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이라크 전쟁] 스마트·정보화 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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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4.18 14:26:11 | 수정시간 : 2003.04.18 14:26:11
  • [이라크 전쟁] 스마트·정보화 전쟁의 서막

    첨단무기 동원한 21세기 혁명적 전쟁모델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세계의 내로라 하는 군사전문가와 저널리스트들을 한꺼번에 바보로 만들었다. 누구도 미국의 새로운 전쟁방식을 예상하지 못했고 미ㆍ영 연합군의 신속한 진격과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사전문가 마이클 오헬런 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개전 15일째인 4월3일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이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의 절반을 파괴했다”고 발표했을 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6개 사단 8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 최정예 군사력인 공화국수비대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미군의 전격적 승리는 1991년 걸프전에서 명성을 날렸던 스타 종군기자 피터 아네트에게도 물을 먹였다. 그는 연합군이 개전 초기 남부전선에서 잠시 교착상태에 빠지는 듯 하자 “연합군의 작전 구상은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를 비웃듯 쾌속 진격을 시작했다.


    3주일 전쟁



    3월20일 개전에서 4월9일까지, 사담 후세인 정권의 심장부인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는 데는 21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4월3일 연합군이 바그다드 서남부 교외의 사담 국제공항에 접근한 지 7일 만이다. 잔여 세력 소탕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은 ‘3주일 전쟁’이라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3주일 만에 연합군이 돌파한 전장 종심 거리는 이라크 최남단 페르시아만과 쿠웨이트에서 500㎞가 넘는다.

    그러면 군사적 측면에서 이번 전쟁은 어떤 전쟁이었고, 미군은 어떻게 싸웠을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군사전문기자 피터 스피겔은 4월9일 “2차대전 이후 현대전에서 이번 같은 블리츠크리크(Blitzkriegㆍ전격전)는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번 전쟁을 “21세기 전격전의 단면을 보여준 혁명적 전쟁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군은 이라크군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인 체제의 핵심을 곧바로 공격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고전적 전쟁이 적의 주력 격파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전쟁은 체제의 기능 정지를 겨냥했다.

    미군은 아울러 전면적인 제공권과 정보력 우위를 지상군과 결합시켰다. 나아가 외과수술식 정밀타격 능력을 지상군의 신속한 기동과 결합시켰다. 대규모 지상군의 진격이 공중우위, 정보력 우위와 혼연일체로 전개된 전쟁은 인류 전쟁사에서 유례가 없었다. 코소보 전쟁은 공군력과 정보력만으로 이뤄졌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군을 대신해 북부지역의 반군연합이 지상군의 주력을 형성했다.

    지상군의 진격에 앞서 미군은 이라크의 지휘ㆍ명령ㆍ통제ㆍ통신 체계(C4I)와 대공방어 능력을 무력화 시켰다. 이라크군의 조직적인 대응능력을 마비시키고 전투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였다.

    미군이 이라크군의 전쟁지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투입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개전 후 4월1일까지 12일간 미군 전투기의 출격회수는 2만5,000회에 달했다. 재급유기가 제공한 항공연료는 2,960만 갤런이었고 각종 전투기가 소모한 폭탄은 3만3,000톤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미군의 새로운 전쟁모델은 거대한 지상ㆍ공중 보급능력을 전제로 한다. 페르시아만과 지중해에 포진한 6개의 항모전단과 보급선단은 미군의 새로운 전쟁모델이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펼쳐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늘과 땅 완전 장악



    적의 전쟁 지휘체계 공격이 지상군에 대한 간접적 지원이라면 하늘과 땅에서는 직접적 지원이 이뤄졌다. 하늘에서는 첩보위성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호크아이 첩보기, 프레데터 무인정찰기(UAV)가 이라크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교신상황을 체크했다. 특히 호크아이와 프레데터는 이라크군의 진용 및 이동 상황을 영상으로 전장 지휘관의 노트북 컴퓨터로 전송했다.

    지상 정보는 1,000명 이상이 투입된 특수부대가 맡았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델타포스, 육군의 레인저 부대, 해군의 실(SEAL) 부대는 공중정보 체계가 감지하지 못한 전장 정보를 잡아냈다. 지상군의 선봉에서는 전폭기의 원거리 공습, A-10 선더볼트기와 아파치 롱보 헬기의 근접지원, 포병의 후방 포격이 동원됐다.

    그렇다고 지상군이 낮잠을 잔 것은 아니다. 미 제3기계화보병사단과 해병대 제1원정대 선봉대는 개전 초기부터 남부의 바스라와 움카스르, 나시리야, 나자프, 힐라, 카르발라, 쿠트 등 도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속하게 바그다드로 북진했다. 이들 도시의 이라크 저항군에 대해서는 우선 소규모 부대로 발을 묶어 놓은 뒤 포위소탕전 임무는 후속부대에 인계했다.

    아울러 이라크군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3기계화보병사단과 해병대 제1원정대는 좌우익으로 나뉘어 서부와 동부에서 동시에 진격했다. 제3기계화보병사단은 유프라테스강을, 해병대 제1원정대는 티그리스강을 끼고 개활지를 돌파했다. 강을 따라 진격한 것은 적의 측면공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강이 천연 장애물로서 한 쪽 측면을 자연스럽게 보호해 준 것이다.

    하지만 종심 돌파 거리가 긴 만큼 측면의 취약성은 여전히 남는다. 제3기계화보병사단과 해병대 제1원정대의 진격로 사이에 최대 100㎞의 공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이라크군이 집결, 측면을 돌파해 허리를 끊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막기위해 투입한 병력이 미 101공정사단이었다. 101공정사단은 신속한 기동력과 유연한 전개력을 이용해 제3기계화보병사단과 해병대 제1원정대의 중간을 따라 진격하며 이라크군을 격파했다.

    지상군의 작전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의 도시 포위공격전이다. 바그다드 공략전에서 미군은 전통적인 원형포위와 소모전 전술을 완전히 탈피했다. 대신 바그다드 시내의 거점을 공격해 확보하고,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지도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전술을 썼다.

    시가전에서도 미군은 M1A2 에이브럼스 전차와 브래들리 장갑차 등 기갑부대를 헬기 강습부대 및 보병과 결합하는 새로운 보전(보병과 전차)합동 기동으로 전술적 혁명을 이뤄냈다. 아파치 롱보 헬기와 A-10 선더볼트기의 근접 공중지원을 받으며 이뤄진 시가지 진격은 미군의 피해를 극소화했다.

    20세기 이래 전쟁사에서 도시를 평지로 만들거나 포위 고사 시키지 않고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를 장악한 전례는 없다. 바그다드 공략전에서 미군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당초의 계획을 달성했다.




    전술적으로도 완벽한 승리



    주목할 것은 500㎞ 이상의 종심 돌파 속에서도 선봉 부대인 미 제3기계화보병사단과 해병대 제1원정대는 긴 보급선을 전혀 교란 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급은 전쟁의 생명이다. 현대전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군 1개 기계화사단이 전면전을 펼칠 경우 하루에 소모하는 탄약과 유류, 식량, 식수 등은 1만 톤에 이른다.

    미군이 바그다드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공화국수비대 6개 사단의 위협 속에서도 긴 보급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전술개념에서 보면 기적에 가깝다. 이것은 미군의 압도적 우위와 함께 21세기 첨단기술전쟁에서 약자가 처한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보력과 기술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21세기 전쟁에서 1등과 2등의 격차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벌어져 2등이 선택할 수 있는 전술상 여지는 별로 없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전쟁 전 미군의 장거리 정밀타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화국수비대를 비롯한 주력군을 소규모로 분산 배치했다. 하지만 반격을 위한 병력의 재집결은 연합군의 공중ㆍ지상 각개격파에 막혀 불가능했다.

    물론 후세인이 병력을 집결상태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미군의 공습에 더없이 좋은 표적이 됐을 것이다. CSIS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라크군이 강력한 참호를 구축하고 대응했더라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1세기 전장에서 2등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연합군과 이라크군의 전력비교에서도 확인된다. 연합군 총병력은 미군 25만5,000명과 영국군 4만5,000명 등 30만 명을 약간 웃돌았다. 반면 이라크 병력은 38만9,000명으로 절대규모에서 앞섰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라크군의 전차 2,600대는 무력하게 무너졌고, 각종 전투기 316대와 헬기 375대는 단 한 번도 날아보지 못했다. 1,100기에 달했던 대공미사일은 개전 초기에 파괴되거나 레이더 무력화로 무용지물이 됐다.

    이번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4월4일 제3기계화보병사단에 의한 바그다드 외곽의 사담 국제공항 점령 작전이었다. 이날 미군은 바그다드 외곽에 있던 공화국수비대 4개 사단 생존병력의 바그다드 합류를 차단하기 위해 개전 이해 최대의 공중ㆍ지상공격을 퍼부었다.

    이날 하룻동안 1,850회의 공중 출격이 이뤄져 700회의 지상공격이 진행됐으며 이중 80%는 바그다드로 들어오려는 공화국수비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울러 400회의 공중급유, 350회의 공중보급, 100회의 각종 공중정찰 임무가 수행됐다. 이 같은 공중지원을 바탕으로 제3보병사단은 사담 국제공항 장악과 바그다드 공략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라전 이후 시나리오는?



    이라크전의 눈부신 성공은 미국 주도의 21세기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서막으로 평가된다. 상대가 누구든 ‘힘의 중심(Center of Gravity)’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패권 안정론(미국의 패권에 의한 세계안정)’을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0월 주창한 ‘악의 축’ 3개국 중 이라크가 꺾였다. 미국이 남은 이란과 북한을 다음 순서로 겨냥할 경우 한국에게는 끔찍스러운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이다. 서울이 북한의 대규모 장사정포에 의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북한 공격은 한반도 공멸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배연해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3/04/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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