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이 여자가 사는 법] 박미나 김시현 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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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1.23 16:01:00 | 수정시간 : 2003.01.23 16:01:00
  • [이 여자가 사는 법] 박미나 김시현 손정은

    주거공간에 예술을 접목시키는 신개념의 아트워크



    고가의 예술품을 내 집에서 편안하게 감상하는 일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주)서울옥션과 잡지<행복이 가득한 집>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그림이 있는 집’에서 라면 그 꿈을 이루어볼 수도 있다.

    주거 공간을 예술품이 살아 숨쉬는 편안하고 격조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는 맞춤 아트 컨설팅으로, 기존의 인테리어 디자인 개념을 확대해 아트 컨설턴트와 작가가 직접 고객의 집을 방문하여 그 집의 분위기와 취향에 맞게 컨설팅 하는 작업이다. 이미 그 첫 작업을 마치고 지난 12월 5일 하루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이 재미난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세 명의 젊은 작가 박미나(29) 손정은(33) 김시현(31)씨를 만났다. 활기찬 첫 인사로 시작한 이 재기발랄한 작가들은 인터뷰라는 틀과 무관하게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결혼은 못한게 아니라 안한것뿐



    “결혼은요?”“안 할 거예요! 나이 들어서 영계 키울 거예요!!”라는 박씨의 말에 웃음이 번진 가운데 “바라고는 있으나 아직….”이란 김씨의 얘기가 섞이고 난 후 그들의 결혼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실 전 진정으로 못간 게 아니고 안 간 거예요. 안 할 거예요. 선도 여러 번 봤지만 결국 매번 내가 정말 결혼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요”(손 정은) 지금까지 버텨오는 동안 주변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다들 안 하겠다는 건 결혼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건 있어요. 생활이 달라지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 다 하는 거니까 한번쯤 하는 기대감도 있어요. 그리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게 일종의 도피의 기회를 제공해줬어요. 유학기간 3년을 그냥 건너뛰었잖아요. 한창 닦달 받을 시기에 빠져나갔다가 왔기 때문에요. 들어와서 느끼는 건 점점 (압력의)강도가 세어진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아직 환상이 있는 거 같아요. 동지 같고, 친구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싶어요.”(김시현)

    “저는 결혼에 대한 편견은 없어요. 편한 친구가 생기면 할 거고, 그렇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근데 결혼이란 것 보다 동거의 개념이 더 나은 거 같아요.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거고, 그 주변의 것들까지 제가 감당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박미나)

    “저는 그 버팀의 시간이 훨씬 일찍부터 시작됐어요. 대학 4학년 때부터 결혼 시장에 나와 유학 직전까지 그리고 다녀와서 또 시작했는데, 사실 이제 그 압력은 없고, 돈 벌라는 압력이 더 강해요. 제가 실질적으로 결혼을 안 하겠다고 버틴 적이 없고 선 보라면 다 보고 근데 안 되니까 그러시는 거 같아요. 결혼이 싫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없는 거죠.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딱 가게 되면 결혼을 생각하는데, 그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냥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구요.”(손정은) 이들에게 결혼은 때가 되면 하는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경계를 허무는 시도, 그러나 이제 시작



    순수예술과 계약에 의해 품을 파는 일과의 경계를 허무는 이 작업이 작가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이들 작가들에게 이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사실 이런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전혀 갈등이 없었어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을 저는 지금까지 밥벌이로 했죠. 전 제가 작품을 만들었을 때 돈을 많이 주는 쪽으로 가요. 그게 박물관이든, 상업적인 곳이든. 작품에 대한 평가가 돈으로 환산되기를 바라는데, 때로는 이 가치를 미술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더 높게 책정할 수도 있거든요.

    물론 처음 시작할 땐 약간의 갈등을 느꼈지만 나중엔 아주 철저하게 ‘나는 많이 주는 데 간다.’는 식으로 굳혔지요. 나를 인정해주는 곳으로 가는 거죠.”(손정은)

    “저는 미술관에 갇혀있는 답답함을 느껴왔어요. 그리고 이 작업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도, 대안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문제에 앞서 1차적으로 반가웠어요.”(김시현)

    일에 관해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는 손씨와 다분히 원론적인 김씨에 비해 내놓고 그림으로 돈 벌기를 처음 시도한 박씨는 이 작업이 작업실 밖으로의 소풍 같았던 모양이다.

    “자칫 잘못하면 인테리어가 되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어요. 인테리어와 그림의 중간 쯤에 있는 거고 직접 현장에 가서 작업을 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가능한지 시도를 한 거죠. 처음이니까 의도 자체가 재밌었어요.”

    첫 작업이 끝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소비자와 그들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 걸까.

    “제 첫 고객은 모노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어서 제가 색깔들을 잔뜩 가져갔더니 ‘이걸 다 쓰실 거예요?’하며 처음에 굉장히 겁을 내셨어요. 근데 그 댁 아기가 너무 좋아해 결과적으로는 좋았어요. 수정 의뢰가 들어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선에서 될 것 같아요. 근데 다음이 걱정이에요.

    또 다른 집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똑 같이 벽지 바르듯 할 수는 없잖아요. 처음과 달리 그 다음은 키치를 결정하는 문제니까요.” 박씨는 이번 작업을 통해 자신이 의외로 아이들과 코드가 맞아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함과 동시에 어떤 식으로 다음 작업을 이어 나갈 지에 대한 문제를 만나고 있다.

    “큰 무리는 없었어요. 집을 보고 집에 맞는 것을 하니까요. 예기치 못한 상황은 저희가 사용한 소재가 고무였는데 작업실과 달리 집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냄새가 좀 났어요. 근데 고객이 만족스러워 해서 크게 문제되진 않았어요.”김씨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편 그림 쪽의 박씨와 달리 설치미술을 하는 손씨와 김씨는 공동작업을 통해 혼자서 할 때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처음으로 세 명이 팀워크를 하면서 각자 다른 생각들을 조절해야 했는데 그 경험이 특별했어요. 지금까지의 미술작품이 작가 혼자 만들고 소비자가 선택하게 하는 거였다면 이번에는 오뛰꾸뜨르 식 맞춤옷처럼 집을 보고 주인의 취향을 파악해서 거기서도 가격을 다시 산정하는 등 저는 나름대로 그런 쪽의 실험이 강했어요.

    그 전에 단순하게 돈벌이로 했던 걸 이번에는 이걸 정말 어떻게 접근할 건지, 이런 식으로 집에 인테리어로 들어가는 게 가능한지, 얼마를 받을 건지 이런 걸 다 갖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러니까 굉장히 공부를 많이 했어요. 결과적으로 세 명이 각기 따로 작업을 했더라면 더 효과가 컸을 거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공동작업이 실질적인 효과는 적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죠.” (손정은)


    ‘미술’로만 벌어먹고 살고 싶어요!



    언제나 새로운 소통의 방법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 결혼이란 결국 좋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일 중 하나이다. 이들이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삶에서 만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저는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 갖고 싶은 거 갖기 위해 하기 싫은 걸 하기 보다는 죽어도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 위해 갖고 싶은 걸 조금 포기하는 편이예요.”현재 부모님께 효도하는 심정으로 대학 강의를 한다는 손씨는 작가가 작가로서만 살기 위해서 또 죽어도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 위해선 생존을 받쳐줄 물적 기반이 필수란다.

    “무슨 떼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고, 미술이란 걸 직업으로 가질 수 있을까, 아주 극소수만 그럴 수 있어요. 다들 어떤 강의를 한다거나 하는 건데 이건 우리 윗세대들의 방식이었지요. 저는 그냥 미술 하는 게 너무 좋기 때문에 그걸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싶어요.”

    대학원에, 유학까지 마치고도 아직 밥벌이가 어렵기는 다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제까지는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셨는데 이젠 독립해서 살 나이가 됐죠. 기본적으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어요.”(김시현)

    “비슷해요. 물적 기반…. 저는 이제껏 밥벌이로 영어강사를 했어요.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 내 직업은 영어강사인 거죠. 그러면 이 작업은 엄청난 취미활동이 되잖아요. 결국 저는 이 엄청난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벌고 또 그걸 취미활동에 갖다 붓는 상황이거든요. 너무 허탈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생각한 게 그냥 ‘굶자!’였어요. 안 벌고 안 쓰자는 거죠.”(박미나)

    “늘 고민하는 거죠. 밥벌이를 하다 보면 순수 작업이 하고 싶어요. 근데 순수 작업을 하다 보면 난 밥버러지가 되는 거예요, 또 돈 벌러 나가게 되고…. 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늘 문제죠.

    이런 식으로 관련된 일을 하면서 작업할 때 가장 건강하게 작업할 수 있으니 사실 이런 프로젝트, 굉장히 반갑죠. 걱정은 단순히 자본논리로만 하다가는 이나마도 없어질지 모른다는 거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런 시도조차 없어질 거라는 위기감이요. 바로 제 밥벌이와 직결되는 문제죠. 그래서 요즘엔 생활인으로 견뎌내면서 동시에 작가적 사명감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데, 너무 무거워요!”(손정은)

    “맞아요!”손씨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입을 모은다. 전업 작가로서 먹고 산다는 일 자체가 하나의 시도고 도전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거나 긴장하지 않고 있다. 당당하게 자기 욕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 유쾌했다.





    양은주 자유기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3/01/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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