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匠人열전] 피아니스트 서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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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1.10 11:03:29 | 수정시간 : 2003.01.10 11:03:29
  • [匠人열전] 피아니스트 서혜경

    "교단-콘서트홀-레코딩,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



    한겨울 경희대 캠퍼스에는 아직 눈발이 곳곳에 남아 있다. 크라운 모양의 음대 건물에서는 현란하고도 강렬한 피아노 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전히 사자 갈기 같은 머릿단은 그녀가 발하는 다채로운 음보다도 풍성하다.

    “왼손이 부자고, 오른 손은 가난한 사람이에요. 자, 부자가 이렇게 으름짱을 놓자 못 사는 사람이 애원하는 거죠.” 둘의 대화를 그린 대목이 그녀의 손을 통해 한판의 ‘피아노 버전 판소리’로 되살아 났다.

    그녀의 재치 있는 ‘해설 음악회’를 다시 감상하는 듯 했다. 음대 건물을 감싼 왕관은 서혜경(43)을 위한 것이었나.


    혁명적 해석으로 바흐를 되살리다



    그녀는 1995년 이래 이 학교 음대 부교수로 있으면서 고국의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자신의 일부이다.

    교육자, 콘서트 연주가, 녹음 연주자. 클래식 연주자로서 그녀는 이 세 가지 모습을 모두 구현한다. 이를 두고 그녀는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말했다. 1인3역의 현재 모습이 압축돼 있는 말이다.

    당연히 그녀에게 강단과 음악회에서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2000년 경희대 교수 휴직계를 내고 미국서 콘서트 연주가로만 활동 한 것은 그래서다. 2001년에는 뉴욕 ,플로리다, 코네티컷 등 미국내 도시 순회 연주를 가졌다. 5월 중국의 상하이, 광저우 등지에서 순회 연주회를 가졌다.

    그해의 마감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사고 현장에서 열린 추모 음악회였다.

    그것은 그러나 동시에 그녀에게는 역할 모순이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 “버틸 때까지 버텨 보는 것”이라고 그녀는 답을 대신했다. 가능하다면 휴직을 하고 녹음 작업에 충실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램이다.

    그러나 음반이건 연주회건 그녀에겐 태작(태석)이 없다. 먼저, 콘서트 현장에서 연주자와 객석 간에 주고 받는 관행들을 믿지 않는다. 콘서트 현장에서 그녀는 관객들의 의례적 반응에 속지 않으려 항상 긴장한다. 이 점에서 그녀는 혁명적 해석으로 바흐를 되살린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후예다.

    “관객의 환호에 연주자는 자기 만족의 악순환에 빠져 든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무대와는 전혀 다른 새 도전”이라며 레코딩 작업에 큰 비중을 할애했다.

    그녀는 연주자, 녹음 엔지니어, 프로듀서 등 3자가 긴밀한 호흡을 이룬 가운데 전개되는 미국식 클래식 녹음 작업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를 가리켜 그녀는 “ 악곡 전개 순간 순간의 음향 구도를 프로듀서가 잡아 내는 거죠. 유럽과 한국에는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없어요.” 무소르그스키의‘전람회의 그림’을 자기 최고의 명반으로 꼽은 그녀는 “앞으로 녹음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며 자기 진보를 확신했다.




    연습과 스케줄에 쫓겨 산 40년



    “나는 주저 앉지 않기 위해 이렇게 발광하고 있는 거예요.” 그녀에게 피아노 연주 말고 다른 취미가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연주장, 호텔과 공항을 전전해야 했다. 그녀는 “연습과 스케줄에 내쫓겨 살아 온 40년 세월이 허망하지는 않다”며 “한 가지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위에서 봤을 때 안쓰러울 정도로 자신을 닥달한다. 스스로 모를 리 없다. 서혜경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표현으로 그런 말을 했지만 그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아귀가 들어맞는 말이다.

    어느 분야보다 천재가 많고, 또 그만큼 빨리 사라져 가는 클래식 음악계의 생리를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거기서 버텨낸다는 것, 아니 거기서 여전히 빛난다는 사실로 그녀는 빛난다

    서혜경 그녀는 결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이’이기를 거부했다.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사람들을 열광케 하고, 여타 피아니스트들을 분발시킨다. 죽었다 깨어나야 한다는 국제 콩쿠르에 우승하고도 아직도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1980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불은 완전히 꺼두고 암보로 연습했던 데 대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현대판 한석봉 훈련으로 따낸 기쁨도 잠시, 그녀는 2년간의 근육 마비 증상으로 물러나 앉아 있어야 했다. 일찌감치 다가온 영욕이었다. 그러나 1983년 뮌헨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해 건재를 만방에 과시한 것은 그간의 찬사가 결코 1회성 스타를 향한 것은 아니었음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20대의 그녀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불뿜는 용’ 또는 ‘끓어 오르는 용암’이었다. 당시 미국의 신문에 종종 등장한 ‘불같은 숨결(fire-breather)’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녀를 두고 한 말이었다. 30대는 ‘여제’, ‘여황제’, ‘암사자’로 변했다. 사자 갈기 같은 특유의 헤어 스타일을 빗댄 말이기도 했지만, 건반을 부술 것 같은 뜨거운 연주 모습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나는 진정한 프로”



    이제 40대다. 세월따라 음악도 변했다. 그녀는 “이제는 ‘건반 위의 여신(goddess)’이란 말을 듣고 싶다”고 말한다. 30대 그녀의 대표작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었다.



    최근 그녀는 유럽서 스크리야빈, 스트라빈스키, 무소르그스키 등 웅장한 후기 낭만파 작품들을 취입했다. 힘과 테크닉에 이어 예술적으로 무르익는 데 필요했다는 20년 세월을 거쳐 낸 현재의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초 경북 구미에서 가졌던 초청 연주회는 ‘여신’이 감내해야 할 부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공교롭게도 9월 29일 뉴욕 연주회였다. 하루 뒤인 9월 30일(한국 시간 10월 1일) 출발했으나 때맞춰 들이닥친 태풍으로 20시간 걸려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구미에 도착해 놓고 보니 새벽 6시였다. 눈 한 번 못 붙이고 찾았던 곳이 미장원. 리허설하고 몸에 익은 대로 연주를 마치고 보니, 달아 오른 청중은 앵콜을 3곡 듣고 난 뒤에야 그녀를 놓아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대와 연애한다. “마흔살 넘으니 강박 관념까지 즐기게 돼더군요. 이제 나는 진정한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녀는 “나의 끊임 없는 진보를 믿는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가장 잘 된 음반으로 꼽았다. 그러나 그 말을 곧 받아 “앞으로 녹음한 게 보다 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터뷰 내내 장난을 치며 그녀의 곁을 맴돌던 아들 김준범(7)이 급기야 배가 아프다며 칭얼댔다. 서혜경은 아들의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손바닥을 돌리는 그녀는 어느새 한국의 여염집 아낙이 돼 있었다. 딸 문정(10)과 함께 둘 다 미국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는 까닭에 영어가 더 편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뉴욕 맨해튼서 살고 있지만 방학 때면 청학동 명륜학당에 입교해 예절 교육을 받게 하는 등 고국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왜 뉴욕에서 사는가? 그녀는 “세계 무대를 돌아다니다 보니 뉴욕에서 사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연주자로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1년에 50회는 세계적 콘서트 홀에서 연주회를 가질 수 있는 현실적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협주곡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과, 독주곡에의 수요가 높은 구미쪽 팬들을 모두 충족시킬 줄 아는 덕택이다.


    마흔 넘어 계속되는 도전



    그녀는 뉴욕 생활 27년을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한 나와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그것을 이뤄냈고, 그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경희대 뒷문 아파트에 들여 놓은 그랜드 피아노와 업 라이트 피아노에서 연습하고 아직도 레퍼터리를 늘리고 있다.

    “무지무지하게 레퍼터리가 많아야 해요.” 한국 피아니스트 중 최다 국제 콩쿠르 우승이라는 휘장 뒤에는 불혹의 나이에도 새 레퍼터리를 개발하려 애쓰는 모습이 받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루빈스타인은 90세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피아노 곡을 다 배우지 못한 게 한이라 말했어요.”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곡만을 답습하지 않는 것도 그녀의 커다란 매력이다. 연내에 미국의 레이블 ‘프로 피아노’에서 나올 ‘윤이상 피아노 독주곡집’이 그 같은 사실을 잘 말해 준다.

    교수직에는 무대가 주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사실을 그녀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도전적이지 못해 재미가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의 취입 작업 외에도 2003년은 바쁠 수 밖에 없다. 당장 1월 18~19일 뉴욕에서 쇼팽과 리스트를 녹음해야 한다.

    이어 28일에는 경북 포항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2월 3일은 부산 가람 아트홀 센터 개관 기념식에 초청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C장조(일명 ‘엘비라 마디간’)‘ 을 들려주기로 돼 있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3/01/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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