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전교조, 권력이냐 교권이냐] 갈등의 골에 빠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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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4.15 15:40:35 | 수정시간 : 2003.04.15 15:40:35
  • [전교조, 권력이냐 교권이냐] 갈등의 골에 빠진 학교

    전교조·교총 첨예한 대립, 교권실추로 이어져



    “선생님들이 싸움질이나 해 대는데 애들이 무슨 공부가 되겠어요. 차라리 유학이나 보내고 싶다니까요.” 서울 Y여고에 다니는 딸을 둔 학부모 김 모(45)씨의 한탄이다. 이 학교는 지난달 21일 직원회의 중에 교총 소속인 예체능 부장교사가 사제지간인 전교조 소속의 여교사에게 반말을 한 것이 화근이 돼 단단히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부장교사의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교무실에서 사과 도중 분을 이기지 못해 옷을 벗어던지고 소주병을 깨며 ‘앞으로 교무실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함부로 대들면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고함을 질러 일명 ‘병부림 사건’으로까지 비화됐다.

    이에 전교조 서울지부까지 개입, 교장 퇴진과 해당 교사의 징계까지 요구하고 나섰고, 교장은 문제의 부장 교사에게 ‘근신’조치를 내렸지만 이후 교사들간의 갈등은 악화일로다.

    교총 소속 교사들이 “전교조 교사들이 특정인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면서 아이들을 선동하고 있다”며 치고 나오자, 전교조 교사들은 “자질이 의심스러운 교사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교사간 갈등, 관계 악화일로



    교사들이 ‘전교조-비전교조’ 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보인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전교조가 ‘민주노동의 발전 노조 파업에 동참한다’며 수업 시간 도중 관련 교육을 시키고 조퇴 투쟁 등을 감행했을 때의 일이다.

    경북의 한 중학교에서 교무부장이 ‘계도 교육 금지 및 파업 동참 자제’에 관한 도교육청 공문을 직원회의에서 전달하자 전교조 소속 한 교사가 “교무부장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고 맞서는 것으로 사태는 불거졌다. 다음날 폭력 사태로 비화된 이 마찰은 부장 교사가 진단서를 첨부해 고소하는 것으로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또 지난해 9월 경북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회식 중 교감이 “여 선생님께서도 교장 선생님께 술을 한 잔 권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전교조에서 ‘성희롱’이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사과 요구 및 언론 보도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 사건은 현재 여성부 남녀차별위원회에서 2차 심의중이다.



    이처럼 ‘사건’으로 비화된 것만 해도 지난해 25건에 달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이러한 교원간 갈등은 2000년 7건에서 2001년 20건, 지난해 25건으로 전체 학교 분쟁 중 21.7%를 차지했다. 교총 관계자는 “전교조 합법화 과정에서 이미 예상된 바다. 교권경시 풍조가 날로 확산되는 데 이런 갈등이 지속되면 교원 스스로 권위를 깎아먹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 내 작은 의사결정을 두고도 사사건건 마찰이다. 서울 S여고에서는 교복에 다는 이름표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 학교 최 모 교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이름표를 제대로 안 달 경우 바느질을 해서 교복에 아예 이름표를 붙여 버리기로 학생회 간부와 약속을 했다. 그러자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인권침해’라며 들고 일어나 한동한 학교가 시끄러웠다.

    최 교사는 “솔직히 아이들은 이름표 바느질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는데 전교조 소속교사들끼리 몇 차례식 회의를 하고 모임을 가지는 등 이 사건을 문제화 했다”고 말한다.


    “기회주의자” “싸움군들” 반목



    뿐만 아니라 ‘전교조 교사와 교총 교사는 서로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서로 권하지 않는다’ 는 등 양측의 분열상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전교조 교사들은 교총 교사들을 ‘학교에 아부나 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폄하하고, 반대측에서는 전교조 교사들을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싸움꾼들’이라고 비난하는 등 반목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갈등의 본질에는 두 교원단체간의 힘겨루기보다는, ‘노조’인 전교조와 아직도 상하관계에만 익숙한 학교측의 인식차이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합법화 이후 ‘노동 3권’을 기대하고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이 증가해, 학교측에 문제를 부쩍 제기하게 된 상황이 단단히 한몫한다.



    99년 말 전교조에 가입한 경남 A고교 교사 박 모(30)씨는 “학교 현장에는 일방적인 지시에 의한 잡무 같은 것이 엄청나게 많다”며 “합법화 이후 학교 내에서도 발언권이 많이 커졌다. 80여명 교사 중 전교조 조합원이 50명이 넘어, 학교 운영위 위원 선출 등을 통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이 열린 셈”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교장ㆍ교감 등 학교 경영진의 ‘전횡’에 대한 제동 장치도 강화되고,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장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학교사회의 민주화에도 많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하관계가 지배하는 수직적 질서에 익숙한 학교측의 시각은 ‘사용자측의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려는 전교조의 행동과 많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또 전교조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합원 9만 7,000명에 상근자만 140여명에 달하는 ‘거대조직’으로서 개별 학교의 분쟁에 과잉 개입한다든지, 서면 사과 고집이나 교육청 점거 농성 같은 무리한 방법을 사용해 갈등을 더 악화시킨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피해자는 학생



    이런 상황에서 서울 M중학교의 ‘갈등 매니지먼트’는 모범사례로 꼽힐 만 하다. 이 학교의 경우 교장이 먼저 나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단협이 통과되면 이를 즉각 학교행정에 반영하는 등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전교조 조합원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다.

    조합원들도 이에 보답, 지난해 인근 학교에서는 조합원 전원이 참가한 연가투쟁에 시늉만 내는 차원에서 한 사람만 참가하는 등 평화로운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덕분에 이 학교에서는 교사 간 갈등은 물론, 학교 폭력이나 왕따 등의 문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학교 교장 문 모씨는 “교육계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라며 “교장이든 교사든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 이는 결코 ‘굴복’이 아니다”라고 한다. 시대가 변한 만큼, 교장 등 간부 교사들도 군림하는 ‘어른’이 아니라 합리적인 CEO의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식의 개선에 더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갈등 해결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지금처럼 전교조 주도의 갈등 해결 방식 대신, 교원단체와 전문가 등이 고루 참여하는 갈등 해결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은경 기자 key@hk.co.kr

    입력시간 2003/04/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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