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장덕균 개그펀치] '중앙에서 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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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3.24 14:27:12 | 수정시간 : 2003.03.24 14:27:12
  • [장덕균 개그펀치] '중앙에서 오신 분'

    몇 년 전 방송프로그램 제작 때문에 지방에 갔을 때의 일이다. 출연 섭외차 지방 중소기업의 사장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첫인상이 수더분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서로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나누는데 사장의 인사말이 걸작이었다.

    “어이구, 이거 중앙방송에서 내려오신 분이네요. 아주 귀하신 분이 오셨어요.”

    악수를 위해 한 손을 내민 내 손을 그는 두 손으로 덥석 잡아 흔들며 참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환대를 해주었다. 과분한 환대가 농담인지 아니면 비아냥거림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돼 잠시 머뭇거리는 내 눈에 비친 그는 분명히 잔꾀를 부릴 줄 모르는 순수한 인상이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키며 예의 ‘중앙에서 오신 귀하신 손님’ 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고 그날 저녁에 있었던 술자리에서는 동네 유지며 건달들까지 모두 불러들였는데 그들 모두의 태도가 그 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시절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중앙 방송국에서 온 내가 지방에 있는 사람들 눈에는 참 대단하게 비쳐졌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중앙’이라는 단어에 대해 좀 권위적이고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 부처, 중앙 방송국이라고 하면 사방팔방 뻗어있는 산하 기관단체들에게는 잘 보여야 할 뭔가가 있다고 여긴다. 스스로를 변방에 도태돼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앙에서 왔다’라는 한마디에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가정에서 가장이나 웃어른이 집안의 중심을 이루는 근간이 되듯이 일반 회사나 여러 단체들에서도 ‘중앙’은 적절한 통제와 질서 유지 등 그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중앙’이라고 하면 어딘가 긴장하고 자신의 매무새를 한번 더 가다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현재도 각종 드라마에서 단정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맹활약을 하는 중견 탤런트 A가 있다. 그는 여러 스타들을 배출해낸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그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가 재학 중이던 때는 사회적으로 매일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않던 시절이었다. 민주화를 외치며 학생들이 강의실 안보다는 교문 밖으로 진출해 전경과 대치하고 최루가스를 들이마시며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곤 했다.

    그러던 중 몇 명이 경찰에게 붙들려 인근 파출소로 끌려 갔다. 워낙 살벌하던 시절이라 선배들은 사랑하는 후배들이 당할 일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A가 선뜻 나섰단다. “내가 데려올게.”호언장담을 한 A는 바바리 코트를 차려 입고는 아주 당당한 자세로 파출소로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A를 본 경찰들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어디서 오셨어요?” “나 중앙에서 왔어요.” 중앙이라는 한마디에 경찰들은 본능적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고 A의 태도는 여전히 거만함과 권위적인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A는 구석에 꿇어앉아있는 후배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쟤들은 뭐야?” “네. 시위하다 붙잡혀온 학생들입니다.” “그래? 내가 조사할게 있으니까 데리고 갈게.” 은근슬쩍 후배들을 끌고 나가려는 A에게 경찰이 재차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중앙에서 왔다니까.”“신분증 좀 보여주세요.”A는 마지못해 학생증을 내보이며 그래도 당당하게 말했다. “거짓말 아니죠? 나 중앙에서 온 거 맞잖아요. 중앙대학교.”

    경찰들도 깜빡 속을뻔한 뛰어난 연기 실력은 이미 학창시절에 증명이 된 A가 지금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역시 이래저래 ‘중앙’의 파워가 막강한 것 역시 변하지 않는 사실인가 보다.

    입력시간 2003/03/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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