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노무현식 파격인사] "행시 14회 이상은 옷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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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3.11 13:19:16 | 수정시간 : 2003.03.11 13:19:16
  • [노무현식 파격인사] "행시 14회 이상은 옷 벗어"

    40대 행자부 장관 등 비경제부처도 서열파괴 직격탄



    “중앙 부처 1급까지 올랐으면 공무원으로서 성공한 인생 아닙니까. 장ㆍ차관이야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거고. 그저 담담합니다.”

    재정경제부 한 1급 인사는 김진표 국무조정실장이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으로 내정됐을 무렵, 애써 태연함을 유지했다. 행시 기수로 14회, 신임 부총리(13회)와 불과 1회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터였다. 동기 중에서 차관이 나온다 쳐도(3월3일 차관 인사에서 동기인 김광림 특허청장이 낙점됐다) 본인이 아닌 다음에야 더 이상 재경부에 발을 붙이고 있기는 힘든 처지였다.

    “혹시 후배나 동기 차관 밑에서 일을 할 수도 있겠느냐”고 묻자, “뭐, 꼭 그래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차관급 인사가 발표된 3월3일 오전, 과천 관가 곳곳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가 쏟아졌다. “행시 13회가 경제 장관의 주류를 이뤘으니 차관은 17회쯤 되지 않겠느냐”던 당초 우려와 달리 주요 부처 차관들은 행시 14~15회에서 결정된 때문이었다. 경제 부처 한 고위 관계자는 “관행과 서열 파괴로 특징지어진 ‘2ㆍ27 개각’의 충격을 어느 정도는 진정시켜줄 완충판 구실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파격 내각의 충격파는 컸다. 아무리 서열 파괴의 시대라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고시 서열’은 불가침의 룰. 동기나 후배에게 장ㆍ차관 자리를 내준 적잖은 관료들은 일손을 놓고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환 위기 이후 구조조정 파고 속에 민간 기업과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후배들에게 밀려나 짐을 싸야 했던 상황을 그저 ‘옆 집 불구경 하듯’ 지켜봤던 관료들. 이제 그들에게도 세대 교체의 태풍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10년을 잃어버린 인사



    “10년의 세월을 잃어버렸다.” 행시 4회인 전윤철 부총리 후임에 행시 13회인 김진표 부총리가 들어서자 경제 부처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 나왔다. 행시 기수로는 9기, 햇수로는 8년을 건너 뛴 터였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 중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하나”로 평가를 받았다는 김 부총리가 요직에 중용될 것은 일찌감치 예상된 일.

    하지만 경제 부처를 총괄하는 부총리 자리로 단번에 수직 상승할 거라고는 쉽게 생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하마평이 무성하던 건설교통부장관에 행시 10회의 최종찬 청와대 정책수석이 임명된 것을 제외하면 윤진식 산업자원부장관(행시 12회), 박봉흠 기획예산처장관(행시 13회) 등 주요 경제 부처는 행시 12~13회가 장악했다.

    조각 직후 차관 인사 역시 ‘파격’일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세대 교체의 진앙지인 재정경제부의 경우 김영주 차관보, 오종남 통계청장 등 거론되던 차관 후보 1순위는 모두 행시 17회였다.

    재경부 한 국장은 “행시 17회 차관이 나온다는 것은 20여명에 달하는 행시 17회 이상 재경부 1,2급 간부 대다수가 옷을 벗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침통해 했다. 게다가 재경부 차관의 행시 기수는 다른 경제 부처 차관의 암묵적인 가이드 라인이기도 했다.

    폭동이라도 일 것 같던 관가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을까. 뚜껑을 연 차관 인사에서 재경부 차관 자리는 행시 14회인 김광림 특허청장에게 돌아갔다. 정부 한 인사는 “하마평에 한번도 거론되지 않던 인사가 차관에 낙점된 것을 보면 얼마나 청와대가 고심을 했는지를 역력히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경제 부처, 대대적 물갈이 예고



    ‘파격 장관 ? 안정 차관’의 구도가 형성됐지만 그래도 1, 2급 고위 관료들의 물갈이는 상당 폭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의 경우 심달섭 전 워싱턴 재경관이 부총리와 동기인데다, 신동규 기획관리실장, 한정기 국세심판원장, 최경수 세제실장, 박용만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국장, 소일접 경제홍보기획단장 등 무려 5명의 차관 동기생들도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산업자원부도 행시 14회 김칠두 차관보가 행시 13회 선배 2명을 제치고 차관으로 직행하면서 동기 3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의 1급 관료들의 행보가 불투명하게 됐다. 행시 14회인 이용섭 관세청장이 국세청장으로 옮겨가면서 심한 인사 적체를 겪어 온 국세청 역시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본청 국장급에만도 행시 13~14회 인사들이 5명이나 몰려있는 상황이다. 경제 부총리와 함께 금융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쌍두마차 격인 금융감독위원장도 조만간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태. 올해로 66세인 이근영 위원장 후임에는 10년 이상 젊은 유지창(54) 금감위 부위원장, 장하성(50) 고려대 교수, 이동걸(50)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거론된다.

    금감위 관계자는 “차관 인사가 인사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장관 인사의 여진 때문에 경제 부처 관료 상당수는 아예 옷을 벗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관가의 세대 교체는 유관 기관과 금융권에도 연쇄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수십명의 고위 관료가 정부 부처에서 튕겨져 나올 경우 유관기관장이나 금융기관장, 금융협회장 등의 자리에도 무더기 낙하산 이동이 이뤄질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경제 관료들의 몫인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증권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선물거래소 등 대부분 기관장들의 임기가 2005년이어서 이동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을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 및 경제 유관기관장 인사가 최근 이뤄진 경우가 많아 자칫 고위 관료들의 대규모 실직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 부처, 날아온 돌이 박힌 돌 강타



    비 경제 부처 관료들도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 구성에 직격탄을 맞기는 마찬가지다. “본부 국장급은 물론 과장급에서도 장관 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올해로 44세인 김두관 전 남해군수가 장관 자리를 꿰찬 행정자치부는 장관 내정설이 나돌 때부터 쑥대밭으로 변했다.

    외부에서, 그것도 행시 출신 서기관(4급)에 해당하는 나이의 ‘젊은 장관’에 타성에 젖어있던 관료들이 경악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행자부 국장급 인사는 “정통 내무 관료 출신 차관(김주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이 임명된 덕에 그나마 조직의 안정이 유지된 것이 다행”이라며 “하지만 장ㆍ차관 혹은, 장관과 간부들 사이에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젊은 관료들 중에는 이번 인사를 내심 반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국장급 승진을 앞두고 인사 적체 때문에 번번이 고배를 들었던 본부 과장급 공무원들은 희색이 만연하다.

    경제 부처 한 과장은 “결국은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인사로 숨통이 트인 만큼 국장 승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잔뜩 기대를 높였다. 젊은 개혁 성향 관료들은 이번 인사를 계기로 관료 사회도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외부에서 젊은 장관이 영입됐다고 조직이 망가질 것 같습니까? 아마 그건 기득권 관료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는 말일 겁니다. 관료 사회도 경쟁 조직으로 바뀌면 그만큼 자극을 받아 한층 새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3/03/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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