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점 보는 사회] 압구정동 역술벨리 24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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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1.21 13:42:06 | 수정시간 : 2003.01.21 13:42:06
  • [점 보는 사회] 압구정동 역술벨리 24時

    점집 70여곳 성업, 요령 대신 노트북 든 신세대 역술인



    불과 4~5년 전만 해도 ‘점 보러 간다’ 하면 으레 서울 성북구 동선동 일대의 ‘미아리 점집’을 떠올렸다. 골목길에 늘어선 ‘00철학원’ 간판을 보고 한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두운 방 안에 불상과 부적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역술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객을 맞는다.

    ‘일단 앉아’ ‘무슨 일로 왔어’ 보자마자 거침없이 반말로 얘기하는 역술인도 있다. 이들 앞에서 사람들은 주눅이 들면서도 온갖 세상의 고달픈 얘기를 풀어놓으며 해결 묘수를 얻어가기를 바랐다. 주 고객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주부들.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나 공부 안 하고 속 썩이는 자식 문제 등 일상의 애달픈 사연이 많았다.


    미아리에서 압구정으로



    고단한 인생의 상담소였던 점집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점집의 대명사였던 미아리고개 70여 곳 철학관은 첨단 컴퓨터 시스템과 현대적 시설을 내세운 ‘사주카페’ ‘역술백화점’ 등 신세대 점술집에 ‘지존’의 자리를 내줬다.

    장소도 서울 변두리인 강북에서 유행의 최첨단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로 나왔다. 소위 ‘역술 밸리’. 동서양의 점성술을 모아놓은 역술백화점 10여 곳이 성업 중이고 사주 카페도 60여 곳이 들어서 있다.

    1998년 처음 문을 연 신세대 점집인 ‘점술왕국’에 들어섰다. 음산한 분위기 대신 신세대들의 코드에 맞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또 카운터의 쇼케이스 안에는 아기자기한 각종 부적이나 역술 소품 등을 전시판매하고 있어 언뜻 보아서는 팬시 전문점으로 착각할 정도다. 입구에서는 젊은 아가씨가 상냥한 미소로 손님을 맞아준다.

    매장 안에 독립된 5개의 상담실. 한복을 입고 쌀을 뿌리는 나이 지긋한 역술인은 온데 간데 없고 대신 노트북을 두드리며 점괘를 보는 신세대 역술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점술인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거나 미국, 일본 등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다. 타로 카드 점에서부터 점성술 작명 사주팔자로 보는 동양 역술까지 전공 분야별로 점을 친다. 영어나 일본어로도 점을 볼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주 고객은 20~30대 젊은이들. 중장년이 심각한 고민 거리를 들고 미아리 고개를 찾는 데 반해, 이들은 게임을 즐기듯 가벼운 마음으로 점집을 찾는다. 그림이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재미가 마치 만화 같은 느낌을 주는 타로(tarot) 카드가 인기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술인 예지씨는 “타로는 고객이 직접 자신의 카드를 뽑으며 운세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상담실 안에는 늘 젊은이들의 경쾌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오곤 한다. 하루 40~50 여명의 고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이다. 점술왕국 관계자에 의하면 일일 평균 매출은 1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연애운, 진로운에 성형점까지



    점을 보러 오는 여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이성’ 문제다. 역술인 호일씨는 “연이 닿은 이성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오는 미혼 여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눈 여겨 볼 대목은 특정한 상대와의 연분에 연연하지 경우가 드물다는 것. 보통 여러 명의 사주를 들고 와 “나한테 맞는 남자가 누구냐, 어느 남자와 결혼하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달라진 연애 풍속을 읽을 수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진로’에 대해 상담하는 경우도 부쩍 많아졌다. “변리사 시험을 보려 하는데 합격 운이 있느냐, 디자이너를 지망하는데 성공할 수 있겠는가”등을 알아본다.

    ‘성형점’도 젊은이들 사이에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점술 분야다. 얼굴 성형에 대한 상담은 기본이고 행운을 주는 헤어스타일과 속옷 스타일을 알아보려는 20대 여성들이 점술집 앞에 장사진을 친다.

    연예인 성형 상담으로 유명한 ‘점술占(점)타롯’의 김영선 원장은 “미국 프로골퍼 타이거우즈가 붉은 색 옷을 입은 날엔 경기에서 이긴다는 얘기가 퍼진 뒤로 의상의 색깔과 스타일에 조언을 구하는 고객들이 늘었다”고 말한다.

    이 일대의 복채는 평균 3만원. 경기가 나빠질수록 점술집의 문턱은 닿는다. 이하림사주 작명원의 역술인 김경린씨는 “신년을 맞아 사업 운을 알아보려는 남자고객이 많아졌다. 경기가 나빠진다는 예측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심리”라고 풀이했다.

    신세대들이 점을 보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려기보다는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 중년세대처럼 점을 맹신하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골라서 받아들인다. 박광래(29)씨는 “사업 운을 봤는데 올해는 굉장히 좋고 내년에는 위기를 맞는고 했다. ‘조심하라’는 것만 기억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점은 신세대 입맛에 딱맞는 오락"



    사주 아카데미 노해정 대표



    음력 설을 앞두고 인터넷 철학관들이 문전성시다. 신년 토정비결을 보려는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꼭 점을 믿지 않더라도 호기심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운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약 120여 곳. 운세 포터사이트 중에서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는 사주닷컴(www.sazoo.com)의 하루 평균 접속자수는 7~8만 명에 달한다.

    사주나 궁합 등 전통적인 역술 뿐만 아니라 타로 카드나 구슬점 등 동서양의 점술이 총동원된다. 연애운이나 합격운을 높여준다는 부적도 잘 팔린다. 서비스는 거의 유료로 건당 300~2,000원 수준이다.

    인터넷 점술 사이트의 특징은 미리 정해져 있는 운세 유형에 따라 점을 본다는 점. 해서 사이트마다 독특한 서비스를 내세우지만 한해의 운세를 보는 기본 서비스는 비슷한 편이다. 사주닷컴 컨설턴트를 맡고 있는 사주아카데미 대표 노해정(35)씨를 통해 인터넷 점술 세계에 대해 알아본다.


    -인터넷 점술의 특징은?



    동서양 점성술이 복합돼 있어 콘텐츠가 다양한 것이 장점이다. 가격도 오프라인 점집에 비해 월등히 싸다. 하지만 데이터화된 서비스에 의존하기 때문에, 직접 상담보다 적중율이 다소 떨어지는 게 흠이다.


    -인터넷 역술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신세대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쉽게 점을 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네티즌이 방문한다. 콘텐트도 다양하고 흥미로워 신세대들의 입맛에 잘 맞아 떨어진다.




    -중년 세대와 신세대들의 점 문화를 비교한다면.



    과거 중년 세대는 점을 맹신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신세대들은 점을 일종의 ‘오락’으로 여긴다.


    -용한 점술과 그렇지 못한 경우를 알아보는 방법은.



    우선 말이 자주 번복되는 경우라면 당연히 신뢰성이 떨어진다. 또한 운세를 보자마자 대뜸 “어디가 안 좋다”며 부적이나 개명 등을 요구한다면 일단 의심해라. 거의가 돈을 뜯어내려는 돌팔이의 얄팍한 점술이다.


    -사주가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는가.



    사주는 운명을 분석하기 위한 틀일 뿐이다. 다시 말해 사주는 운명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해보는 것이지 운명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은 보다 광의의 개념이다.




    타로카드 점 신세대에 인기



    게임을 하듯 점을 보는 신세대들이 요즘 가장 선호하는 점술도구는 타로 카드다. 중세 유럽에서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집시들이 유럽을 떠돌며 전파했다는 이 카드에는 태양과 여신상, 사람들이 상징적인 형태로 조합되어 있다. 그림이 상징적이고 아름다워 많은 미술가들의 창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타로카드는 인생의 중대사를 점치는 22장의 카드와 작은 일들을 맞추는 56장의 카드로 구성된다. 상황이나 알고 싶은 일에 따라 3~12장을 뽑아 그림을 해석한다. 그림만 해도 수백 여종의 변종이 있고 뽑거나 해석하는 방법도 역술인에 따라 다양하다. 주로 사주의 보조 도구로 쓰이는 동양의 육효처럼, 점성술의 보조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역술인들이 말하는 타로카드의 핵심적인 요소는 점을 보는 대상이 갖고 있는 ‘잠재 능력’이다. 타로카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아 카드를 골라야 올바르게 예지하는 카드가 나온다고 한다.

    타로 카드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점을 보는 사람이 정신을 집중하고 알고 싶은 내용을 생각하며 역술인이 섞어놓은 카드 중 원하는 카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 영매 오다매(우피 골드버그)가 쓰던 수정구슬을 이용한 점도 인기가 있다. 역술인이 기를 증폭시키는 물질로 알려진 수정구를 쓰다듬으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얘기해준다. 수정 구슬점은 숫자나 그림 같은 매개체 없기 때문에 특히 점치는 사람의 직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외에 홍콩에서 유행하는 점성술인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를 통해 미래를 읽는 ‘주사위점’과 상담하러 온 사람이 짚어내는 문양을 통해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탄트라’ 점 등도 유행하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2003/01/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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