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어제와 오늘] 되새겨야 할 ‘대한민국’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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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1.23 14:43:41 | 수정시간 : 2003.01.23 14:43:41
  • [어제와 오늘] 되새겨야 할 ‘대한민국’의 참뜻



    ”국민여러분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는 16대 대통령 노무현 당선자의 플래카드가 전국 곳곳에 걸렸다. 2002년이 “대~한민국”의 해 였다면 2003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해인가.

    반의어(反意語)사전(전수대편저)를 찾아보니 ‘새’의 반의어는 ‘헌’이다. ‘새 대한민국’이란 말이 봇물져 오다보니, ‘헌 대한민국’이나 ‘옛 대한민국’이 있기라도 했을까 하는 의문이 그 말을 접할 때 마다 생겨났다.

    있었다. 2003년에 역사학회 회장이 되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이태진 교수의 편저 ‘고종시대의 재조명’(2000년 8월 초판) 중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2001년 6월)라는 논문 속에 ‘옛 대한민국’이 나온다.

    또한 이 교수 보다 앞서 서울대 규장각 소장을 지냈던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의 저서 ‘명성황후와 대한제국’(2001년 10월)에도 선명하게 등장한다. 월드컵 열기가 하늘에 닿았던 서울시청 앞 ‘대~한민국’ 광장은 바로 93년전 1919년 3월 3일 고종의 국장이 벌어지는 발인의 장소로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되는 날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 교수는 쓰고 있다.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일본에 의해 독살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산(장례식)을 계기로 거국적인 만세 시위 운동이 펼쳐졌다. 운동세력이 국호를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꾼 것은 이 만세시위운동을 끝낸뒤였다. 어떤 독립운동세력도 고종황제 생전에는 대한제국을 부정하지 않았다.

    왕조에서 제국, 제국에서 민국으로 이어지는 국체의 변천은 외세의 위협에 대항하면서 자주 국가의 기틀을 유지하려는 민족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서 고종황제는 이 맥락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3ㆍ1 만세운동 바로 뒤인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외에 선포됐다. ‘백성의 나라’, ‘국민의 나라’, ‘대통령이 심부름 꾼인 나라’가 되기까지 ‘민국’의 뜻은 변혁, 개혁, 혁명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주창자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변해왔다. 그러나 한영우 교수나 이 교수는 고종에 의해 ‘민국’계념이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교수는 고종이 1897년 2월 20일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 오기까지 1년간을 ‘민국’을 위한 개혁 추진기간으로 봤다. 한 교수는 고종은 ‘개혁’이나 ‘개화’라는 용어 대신 ‘민국’을 썼으며 옛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가미한다는 발상으로 ‘민국’의 뜻을 넓혀간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고종은 부활된 의정부에서 의정(議政ㆍ총리격) 김병시를 통해 “민은 국에 의존하고 국은 민에 의존하여 민과 국이 일체가 되는 것이 옛날의 고의(古義)다”고 ‘민국’의 뜻을 밝히게 했다. 한 교수는 고종이 말한 바 ‘민국’이란 유교적 민본사상에서 진일보하여 ‘백성과 나라’, ‘백성의 나라’까지 나아갔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이 교수는 이런 ‘민국’이념이 이조 후기에 들어서 붕당의 탐평(貪平)에 나선 영정조의 탐평 이데올로기로 등장 했다고 보고 있다. 영조는 1724년 즉위하면서 “국은 민으로 본을 삼는다. 그 때문에 국은 민에 의지하고 민은 국에 의지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를 이은 정조는 할아버지 말에 덧붙여 “민에 족하면 왕도 족하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민국정치이념은 1883년 8월에 일본에 수신사절로 파견된 박영효가 숙소에 내건 태극기에 잘 상징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주역에 근거한 태극팔괘도는 우주생성의 논리를 도표화한 것이 아니고 인간치세의 원리, 즉 정치 사상을 그렸다는 것이다. 특히 정조는 인간치세를 다룬 ‘문왕후천팔괘도’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정조는 이 사상에 따라 “민은 수많은 하천, 군주는 밝은 달에 비유된다“며 “백성에 대한 군주의 관계는 밝은 달이 모든 하천에 하나씩 담겨 비치는 것 같다”고 스스로 쓰기도 했다. 그리하여 밝은 달이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민을 감싸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의 기본이 되었다.

    고종은 정조를 이은 순조의 손자로서 정조를 성군으로 생각, 민국 사상을 계승해 아관파천 후 대한제국 황제가 되어 이를 실천했다. 고종으로서는 영정조의 민국 정치 사상을 현실에서 새롭게 펼쳐 보인 셈이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퇴위(1907년)와 망국(1910년)으로 이어졌지만 그들의 뜻은 ‘대~한민국’을 거쳐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게 됐다.

    한영우 교수는 고종이 말한 ‘민국’의 기본은 ‘구본신참(舊本新參)’과 ‘동도서기(東道西器)’로 보고 있다. 이태진 교수는 정조의 뒤를 이어 ‘민을 위한 정치 지향’과 ‘자주 국가 수립‘으로 보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는 두 교수에게서 옛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경청키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1/2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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