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재즈프레소] 재즈로의 음악적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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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2.28 11:03:16 | 수정시간 : 2003.02.28 11:03:16
  • [재즈프레소] 재즈로의 음악적 안식

    하모니카에 실린 전제덕의 꿈

    "이번 녹음 작업 때 '디스 플러스'를 하루 두갑씩 태웠어요." 하루 한갑남짓 피우던 흡연량이 두배나는 걸 보면 바짝 긴장했다는 증거다.

    자신이 평소 주목해 온 재즈 가수 정말로가 초빙한 자리 아니던가. 전제덕(30)의 앞 못 보는 두 눈에서 솟구치는 기쁨의 빛은 고스란히 신기의 하모니카 연주가 돼 출발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제덕은 사람을 두번 놀라게 한다. 재즈 하모니카 분야에서 물모의 땅이었던 한국에서 윌리엄 갤리슨이나 투츠 틸레망 등 세계적 재즈 하모니카 주자에 버금 가는 젊음 보배가 나왔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둘째, 초점 잃은 두 눈동자가 말해주듯 앞을 전혀 보지 못 하는 시각 장애인이란 사실은 다른 하나다. 이 점에서 그는 '맹인 소울 가수'이자 빼어난 하모니카 주자였던 스티비 원더의 한국판이라 할 만하다.

    이 두가 지 사실 앞에서는 사물놀이의 원조 김덕수와 나란히 협연했다는 흔치 않은 기록조차도 빛이 바래질 정도다. 요컨데 전제덕은 경이 그 자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 '벚꽃 지다'와 '섬진강' '아이댜 나도 한땐'등 그가 이번엔 하모니카 연주로 참여한 3곡은 윌리엄 갤리슨이나 투츠 틸레망 등 현재 세게 재즈 하모니카 거장들의 연주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예를 들어 '벛꽃 지다'의 도입부에서 그가 4소절 연주한 하모니카 선율은 하모니카만이 지닌 영롱함을 안겨준다. 신디사이저 음으로는 따라 잡지 못할 인간미가 넘친다.

    그는 국내 유일의 하모니카 재즈 뮤지션이다. 그가 재즈 하모니카에 본격 매력을 느낀 것은 1996냔 한 방송에서 반음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는 틸레망의 연주를 듣고 나서였다. 종로 악기상가를 다 뒤졌으나 아이들이 부는 온음 하모니카뿐이였고 반음짜리는 40~50만원으로 집안 형편을 비웃었다.

    낙원상가를 다 뒤진 끝에 구석의 한 하모니카점에서 자신의 반려자 '크로모니커'를 13만원에 구입했다. 독일의 하모니카 명가 호너사에 만든 수제품으로 이후 그의 체온을 벗어난 적이 잠시도 없다.

    다음 문제는 음악성 있는 하모니카 음반 역시 귀하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경인 지역의 음반 매장을 발로 뒤진 그는 틸레망과 갤리슨의 음반들은 모두 구해 하루 4~5시간씩 열심히 땄다(따라했다). 현재 그는 'Killer Joe' 등 틸레망 특유의 난곡 30여개를 레퍼터리로 확보해 둔 상태다.

    음악은 그에겐 가장 큰 안식이었다. 유달리 예민한 귀를 갖고 있던 그가 마지막으로 안착한 곳이 바로 재즈다. 인천의 장애자 특수 학교인 혜광학교 재학 중이던 14세때 '월미도 재즈 페스티벌'에 찾아가 색소폰 주자 강태환의 순환 호흡을 듣고 가슴일 울렁댔다. 그것은 재즈와 조우한 때이기도 했다.

    장고를 맡았던 전제덕은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우리의 장단에 매료됐다. 1993년 김덕수의 '세계사물놀이 한마당'에 출전, 최우수상인 MVP에 선정됨으로써 그는 일약 주목을 받았다.

    김덕수패에서 활동하면서 김희연(드럼), 이주한(트럼펫), 박지혁(기타) 등 신예 재즈맨들과 잼(즉석 협연)도 자연스럽게 이뤄진 때이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재즈에로의 길이 틔었다.

    그가 앞 못 보게 된것은 여름날 태어나서 15일째 접어들던 때 심하게 앓은 열병탓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살아 가던 집안형편에 병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동네 약국 가서 급한대로 해열제부터 먹인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첫 아들의 눈이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모친 안제순(520씨가 숨이 턱에 차 먼저 찾은 곳은 무당집이었다.

    형편 되는대로 굿판을 벌였으나 호전될 턱이 없었다. 큰 마음 먹고 고대 병원을 찾아보니 원인 불명이란 말뿐이었다. 그래서 태어난 해 겨울에서 이듬해 봄까지 서대문 한 교회에서 안수 기도까지 받았으나 하늘은 눈물의 모정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던가.

    안씨는 이후 아들이 어딜가나 그림자가 돼 아들의 앞길을 지켜 왔다. 방송국이건 녹음 스튜디오건 모정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안씨는 "철들기 전부터 손장단 맞추며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던 아들에게 번듯한 뒷받침이 못 돼 가장 안타깝다"며 당신을 한없이 낮춘다. 정말로가 신보에서 흐느끼듯 부른 애절한 블루스 '어머니 우시네'의 주인공은 먼 데 있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하모니카 독주 콘서트를 열겠다는 모자의 꿈 또한 영글어 가고 있다.







    입력시간 2003/02/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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