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김동식 문화읽기] 사투리의 문화적 코드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3.01.23 14:48:32 | 수정시간 : 2003.01.23 14:48:32
  • [김동식 문화읽기] 사투리의 문화적 코드



    최근에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표준어 사용자와 사투리 사용자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표준어는 근대적인 학교 교육, 이성적인 사고방식, 도시적 감수성이라는 문화적인 이미지와 관련된다.

    반면에 사투리는 관습적인 사고방식, 감정적인 태도, 촌스러운 감수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표지로 여겨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사투리는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나 희극적인 인물들의 트레이드 마크였을 따름이다.

    표준어와 사투리에 대한 이분법적인 인식이 중심인물과 주변인물의 관계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사투리는 대중문화의 희극적인 타자(他者)였던 셈이다.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최근의 한국의 대중문화에서는 사투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사투리를 적절하게 활용한 유행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서 사투리가 주인공의 모습을 하고 전면에 부각된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문화현상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에 그리고 국민대통합이 요청되는 시대에, 사투리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투리 열풍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개그 콘서트’의 ‘생활 사투리’를 통해서 사투리의 문화적인 의미를 잠시 들여다보도록 하자.

    ‘생활 사투리’는 ‘민병철 생활 영어’의 형식을 가져다가 살짝 비틀어 놓은, 일종의 패러디이다. 4명의 개그맨이 출연한다. 한 사람은 강사, 다른 한 사람은 네이티브 스피커, 나머지 두 사람은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의 사용자들이다. 먼저 표준어를 사용하는 강사가 그날 배울 예문을 제시하고, 잘난 척을 하며 되지도 않는 영어로 번역을 해서 빈축을 산다.

    그런 뒤에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의 사투리를 제시하고 네이티브 스피커의 발음을 청취한다. 늘 보아왔던 사투리 개그인 듯도 하지만, ‘생활 사투리’에는 사투리와 관련된 우리의 관습화된 생각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측면들이 숨어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외국어(영어)와 표준어와 사투리의 관계가 위계적인 서열관계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생활 사투리’는 하나의 예문을 돌아가며 표준어-외국어-사투리로 번역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으며, 사투리에도 네이티브 스피커의 발음이 존중되어야 함을 은연중에 강조함으로써 사투리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외국어,표준어,사투리는 서로서로 번역이 가능한 언어, 달리 말하면 대등한 지위를 가진 언어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외국어-표준어-사투리 순으로 서열화 되어 있는 우리의 언어현실에 대한 풍자적인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사투리를 사회적 차별의 표지가 아니라, 문화적 역동성과 다양성의 표지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합니다’라는 표준어 표현의 진부함과 단순함에 비할 때, 나란히 제시된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는 한국어에 잠재되어 있는 드라마틱한 역동성과 표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사투리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열광은 표준어 사용자로서의 우월감을 맛보고자 함이 아니다. 사투리에 내포된 역동성과 다양성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따~ 거시기 허요’ 또는 ‘내 아를 나도’는 표준어에 갇혀있는 언어적 상상력(‘사랑합니다’)을 한 순간에 돌파하는 쾌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사투리와 사투리 사이의 장벽을 넘어 상호이해와 상호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는 적대적이고 폐쇄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번역되어 소통할 수 있는 말이라는 사실의 확인이 그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뒤로 숨기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젊은 세대들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의 ‘사투리를 학습한다’는 형식 자체가 사투리를 존중하고자 하는 태도를 드러내며, 더 나아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사투리는 우리사회 내부의 언어적 타자(他者)이다. 따라서 사투리에 대한 관심은 주변부 또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문화적인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몇 분 안 되는 개그지만,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문화적 타자와 주변에 대한 배려야말로 문화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어쩌면 사투리는 포괄적이면서도 유연한 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일반대중의 숨겨진 열망을 대변하고 있는 문화적 상징일지도 모른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2003/01/23 14:48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