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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4.02 13:13:36 | 수정시간 : 2003.04.02 13:13:36
  • [이 여자가 사는 법] 김종희 여자축구연맹 회장

    북한 여자축구와 꾸준한 접촉, 여자축구 저변 확대 주력



    김종희(48)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은 축구와 관련해서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남자들만의 세계였던 대한축구협회의 최초 여성 대의원이었고, 또 이 조직의 최초 여성 부회장이었다.

    그리고는 지난해 12월 마침내 한국 여자축구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말괄량이 빵집 막내딸이 명실상부한 한국체육계의 지도자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현재 상명대 사회체육학부 교수이기도 한 김 회장은 축구 외에 여타 체육 유관 단체의 일까지 두루 맡고 있는 열정적인 체육인이다.

    한국 레포츠학회 회장, 한국 체육정책학회 부회장 등 체육과 관련해 가지고 있는 굵직굵직한 직함이 무려 12개나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안쓰러울지 모르나 정작 그녀는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한다.


    대학교수가 된 ‘빵집 딸’



    그녀는 어릴 때 동네 사람들에게서 ‘빵집 딸’로 불렸다. 아버지가 광화문에 있었던 옛 시민회관 부근에서 빵집 ‘카프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 그녀는 어려서부터 남자 형제들이 하는 운동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굉장히 씩씩했어요. 밑으로 남동생만 있는데, 남자애들은 어릴 때 누구나 태권도를 시키잖아요. 그게 좋아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어려서 태권도를 배웠어요, 공인 1단입니다.(웃음)”

    1970년대 초반 시절에 여자가 체육을 전공하는 일은 흔한 선택이 아니었다.

    “친정 아버님 연세가 아흔이시고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데, 당시 제가 다른 학과에 가길 바라셨죠. 그렇지만 제가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결국 학과를 다시 바꾸면서까지 체육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제가 체육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내 건강을 지키는 생활 체육으로, 또 내가 즐기기 위해 이 전공을 택했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저는‘플레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건 다 좋아합니다. 악기는 물론 잡기까지.(웃음)”

    그녀는 현재 모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교수 김종희는 체육인 김종희의 유쾌하고 호방한 성품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좀 엄한 편이지요. 실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체육과 아이들을 상대로 하니까, 양쪽을 다 겸비해야 된다고 가르쳐요. 운동도 정신과 목표가 있어야지 정신없이 몸만 움직이는 건 테크닉이지 운동이 아니죠.”


    ‘체육’을 전공한 ‘여성’으로서의 소명의식



    스스로 즐기는 체육을 강조하며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그녀는 스포츠 관련 단체는 물론 여성관련 단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타고난 체력 덕분으로 돌리기에는 감당하고 있은 일의 양이 너무 과하다.

    “특별히 개인적인 계기는 없어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기본적으로 우리사회에 큰 원동력이 되고 큰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야에서든 약간의 마이너 대우를 받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전 정부 행정조직에 있던 체육부가 없어지고 문화관광부 산하의 하나의 ‘국’으로 전락한 것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죠.”

    이는 엘리트 체육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체육행정이 몸을 움직이는 일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는 오래된 유교적 정서의 그늘을 21세기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사실 이 자리(여성축구연맹회장)를 수락하기 전 몇 번 고사했어요. 그러다 우리 사회에서 체육이 여타 분야에 비해 소외되고, 또 여성은 체육 분야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어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힘 닿은 데 까지 노력해 보기로 했지요.”

    운동이란 몇몇 특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체육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그녀는 엘리트 위주의 우리 체육 행정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특히 축구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되어있는데, 여성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자연발생적인 여자축구모임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엘리트 체육의 역할이 컸어요. 그러나 저처럼 월등하게 체육을 잘 하지는 못해도 스포츠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인 배려는 필요하다고 보았죠. 과거엔 우리가 어려웠기 때문에 엘리트 중심의 체육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지만 이제 우리 세대 이후는 엘리트 교육과 생활체육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어디든 힘을 보태야 할 곳이면 달려가는 그에게 씁쓸한 기억도 없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전국구 비례대표로 나갔다가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다. 정치권에 몸 담는다는 것이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개선돼야 할 체육정책들을 위해 체육계에서 그런 인물이 나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긴 탓이다.

    “여성도 어떤 부분에서는 세력화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래서 여성운동 하는 데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일례로 제가 여성문화예술기획에 체육인으로, 또 여성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스포츠는 안 다루더라구요. 그 나름으로 한계가 있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음악, 미술, 영화, 연극에 사진까지 다 하면서 체육은….”




    여자친구 살리기에 주력



    그녀가 요즘 가장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역시 ‘여자 축구 살리기’다. “99년 첫 여자월드컵이 미국에서 열렸을 때, 미국의 프로농구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기록했어요. 그 다음 이 티켓을 따낸 중국에서 올해 2회 여자월드컵이 열릴 예정입니다.”

    화제가 여자축구 쪽으로 옮아가자 그녀는 다음달 있을 태국과의 예선전과 그곳에서 만나게 될 세계 최강의 북한 여자축구팀과의 만남까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소망 외에 그가 오래 전부터 꿈꿔 온 ‘경평축구’를 21세기에 재현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역사는 길어요. 50년대 초 ‘경평축구’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때 남자만 한 게 아니라 여자도 같이 했어요.”

    그녀는 축구연맹 부회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북한 여자축구와의 꾸준히 접촉을 시도했다. 자신이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체육과 교수들이 가는 일이 있을 때마다 짐 보따리 부탁하듯 남북여자축구 교류의사 전달을 부탁하곤 했다.

    “서면으로 받은 답은 아니지만 굉장히 긍정적인 답이 왔어요. 그래서 올해 만나면 친선교류 경기를 서울에서든, 평양에서든 할 수 있게 하고 싶고, 이걸 토대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던 옛 ‘경평축구’를 되살려 보고 싶습니다.”

    연맹 회장으로서 그녀의 욕심은 한이 없어 보였다. 초ㆍ중ㆍ고교에서부터 저변을 다지고, 대학과 실업팀을 활성화하고, 엘리트 체육으로서의 주가도 올리고 싶고,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한국 여자 축구를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고….“우리도 잘합니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성적이 좀 저조했지만. 북한, 중국, 미국…. 저는 나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다음은 한국이라고.(웃음)”


    ‘밀가루집’남자를 평생지기로



    인터뷰를 하다 뜬금없이 이렇게 물어 보았다. “오늘 아침 뭐 해 드셨어요?”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고운 피부와 스커트를 입은 맵시있는 모습에서 ‘한국 여자’의 느낌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어머니 생신이어도 아침은 무조건 빵과 우유에 과일이에요. 결혼 전부터 양가가 다 그랬어요. 재미있게 얘기할까요? 제가 빵집 딸이잖아요, 그런데 밀가루 집 남자랑 결혼했어요.(웃음) 대한제분 창업주가 시아버님 되세요.”

    빵집 딸과 밀가루 집 남자는 이제 아침에 밥을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하여 오전이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이후 외국생활을 한 밀가루 집 남자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단다. “정말 행운이었어요. 남편은 물론 시어머니까지 제가 활동하길 원했으니까요. 왜 나가서 일하지 않느냐, 날이 우중충하면 ‘얘 아가야, 나가서 진토닉 한 잔 먹고 와라’ 하실 정도로요. 더구나 아이가 없으니까 더더욱 양가에서 제가 일하길 원하셨죠.”

    이렇게 바쁘게만 사는 그녀에게 부부는 어떤 의미일까.

    “저는요, 술과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물 먹고 헤어지지 않고 술을 마시는데, 기본적으로 소주가 2병, 양주 1병이 제 주량입니다.(웃음) 폭탄주는 7잔까지 마실 수 있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또 술을 강요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저는 술을 정말 즐겨요. 특히 술을 마시고 나서 마지막으로 꼬냑을 한 잔 마시는 게 최고로 좋아요.

    우리 남편과 주량이 비슷하죠.(웃음) 그렇게 좋은 사람과 마시다 보면 2,3명 남을 때까지 마셔요.(웃음)” “그렇게 자주 취하도록 마시면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묻자 곧바로 이런 대답이 날아왔다. “아니지요, 남편이 데리러 오지요!”



    양은주 자유기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3/04/0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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