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재즈 프레소] 재즈전도사로 나선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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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4.01 15:00:14 | 수정시간 : 2003.04.01 15:00:14
  • [재즈 프레소] 재즈전도사로 나선 김준

    괜히 숨가쁘기만 하던 도시의 일상은 이 곳에서 잠시 멈춘다. 반가운 얼굴을 확인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에는 지인들끼리만의 정이 흐른다. 오래 된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냇 킹 콜의 ‘Unforgettable’과 ‘Stardust’가 곰살궂기만 하다. ‘김준 재즈 클럽’에서 시간은 역류하는 것일까?

    재즈 보컬 김준(64)씨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345의 6 북한산 자락에 2002년 11월 문을 연 이래, 이 곳은 재즈 문화의 올바른 형태를 복구하는 소중한 처소로서 기반을 다졌다. 그가 재즈에 발을 디딘 지 30여년만이다. 이 곳에서 재즈는 더 이상 젊은이끼리만 통하는 새로운 문화 상품이 아니다.

    30평의 홀에 정규 좌석은 50석이다. 그러나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면 꼭 가져 온 ‘토요 음악회’때면 60~70명은 너끈하다. 한국의 대표적 재즈 뮤지션들은 한 번씩 다 서 봤다고 해도 지나침 없다. 신관웅, 김수열, 이정식, 박성연, 정말로 등 한국의 대표적 재즈 스타들이 그와 이곳에서 함께 찍은 스냅 사진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토요 음악회’ 출연자들과 남긴 기념 촬영이다.

    유명인들의 사인도 짤막한 사연과 함께 촘촘히 붙여져 있다. 이를테면 이렇다. 2001년 11월 11일 김동길 박사는 자신의 사인과 함께 애송하는 존 키츠의 싯구를 일필휘지했다. 사진 가운데는 타임지 표지 인물로도 나왔던 트럼페터 윈튼 마살리스와 함께 찍은 것도 있다.

    이 시대에 재즈의 정통을 외치며 재즈의 전도사로 자임하는 그가 2001년 서울 공연 후 함께 찍은 사진이다. 색소폰 주자 이정식씨,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 사장 임재홍씨 등 현재 한국의 재즈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보인다.

    산높고 공기 맑은 북한산 자락 평창동 일대에는 문인, 화가, 건축가 등 문화계 인사들이 유달리 많이 산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의 독특한 멋을 좋아 한다. 특히 가족을 데리고 이곳을 자주 찾는 소설가 박범신씨는 김준씨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의 대표적 매니아다.

    부인 김미자씨와 함께 이 곳을 꾸려 나가는 김준씨의 생은 한국의 재즈사이기도 하다. 평북 신의주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중 남하, 1959년 제주도에 피난 오면서 재즈와 조우하게 된다. 모슬포의 미공군 기지 K16에서 클럽의 하우스 보이로 일하면서 알게 된 미군 목사로부터 들은 암스트롱의 도너츠판은 재즈와의 조우였다.

    이어 서울로 올라 와 경희대 음대 성악과 6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미 8군 영내에 떠 돌던 악보집 ‘송 폴리오’ 덕분에 재즈에 바짝 접근하게 된다. 당시 그를 매료시켰던 곡이 백인 재즈 가수 토니 베넷. 바로 베넷의 곡들로 그는 1960년대 워커힐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1961년부터 68년까지는 ‘빨간 마후라‘’를 부른 중창단 쟈니 브라더스로의 멤버로만 알려졌다.

    그가 재즈 가수로 활동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주로 신관웅씨와 협연을 많이 한 그는 그러나 자신을 ‘재즈 스타일을 좋아 하는 팝 싱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재즈 레퍼터리로 ‘김준 수퍼 컬렉션’을 꾸준히 발표해 온 사실을 감안한다면 겸사임에 틀림 없다.

    29일 열릴 3월의 토요음악회는 각별한 데가 있다. 1970년대 박상일 차도균 등과 함께 4중창단 ‘다이나믹스’를 이뤄 활동했던 장우와 함께 모처럼 갖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육순을 넘긴 두 원로가 펼쳐 줄 스탠더드 재즈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 시대의 부화한 재즈 풍토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요즘 그의 공식 재즈 무대는 매주 수요일 밤 클럽 천년동안도에서 김수열 재즈 밴드와의 협연으로 이뤄진다. 년말마다 하얏트 호텔에서 열려 오고 있는 ‘김준 송년 콘서트’는 그의 인기가 결코 일회용이 아님을 말해 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방배동 새빛맹인교회의 안요한 목사에게 헌정 앨범을 제작해 수익금의 일부를 기증했다.

    ‘시작은 그 끝과의 약속이다’는 좌우명을 대학 시절부터 마음에 새겨 온 그에게 ‘그 끝’이란 재즈의 딴 이름일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5천만분의 1이라도 좋으니 절대적으로 재즈를 좋아 하는 사람만 왔으면 해요.” 명색이 클럽 대표인데, 자칫 배타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은 재즈를 위해 바친 시간들에 대한 준열한 애정일 지 모른다.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oksunnym@hanmail.com

    입력시간 2003/04/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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