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전교조, 권력이냐 교권이냐] 교장의 죽음, 그리고 교단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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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4.15 15:48:44 | 수정시간 : 2003.04.15 15:48:44
  • [전교조, 권력이냐 교권이냐] 교장의 죽음, 그리고 교단 권력

    시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으로 표면화된 교육현장의 위기와 모순



    4월 4일 낮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경찰 간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 기자, 오늘 아침에 교장이 자살한 거 얘기 들었어?”

    “아뇨. 누군데요?”

    “예산 보성 초등학교”

    “네? 그 교장이라면…”

    순간적으로 이틀 전 지방 신문에서 본 ‘교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 말썽, 전교조 사과 요구’란 제목의 기사가 떠올랐다.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 교장이라면 바로 그 교장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렇게 시작된 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 사건은 이후 교육계에 일파만파의 파문을 불러 일으켰고, 전교조에게 최대의 위기를 안겨주게 됐다.

    보성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1명인 미니 학교다. 교사도 교장과 교감을 포함, 8명 뿐이다.


    차 시중요구의 진위는?



    조용한 시골 학교에서 갈등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3월 중순. 출근 3주째인 기간제 여교사 진모(28)씨가 3월 20일 서승목(57) 교장에게 사표를 낸 뒤 곧바로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교조 홈페이지 등에 ‘여교사라는 이유로 차접대를 강요하는 현실’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진씨는 “교감이 ‘교장 선생님께 잘 보여야 해. 아침에 교장 선생님께 차 좀 갖다 드리고…’라며 자신에게 차 시중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신이 이를 거부하자 “교장 선생님이 불러 ‘계약서에 기타 업무 이행이 있는데 불이행시 그만둬야 해. 말해. 만약 접대 할거면 어디까지 하겠는지. 교감한테 못하겠다고 했다며. 당돌하군. 윗사람이 시켜서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야. 진 선생 전교조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도 수업 중이라도 손님이 오면 내려와 차를 타야 한다는 그분들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교권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처음 느꼈다. 저 같이 여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접대를 강요 받으며 상처 받는 기간제 교사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글을 올린다”고 덧붙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씨와 서 교장은 진씨가 예산초등학교 재학 시절 사제지간이었다. 15년만의 재회가 두 사람 모두에게 이미 엄청난 불행의 시작이었다.

    전교조 충남지부(지부장 고재순)는 즉각 사태에 개입했다. 진씨는 전교조 조합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교조는 이 사태를 ‘교권 침해’와 ‘전교조 비하’라고 규정했다. 글이 뜬 바로 다음날부터 전교조 충남 지부 간부들이 잇따라 보성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서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 파악에 나섰고 진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3월 24일 서 교장에게 ▦진씨의 원상 복직 ▦업무 담당 상관의 접대 및 접대 기구(찻잔 등) 관리 조항 폐지 ▦교장과 교감의 서면 사과 등 3개항을 요구했다. 접대 조항은 예산군 교육청의 감사에서도 지적돼 폐지키로 결정됐고, 진씨의 복직도 합의가 됐다.


    사과문 무산과 전교조의 대응



    그러나 문제는 서면 사과였다. 서 교장은 서면 사과를 못하겠다고 버티다 28일 ‘사과문을 다른 데 이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조건으로 서면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이번엔 교감이 ‘절대 못하겠다’고 반발했다. 교감은 한술 더 떠 교육청 홈페이지에 진씨의 주장이 사실 무근이란 글을 올려 전교조측에 정면 대응했다.

    사과문과 서약서의 교환이 무산되자 전교조는 ‘행동’에 나섰다. 31일 전교조 교사 20여명이 예산군 교육청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 보도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사과문은 서 교장을 모욕하려는 뜻이 아니라 재발 방지 보장 차원에서 요구한 것”이라며 “사과문 요구, 항의 방문, 보도 자료 배포 등은 우리의 통상적 대응 방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장단은 “교장이 구두 사과를 하고 진 교사를 복직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서면 사과를 강요한 것은 횡포”라며 “전교조가 무슨 법적 근거로 선배 교육자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하느냐”고 따졌다.



    “4월 2일 아침 신문에 난 기사를 보더니 입술이 파래졌어요. 그 후론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서 교장의 부인 김모(53)씨는 4일 아침 깨어보니 남편이 없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부모 댁에 간 것으로 생각했다. 소문난 효자였던 서 교장은 매일 새벽 혼자 사시는 노모에게 문안 인사를 다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은 출근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웃들과 함께 남편을 찾아 나선 김씨는 오전 10시께 어머니집 앞 은행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유서는 없었다.

    하지만 유가족은 서 교장이 목숨을 끊은 것은 전교조 때문이라며, 사건의 발단이 된 기간제 여교사 진씨와 보성초등학교의 전교조 여교사 2명, 전교조 충남지부 관계자 등 모두 5명을 명예 훼손 및 공갈 협박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 첨부된 서 교장의 다이어리에는 전교조 충남지부 간부가 전화로 ‘묻는 말에 똑바로 답하라. 허위로 밝혀질 때는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말은 법정에 가서 하라는 등 공갈 협박’이란 메모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가 없어 자살 동기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수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 참고인 등을 상대로 서 교장에 대한 명예 훼손과 공갈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를 캐는 데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 교장의 죽음은 즉각 전교조에 대한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촉발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대의 시련이다. 한국 교총과 교장단, 학부모 단체 등은 ‘전교조 관련자의 사법 처리’를 요구하며 연일 집중 포화를 날렸다. 전교조 홈페이지는 비난성 글이 폭주,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다. 일부 극단적인 네티즌들은 전교조를 ‘살인마’로 표현하며 ‘해체’를 주장했다.


    전교조 성토장된 영결식장



    특히 8일 학교장으로 엄수된 서 교장의 영결식장은 전교조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영결식이 열린 운동장에는 전교조를 공격하는 만장 50여개가 세워졌고 전국에서 700여명의 초ㆍ중ㆍ고 교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참석한 가운데 전교조 비난 일색의 애도사가 이어졌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고진광 상임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노동자 선생님’에게 맡길 수 없다”며 “교사의 의무를 저버리는 세력은 교단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군현 한국교총 회장은 “정부가 학교 현장의 초법적, 위법적 행위를 수수방관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교직 사회 갈등의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ㆍ도 교육감들도 나섰다. 전국 시ㆍ도 교육감 협의회(회장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는 11일 “자신들의 주장만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면서 그것만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강조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며 전교조를 비판했다.

    강복환 충남도교육감은 “향후 학교장의 학교 경영권에 도전하는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경고하고 “경찰 조사가 끝난 뒤 관련 교사들에 대해 전보 조치 등 강력한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불행한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그러나 사건의 객관적 실체가 밝혀지기 전에는 사과할 수 없습니다.”

    전교조는 9일 기자회견을 열어 비난여론에 대해 정면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교조는 “고인의 불행을 빌미로 전교조의 교육적 열정을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일부 집단의 시도는 매우 악의적이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재순 전교조 충남지부장은 “4월 2일 열린 교장단 회의에서 교육청 간부의 질책과 동료 교장들의 사과 거부 압력이 가해져 진퇴양난이 된 서 교장이 극단적인 탈출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새로운 자살 동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전교조는 이와 함께 “이 사건을 왜곡한 보수 언론과 교장단, 한교총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혀 이 사태는 법정 공방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는 “우리가 ‘완전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은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태도도 비치고 있다.

    “어른들이 무서워요.” “우리학교는 이제 폐교되나요?” “전교조 선생님 반이라고 아이들이 놀려요.”


    상처입은 학생들과 학부모



    이번 사태는 아무 죄 없는 어린이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있다. 보성초등학교 학생들은 요즘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있다. 학부모들이 지난 7일 수업 중인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데리고 간 이후 자녀들을 등교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부도덕한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 진씨와 전교조 여교사 2명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잘 해줬는데, 우리 선생님이 무슨 큰 죄를 저질렀나요?” 진 교사가 담임이었던 한 3학년 학생은 어른들의 일이 크게 궁금한지 기자에게 이같이 묻기도 했다.

    “이 사건은 교육현장의 대립과 모순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이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학교에는 전교조와 교장만 있고 학생이 없습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을 중심에 놓고 모든 문제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교육계, 특히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전교조는 이 같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전국 시ㆍ도 교육감 협의회(회장 유인종 서울 교육감)는 11일 교육 인적 자원부에서 열린 회의 직후 성명을 발표, “자신들의 주장만을 강요하면서 그것만이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며 “이런 상태에서 교육부가 ‘교육 헌장 안정화 추진단’ 같은 기구를 백번 만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밝혔다.

    이날 관할 책임자인 충남교육청 강복환 교육감은 “수사 결과, 일부 교사들의 잘못이 드러나면 해당 교사의 전보 조치 및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해 일파만파를 예고 했다.



    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입력시간 2003/04/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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