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팬 클럽 정치시대] 노사모의 김현우 '바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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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1.10 10:04:17 | 수정시간 : 2003.01.10 10:04:17
  • [팬 클럽 정치시대] 노사모의 김현우 '바보 노무현...'

    눈물과 환희, 글과 사진으로 남긴 아름다운 반란의 기록



    기름기 졸졸 흐르는 장발, 언제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김현우(39)씨의 언어 감각은 도발적이다. 예를 들어 그가 쓴 이 말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분노와 경멸의 목소리로 그가 ‘너희’라 뭉뚱그리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너희들이 선거 때만 되면 지역 감정을 조장해서 그 악마의 주술에 편승해 치부를 하고 부패하는 동안 노무현, 그만은 외롭게 나쁜 것들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도 남의 돈을 탐하지 않았기에, 자식을 떳떳하게 군대에 보내 국민의 의무를 다 했기에, 권력의 날카로움으로 맛볼 수 있는 특권들을 탐하지 않았기에,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대법관을 지낸 너희들을 젖히고 고졸 출신의 보잘 것 없어 보였던 사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남자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머리 나쁜 집단은 다른 이가 아닌 너희들이다. 이 밥값 아까운 것들아.’

    희곡 작가인 그가 이렇듯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상대는 바로 한국의 기성 정치가들이다. 노사모 회원으로서 2002년 한해 꼬박 각지의 경선장과 유세장 등 노무현 당선자가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던 김현우씨.

    그는 그 험난했던 한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바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펴냈다. 그 책을 통해 노사모의 눈물과 환희를 느껴볼 수 있다. 요설 같고 객담 같지만 나름의 격을 갖추고 있고, 만연체의 문장에서도 비문(非文)은 없다. 극단 송도말년 불가사리가 세태 풍자극 ‘화투, 꽃을 던지다’에서 드러난 입담과 글 솜씨가 그대로 투사돼 있다.

    ‘너희들’의 반명제가 되겠다며 나선 노무현 후보를 당선자로 만들기까지 인터넷에 펼쳐진 뜨거운 담론의 집합이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던 그들만의 25시를 들여다보자.


    “이젠 당신을 감시하겠소”



    “여러분, 이겼습니다아~~~.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뭐하시지요? 저는 또 이길 것이고 여러분에게 약속한 거 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뭐 할 거지요?” (잠시 잠깐 수많은 노사모들이 침묵하다 연호한다) “감시! 감시! 감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 대목에서 지은이의 걸쭉한 입담이 들어간다. ‘세상에 참 싸가지 없는(?) 놈들 다 봤다. 봐라, 이게 노사모의 실체다. 줄 돈도 없는 노무현과 받을 마음도 없는 노사모들 간에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감시하겠다는 이 순백의 의지. 그는 분명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비판적 애정의 극을 보는 것 같다.

    ‘아, 정말 대책 없는 남자다, 정말. 명색이 소위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공중파의 카메라 앞에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러 대다니. 하긴 그는 정부나 이인제 씨나 정동영 씨가 근로자라고 말할 때 늘 ‘노동자’라는 용어를 써 온 사람이다.(중략)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자신이 있는가. 그를 지켜 주지 않고 배기겠느냐 말이다.’

    그는 책에서 민초들의 외침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노짱이란 귀한 씨앗을 더러운 한국 정치판에서 싹 틔우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다. 바람이 불면 손으로 감싸주며 같이 바람 맞고, 힘이 들면 어깨를 내어 주고 그렇게 견고하게 웃으면서 가는 이 땅의 이름 없는 사람들의 간절한 절규다. 들어라 이 절규를!’



    그러나 그에게는 노무현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별로 없다. ‘언젠가 동대문 운동장 역에서 혼자 조그만 서류 봉투를 들고 가다 눈이 마주쳐서 제가 ‘노무현 선생님 아니세요?’ 했더니 쑥스러워 하시면서 서로 목례를 드린 노무현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도 그는 노사모 일을 하면서 삶의 희열을 맛보았다.‘그 바보를 보면서 나는 가슴에 다시 불이 들어 오고, 피가 빨리 돌고, 온 몸의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걸 느꼈습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시일야방성대소(是日也放聲大笑:오늘에야 마음껏 웃어 본다)에는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그대로 읽힌다. ‘최소한 제 뒤통수를 치지 않는 정치가를 보고 싶다는 이 간절한 소망이 제가 지향하는 뚜렷한 노선입니다.’

    또 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쓰라림, 6월 항쟁으로 다 이긴 것을 양김씨와 지역감정과 친일수구 독재 잔존 세력에게 남김없이 피 빨리고 난 다음에, 이미 나이 먹어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의 비겁함과 여운이 한이 되어 잠자고 있다가 자신의 영달을 꿈꾸지 않고 바보 같은 미소로 ‘원칙과 상식’이라는 말 한마디만 가지고 너희들의 더러운 정치판에서 맑게 피어나 광야에 홀로 서 있는 그 사람 노무현을 만나고 나서.’


    바보를 지켜준 바보같은 신념



    ‘바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책 만드는 공장 펴냄)는 김씨가 1년동안 기록한 ‘노사모’의 시간들이 담겨져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야유만큼이나 인상적인 대목이 ‘나는 C일보를 싫어 한다’로 시작되는 일부 수구 기득권 언론에 대한 혐오다.

    노사모의 홈 페이지(www.nosamo.org)에 그가 올린 글 가운데 3분의 1이 정리돼 한 권의 책이 돼 나왔다. 여기에 ‘작가 폐업’이라는 시리즈로 노사모의 모든 것을 성실하게 정리해 온 주인공이다. ‘마왕’이라는 필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번 대선을 두고 “정의가 이겨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교수나 현역 군인이 신분을 감추고 노사모에서 활동했다”며 한 치과의사의 경우를 소개했다. 정신 질환으로 대인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던 그는 노사모의 희망 돼지 저금통을 들고 다니며 정치 후원금을 모으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병을 치유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7만 명의 자원 봉사자가 노무현을 그렇게 감싸, 두터운 갑옷이 되어 주었다”며 “나는 그 과정을 모두 다 지켜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모를 가리켜 “NGO의 궁극적 모습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자발성, 저비용, 고효율, 적극성, 정직, 순수함에다 자정 능력까지 갖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지지율 하락으로 나왔는데도 노사모 회원들은 끄덕 않았다는 점이죠.” 그만큼 확고한 신념으로 뭉쳤다는 말이다. 그는 “각자 회사 출근 전 지하철역에 모여 춤추고 웃으며 유세를 펼치다, 직장을 마친 오후 6시 이후면 모여서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선거 이야기를 나눴다”며 노사모의 시간을 돌이켰다.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노사모는 온 라인상으로 전자 투표를 실시, 더 이상의 회원은 받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정치 세력화에 대한 경계다.




    “정의가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회원은 ‘노사모를 때려 치우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부인의 통첩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즉각 공유됐고, 전국에서 격려 e메일이 답지하는 식이었다. 그는 “이 같은 노사모의 활동을 액수로 환산하자면 적어도 600억원에서 최고 1,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으면 한 번에 2,000여명이 움직이는 모임이 거의 매주 있었죠.”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다. 노사모의 명단을 빼가서 민주당으로 가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뜨거운 결속력과 행동력에서 노사모는 붉은 악마나 미선-효순 시건 관련 반미 시위대를 연상케 한다. 그에 대해 김씨는 “모두 N 세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그러나 공통의 목표를 두고 보여준 응집력에서 노사모는 현저히 다른 차원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구분지었다. 광대역성, 신속성, 속보성, 순발력 등 인터넷 공동체의 힘을 몰랐던 한나라당은 그래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또 “노사모는 당신과 똑 같은 이웃집 아저씨였고 아줌마였고 교수였으며 군인이고 경찰이며 학생이고 평범한 월급쟁이”라며 “그들은 단지 좀 더 힘을 내고 진지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노사모 회원들은 개인의 생활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았다.

    그는 “도메인상에는 보일러가 고장났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에서 IT(정보통신) 분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는 등의 실무적 내용까지 올라 오기 시작했다”며 “노사모는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포함, 모두가 이 나라의 정의로움이 바로 서는 것을 열망했을 뿐”이라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뜨거웠던 시간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낸 그는 “노무현이란 우리 시대의 코드를 통해 정의가 이겨 나갔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의의를 밝혔다. 김씨는 “책에 실린 분량은 내가 올렸던 글의 3분의 1”이라며 “나머지 것들은 앞으로의 창작 작업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당선자가 아이와 돼지의 손을 잡으며 웃고 있는 표지의 유머러스한 그림도 그렸다.

    인터넷 게시판상에 올렸던 글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어, 네티즌 언어의 독특한 질감도 그대로 전달된다, 비난의 뜻인 ‘나쁜 쉑’, 난처한 경우를 뜻하는 이모티콘인 ‘-_-;;’ 등 젊은 네티즌 언어의 향연장이기도 하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3/01/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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