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장덕균의 개그펀치]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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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3.03 10:17:56 | 수정시간 : 2003.03.03 10:17:56
  • [장덕균의 개그펀치] 오늘도 무사히

    슬픔과 분노가 이토록 똑같은 무게로 함께 자리를 잡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마른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처럼 일어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는 며칠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너무 생생하고 끔찍해서 가만히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난다.

    처음 화재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단순한 놀라움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이상자의 우발적인 범죄 행위 이외에 더 큰 범죄가 도사리고 있었음이 하나씩 드러나자 단순한 놀람과 슬픔에다 분노가 더해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에 죽는다면 그것은 정말 재수없는 일이고 인간이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천재지변이다. 하늘에다 아무리 종주먹을 쥐어보이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떠들어 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그런데 이런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의심을 품다가 역시나로 결론을 내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삼풍 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등등을 떠올리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참 유구한 역사를 지닌 듯 하다.

    전국민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이번 사건 또한 이전처럼 그놈의 지긋지긋한 인재(人災)라는 점 때문이다.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그토록이나 많은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고가 일어난 후 뉴스에서 외국으로 수출하는 지하철과 내수용 지하철의 안전도를 시험 비교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은 치를 떨었다. 수출용 지하철은 화재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서 유독가스가 나는 것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거의 완벽한 안전도를 자랑하는데 내수용 지하철은 그야말로 화끈하게 전소되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119는 지하철에 탄 사람들이 화재가 났다고 신고전화를 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데도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끊어버렸다.

    전에 미국의 911 프로그램이 방송됐을 때의 기억이 난다. 911 대원들은 신고를 받으면 즉시 전화를 끊는 게 아니라 신고자의 신변확보와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계속 통화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화를 통해 신고자의 상황을 계속 보고 받고 911 대원들이 출동할 때까지 대화하고 적절한 구조방법을 끊임없이 알려주며 안심을 시켜주고 있었다.

    만약 이번 사고 때 우리의 119도 무조건 알았다고 전화를 끊지 말고 유독가스가 발생했으니 코와 입을 휴지 같은 걸로 막으라던가, 닫힌 지하철 문을 수동으로 여는 방식을 알려주며 어두운 지하에서 어떻게 벽을 짚고 나오라고 세세하게 지시를 내려주었다면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방송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탤런트 김성찬은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외국에 나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어이없이 유명을 달리했고, 변영훈은 영화촬영 중 헬기사고로 인해 카메라맨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사람의 목숨이 어쩌면 이다지도 허무할 수 있는지 며칠 동안은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젠 숨을 쉬고 있어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있어도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이 무서운 패배감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는 것도,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일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순간순간 움츠러든다. 나 역시 요즘은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녹화장의 천장에 매달린 육중한 조명기구들을 자꾸 고개를 쳐들어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지하철을 탔을 때 가능한 출입문에 바짝 몸을 붙이고 목적지까지 서서 가곤 한다.

    회심곡에 ‘대문 밖이 저승인데…’ 하는 대목이 있다. 아침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는 다정한 인사를 받으면 이것이 혹시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유서라도 작성해서 주머니 깊숙이 넣어다니고 싶을 정도이다.

    하루하루 산다는 일이 이토록 무섭고 하루를 마감하고 내 침대의 베개에 몸을 누일 때면 그토록 고단할 수가 없다. 누가 말했었다. 책임질 놈 없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 전 대한민국의 국민이여, 오늘 하루도 마이홈으로 무사귀환 하시길.

    입력시간 2003/03/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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