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데스크의 눈]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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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3.24 14:25:05 | 수정시간 : 2003.03.24 14:25:05
  • [데스크의 눈]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방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첫 조각에 따른 여진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 정도 진통이야 진작에 각오를 했기에 40대 여성 변호사 강금실씨를 법무부, 군수 출신 김두관씨를 행자부, 영화감독 이창동씨를 문광부 장관 등에 앉혔을 것이다.

    정치 일정상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민 앞에 자신의 통치 철학을 피력하는 자리인 3ㆍ1절 기념사 대로라면 이번 인사의 뜻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특권을 누려 온 기회주의자를 배격하고 어렵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출신이나 학력, 이념 등의 이유로 권력 근처에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비주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내세울 게 별로 없었던 ‘변방’의 ‘노짱’을 국민이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도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루 아침에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기득권 세력이 불만의 소리를 쏟아내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어떻게 이렇게까지…”라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박정희 쿠데타 이후 최대의 권력이동 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거기에는 빼앗긴 자의 심리적 불안이 반영돼 있다.

    그만큼 이번 참여정부에서는 각 조직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던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특히 지방 대학 총장ㆍ교수, 지방 신문, 지방 변호사 등 ‘지방’의 ‘이너 서클(inner circle)’ 진입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권력 주변을 얼쩡거린 정치인을 제외하고 지방대 출신 고위 공직자는 거의 없었으나 참여정부에는 동아대 출신 장관이 2명이고, 차관급 인사에서는 지방대학 출신이 무려 7명에 달했다.

    그 뿐인가? 중앙지의 편집국장, 청와대 대변인 등을 거쳐 임명되던 국정홍보처장에 지방 신문 출신 조영동씨가 발탁됐고,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에서 전북도민일보가 중앙언론사를 제치고 질문 기회를 잡았다. 이 같은 ‘지방’의 약진은 지방분권 차원에서나, 지방과 수도권의 형평성, 혹은 인구 비례를 보나 온당한 일이라 하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사 진통이 심한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나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전형적인 ‘지방’이나 ‘변방’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 장관은 K고 서울대 미국 박사 삼성전자 사장 등 지금껏 주류에 속해 있었다. 그의 발탁은 ‘변방’인물에게 기회를 주는 차원이 아니라 능력이 검증된 인재에게 일을 맡기는 뜻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그를 장관에 임명하기 전에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비춰 ‘혹시 기회주의적인 행동은 없었는지’ 더욱 철저하게 검증을 했어야 했다.

    이중국적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납세의무 소홀, 불법 의료보험혜택 등, 그의 지난 세월은 누가 봐도 특권층이 누려온 기회주의적인 것이다. 굳이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로 낙마한 지난 정권의 저명 인사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청와대 게시판에 “스티브 유(유승준) 와 다를 게 뭐 있나. 원칙을 중요시한다더니 이번에는 유연하게 그냥 넘어가나”는 젊은 네티즌의 글 하나로 국민 정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검증을 못한 잘못은 덮어놓고 그의 비도덕성과 흠결을 문제삼는 언론을 탓하는 듯한 태도는 책임 있는 정부가 할 도리는 아니다. 부실한 검증과 인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 뒤 노 대통령이 ‘진대제 일병 구하기’에 나서든가 해야지, “악의가 없으니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옹호는 일의 앞뒤가 바뀐 것이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주류는 기회주의자로, 우호적인 주류 일부는 ‘악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잣대는 새 정부의 도덕성 수준을 의심하게 한다. 진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새 정부의 정통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진 장관에 비하면 강금실 장관은 도덕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코드가 맞다. 별명도 ‘철의 여인’이다. ‘철의 여인’을 앞세운 노무현식 검찰 개혁은 ‘항명 파동’을 거쳐 검사들과의 대화, 김각영 검찰총장의 전격 사퇴 등으로 본궤도에 들어섰다.

    그러나 매끄러운 진전은 아닌 듯하다. 격을 깬 사상 초유의 대통령-평검사 토론도 그렇고, 지켜본 국민 사이에도 찬반이 뜨겁다. 안타깝게도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은 토론에서 “정권교체기마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인적 청산이 이뤄졌으나 오히려 검찰의 중립을 더욱 훼손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는 검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면 노무현식 검찰 개혁은 계속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개혁의 진통을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 검찰 개혁의 경우, ‘칼’을 휘두른 강 장관이 새 총장을 인선하고 검찰 수뇌부를 구성한 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방식은 어떨까?

    그 자리는 지금껏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었고 임명권자의 뜻을 검찰 조직에 전달한 루트였던 만큼, 강 장관이 구 시대의 인물을 ‘찍어낸’ 뒤 계속 머무른다면 권력의 검찰 장악과 새 줄세우기에 대한 우려가 불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2003/03/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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