀과 함께 결혼식 이틀 전인 23일 지하 기계실부터 옥상까지 건물 배치 상황과 비상 대피로를 확인하고 인원 배치계획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특별한 경비 지침이 결혼식 전날 오전까지도 경찰에 전해지지 않았다. 주요 경호경비에는 전ㆍ의경이 아닌 일반 경찰 직원이 투입되는데 이들에게 휴일인 25일 무작정 근무 대기를 하라고는 할 수 없는 일. 다행히 당선자 경호팀이 ‘조용한 경호경비’를 부탁해왔고 경찰은 40여 명의 직원을 동원해 경비를 깔끔히 마무리했다.


    ”입장하려면 스티커를 붙이세요”



    결혼식 시작을 한 시간 앞둔 오후 2시, 노 당선자의 딸 정연(27)씨가 식장에 나타나면서 혼례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축의금이나 화환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예식장 입구에는 화환도 진열됐다. 모두 5개. 김대중 대통령, 민주당 한화갑 대표, 신랑신부의 모교인 연세대 김우식 총장, 신랑의 직장인 LG전자, 신부 아버지의 전 직장인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 등이 보낸 것이었다.

    물론 축의금은 끝까지 사양했다.

    노 당선자 부부와 신부 배정민(25ㆍ연세대 주거환경공학과 석사과정)씨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하객들이 관광버스 6대와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정치인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민주당 인사들이었다.

    김원기 고문, 정대철 선대위원장, 한광옥 최고위원, 신계륜 당선자 비서실장 등 10명 안팎의 정치인만이 결혼식에 참석했다. 1,000여 명의 하객 중 정치인을 제외하고 눈에 띈 유명인은 노 당선자 부인 권양숙 여사의 먼 친척이라고 밝힌 영화배우 강문영씨 정도였다. 오후 2시30분 식장에 도착한 노 당선자 부부는 예식장 입구에서 일일이 하객을 맞았고 “잘 살겠죠”라고 소감을 밝혔다.

    떠들썩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여타 결혼식장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었다. 결혼식장이 있는 3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는 멈추어 섰고 2층에 금속탐지기 2대와 X-레이 검색대 1대가 설치됐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만이 안내 데스크에서 청첩장과 교환하고 받은 스티커를 옷에 붙인 뒤 검색을 받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해프닝, 그러나 평범한 마무리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결혼식인 만큼 해프닝도 있었다. 한 40대 부부는 “노 당선자의 친척인데 청첩장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입장을 요구하다 정연씨와 대면한 뒤 뒤돌아서기도 했다.

    오후 2시40분, 아직 식장에 입장하지 못한 하객들이 2층 로비에서 검색을 받고 있는 동안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지하식당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결혼식을 지켜봐 달라”는 경호 관계자의 말에 하객들이 항의한 소동도 빼놓을 수 없는 해프닝.

    결국 식장에 들어갔지만 앉지 못한 하객들은 통로 곳곳에 서서 결혼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식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하객들은 연회장에 설치된 4대의 대형 TV와 지하 1층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예식 장면을 지켜봤다.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촬영할 때에는 100여 명이 몰려 나갔고 “가족 아닌 분은 비켜달라”는 방송이 여러 차례 계속됐지만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날 주례는 노 당선자의 부산지역 후원회장이자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맡았다. 그는 “대선 기간 중 주례 부탁을 받고 ‘대통령 아들의 주례를 서기가 난처하다’며 사양했으나 ‘낙선자 아들이 될 수도 있다’는 노 당선자의 설득에 승낙을 하게 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또 신부에게 “대통령 시아버지 눈치 보지 말고 두 사람이 열심히 사랑하며 살라”고 당부했다.

    양가 부모 예단 한복 한 벌씩, 신랑ㆍ신부 예물 반지와 시계. 건호씨 부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결혼식을 30분만에 무난하게 끝낸 뒤 4박5일간의 인도네시아 신혼여행을 떠났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입력시간 2003/01/07 13:15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