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명동 사채업자, 대학 강단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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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4.01 14:49:26 | 수정시간 : 2003.04.01 14:49:26
  • 명동 사채업자, 대학 강단에 서다

    중앙인터빌 최용근 회장,기업가치평가사 양성



    군수가, 영화 감독이 장관이 되는 ‘마이너리티 반란’의 시절이다. 대학 3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이가 대학 교수가 됐다고 해서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가 20여년간 명동 사채 시장에서 뼈가 굵은 사채업자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사채업이라면 세익스피어 고전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 안토니오에게 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처럼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하 금융의 온상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를 한 번 만이라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탁월한 선택”이라는 찬사를 쏟아낼 법 하다. 3월19일 저녁 가톨릭회관 204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분명 여느 사채업자와는 달라 보였다.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단에서 명동 사채시장을 가르친다



    “이제 정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찹니다.” 대금업체인 동시에 명동 어음 시장과 기업의 정보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중앙인터빌 최용근 회장은 의욕에 넘쳐 있었다. 해방둥이로 만 58세. 갈수록 조로하는 요즘 현실을 감안하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터였다.

    지난해 11월말께, 경희대 국제경영대 측에서 연락을 받았다. “실물 금융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학식도 갖추지 못한 제가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이후 최 회장을 설득하려는 학교측 인사들과 마주 앉아 3시간 가량 벌였던 난상 토론은 교수직을 수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최 회장이 이것저것 실물 시장에서 경험했던 얘기들을 늘어 놓자 학교측이 맞받았다. “바로 그런 걸 강의하시면 되는 겁니다. 원론적인 것은 다른 과목에서 가르칠 테니 회장님은 바로 그런 생생한 현장을 학생들에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기업 신용분석과 자금 운용’이라는 과목으로 처음으로 강단에 선 3월7일. 전공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운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첫 수업인데도 불구하고 3시간 내내 강의를 진행했어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학 3, 4학년생들인 만큼 최 회장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곧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장의 경험들을 상세히 전해 줄 계획이다.


    춥고 배고팠던 젊은 시절



    사채업자라는 데서도 언뜻 눈치를 챌 수 있듯 그의 젊은 시절은 고달팠다.

    “전북 익산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추운 겨울 아궁이도 없는 방에서 어린 동생들과 함께 귀가 얼고 손 끝에 얼음이 박히는 고생을 했어요. 시골의 자연 풍경이나 물고기, 나비 등 아름다운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 군에서 제대한 1971년 맨 몸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철거민 딱지장사, 택시 운전사, 용달차 운전, 보따리 장사, 선풍기 외판….

    75년에는 이란과 사우디에 나가 트레일러 운전과 군에서 익힌 영어 실력을 토대로 통역 일 등을 하면서 15개월간 7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그것도 잠시. 국내에 들어와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가 78년 ‘8ㆍ8 부동산 억제조치’에 휘말리며 다시 빈털터리가 돼야 했다.

    새로운 인생은 포장마차에서 시작됐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명동 주변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것이 전환점이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데, 친구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요즘 공장들이 물건을 납품하면 어음이란 것으로 결제를 해주는데 이런 종이 쪽지 같은 어음을 이북에서 내려온 돈 많은 실향민들이 잘 사간다”는 것이었다. 어음은 현금으로 바꿔줄 때 할인 이자를 떼는데 그 이자를 벌기 위해서 어음을 사간다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바로 돈을 버는 이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를 쫓아 명동 사채 시장을 기웃거리기를 며칠 만에 겁도 없이 조그만 사무실에 중앙개발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78년11월이었다. 사채 인생의 시작이었다.


    벤처와 사채의 접목



    명동 일대에서 승승 장구했지만 어찌했건 사회의 눈총을 받는 숱한 사채업자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에게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된 것은 99년 중앙인터빌이라는 회사를 차리면서부터 였다.

    “음지에 파묻혀있던 사금융을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사채라는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식부터 하게 되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적잖은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잖아요.

    결국 사채업을 건전한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정보, 어음 할인율 등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10여년간 차곡차곡 수집했던 기업 정보와 데이터를 토대로 기업의 장ㆍ단기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업신용 분석도구 ‘Mirror 2002’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에서 ‘국가기술혁신과제’로 선정됐고, 회사는 벤처 인증을 받았다. ‘벤처’와 ‘사채’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분야를 접목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명동에서의 경험을 집적한 ‘명동30년 – 금융의 격랑을 헤치며’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새로운 꿈을 향하여



    요즘 최 회장이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은 두가지. 대학 강의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기업가치평가협회 업무다. 지난해 11월 재정경제부에서 협회 설립 허가증을 받았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업의 건전성을 판단할 때 재무적인 요소를 70%, 비재무적인 요소를 30% 정도로 비중을 두죠. 하지만 전 거꾸로 비재무적인 요소를 더 중요시합니다.

    SK글로벌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절반, 아니 80% 가량은 재무제표 등을 조작하고 있다고 보면 되거든요.” 협회는 최 회장의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재무제표 뿐 아니라 CEO의 경영 마인드나 지배구조, 상품의 시장성과 계속성 등 비재무적 요인들을 분석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업가치평가사’를 육성할 계획이다.

    이미 경희대 서울 캠퍼스에서 평가사 인증 교육 과정을 개설하기로 협의를 마친 상태다. “저와 함께 호흡한 학생들과 기업가치평가사들이 우리나라 금융 시장과 기업을 한층 투명하게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에게 ‘사채업자’라는 호칭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최 회장에게 재테크 비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혹시 종목이라도 찍어주지는 않을까 하고. 우문에 현답이었다. “적소성대(積小成大)입니다. 한 탕을 노리는 것은 투기이지 투자가 아닙니다. 항상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세요.”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3/04/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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