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데스크의 눈] 인사의 ‘트리클다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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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1.09 16:48:56 | 수정시간 : 2003.01.09 16:48:56
  • [데스크의 눈] 인사의 ‘트리클다운’효과

    IMF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요즘 날씨만큼이나 날카로웠던 시절, 체감경기의 ‘아랫목 윗목’설이 유행했다. 방에 군불을 지피면 아랫목부터 따뜻해지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온기가 윗목까지 전해진다는 뜻으로, DJ정부가 구조조정의 한파에 떨고 있는 서민들에게 “조금만 더 참아달라”며 내놓은 논리이자 위로의 말이었다.

    물론 그것은 공급 중심의 경제정책인 DJ노믹스(DJ경제정책)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너무나 뜨거워 장판이 새까맣게 탄 흔적이 남아 있던 아랫목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우리 경제도 DJ노믹스로 뜨거웠던 아랫목과는 달리 윗목은 좀체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아랫목으로 먼저 발을 집어넣으려는 우리 사회의 다툼은 각종 게이트와 부정부패, 독직, 비리 등으로 이어졌고, 서민들에겐 더욱 심화된 빈부격차의 참담한 기억만 남겼다.

    우리의 ‘아랫목 윗목’설과 비슷한 것으로 ‘트리클다운 (trickle-downㆍ통화침투식) 이론’이란 게 있다. 미국은 물론 서방세계의 정치흐름을 진보에서 보수로 바꾼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철학인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으로, 물이 아래로 스며들며 모든 땅을 적시듯 돈은 부유층에서 서민층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레이건 정권의 경제팀은 바로 이 이론으로 반대여론을 잠재우고 부유층(대기업)의 세금을 경감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부유층(대기업)이 세금을 덜 내야 돈을 쓰고, 그 돈이 결국 서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인데, 그 같은 ‘가진 자’ 중심의 자유방임식 경제이론을 추종한 레이건과 부시 전 대통령의 공화당 집권 12년은 안타깝게도 체감 경기의 따뜻함을 서민들에게 전해주는데 실패했다.

    ‘트리클다운 이론’은 경제분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한 국가나 기업, 조직의 인사체계에서도 그 전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대통령이 총리와 각료, 주요 정부 부처의 장을 임명하면 그 효과는 임명된 부처의 장에 의해 산하 조직으로 쭉쭉 내려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인사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첫 임명의 방향이나 영향에서 전체 인사구도가 벗어나기는 어렵다. 소위 피라미드식 인사구도가 형성된다. 만약 대통령의 첫 인사가 믿을 수 있는 측근 위주로 이뤄지면 그 측근은 또 자신의 측근을, 그 측근은 또 자신의 측근을 발탁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측은 DJ정부의 두가지 과오인 인사실패와 부정부패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보고 공정한 인사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와대의 기능 및 조직 개편, 인사의 다면평가제, 온라인 추천제, 인사추천위 설치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첫인사다. 노 당선자가 직간접적으로 임명해야 하는 공직이 1만여개쯤 된다고 한다. 1만여개의 인사 내용에 의해 새 정권의 성격이 규정되겠지만 인사가 피라미드식으로 ‘트리클 다운’ 되는 만큼 노 당선자가 직접 선택한 일정 규모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인사제도를 마련한다고 해도 노 당선자가 어려울 때 끝까지 도와준 측근들을 중심으로 첫 인사의 문을 연다면 인사의 공정성은 이미 물 건너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정부 외곽 조직에서 불거진 특혜인사 의혹만 해도 그렇다. 국세청이 노 당선자의 모교인 부산상고 출신을 우대하고 농업기반공사에 인수위 고위 책임자의 친형제가 이사로 진입한 것 등은 ‘트리클다운’ 효과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 당선자를 도와준 민주당 모 의원의 형이 모 공사의 사장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지 않는가?

    그나마 다행한 것은 노 당선자의 첫 인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수위에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해온 대구사회연구소 소속 소장학자들이 대거 발탁됐고, 당초 내정된 실무진에서 20여명이 부적격자로 탈락했다. 또 이기명 후원회장, 염동연 선대위 정무특보, 이강철 조직특보 등 노 당선자의 핵심 측근 3인의 인수위행도 취소됐다.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역대 어느 당선자보다 상대적으로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노 당선자 입장에서는 믿을만한 인사들로 조직의 바탕을 다진 뒤 그 위에 공정한 인사를 하면 되겠지 하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사는 ‘트리클다운’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첫 인사에서부터 인재 풀을 폭넓게 쓰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고 백번 위협하기보다는 첫 인사에서부터 널리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입력시간 2003/01/0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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