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데스크의 눈] e정부의 후퇴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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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6.03 14:16:37 | 수정시간 : 2003.06.03 14:16:37
  • [데스크의 눈] e정부의 후퇴는 안된다

    얼마 전에 인감증명서를 떼러 집 주변의 동사무소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인감(증명서) 한 통 떼려는데요”

    “신분증 주세요. 아, 도장은 필요 없어요”

    “아니, 왜요?”

    “전산화가 끝났잖아요. 여기(동사무소)로 오실 필요도 없어요. 이젠 신분증만 있으면 어디서나 뗄 수 있어요.”

    국민과 국가 정보를 행정전산망에서 통합 관리하는 전자(e)정부 시스템은 행정업무의 대국민 서비스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분명하다. 개인의 재산권 행사에 아주 중요한 인감증명서 발급은 차치하고서라도 간단한 주민등록등ㆍ초본 한 통을 떼려고 바쁜 시간을 쪼개 주민등록상의 동사무소를 찾아가야 했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것은 정보통신(IT) 혁명과 함께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e정부 덕택이다. e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는 자명하다. 행정서비스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통합, 전산화함으로써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또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e정부 구축 11대 과제를 설정해 추진 중이다. 인감증명서 발급과 같은 민원 업무의 단일창구화를 비롯해 사회보험의 정보시스템 통합, 종합 국세서비스 등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관심도에서 첫손 꼽히는 교육 분야가 빠질 수 없다. ‘교육대란’우려 속에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도 11대 과제 중 하나다.

    윤덕홍 교육 부총리의 말바꾸기로 앞날이 불투명한 NEIS는 전국 1만여 초ㆍ중ㆍ고교와 16개 시ㆍ도교육청, 교육부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모든 교육행정 업무를 온라인으로 통합 처리하는 것이다.

    학부모의 민원 업무 차원에서 보면 자녀의 전ㆍ입학시 학교에 가 각종 서류를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지고, 안방에서 각종 증명서를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 자녀들의 전ㆍ입학시 번거롭고 복잡한 교육행정 절차에 불만을 가졌던 개인 경험으로는 NEIS 시행이 ‘늦지 않게 정말 잘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정보의 통합이 안겨주는 편의성 못지않게 큰 부작용이다. NEIS에 입력된 정보 중에는 반드시 보호돼야 할 국민의 기본권인 사생활에 속하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학생의 건강상태나 출결자료, 성적, 학부모에 대한 신상정보 등은 철저히 개인정보여서 유출되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전교조가 NEIS 입력 정보 중 일부가 인권 침해와 외부 유출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한 것은 일리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NEIS의 27개 영역중 교무·학사, 보건, 입학·진학 등 3개 분야에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오랜 군사독재체제에 짓눌려온 탓인지, 우리 사회는 인권침해를 이슈로 내세우면 반응이 빠르고 과도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전교조가 NEIS의 인권침해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무조건 안 된다고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솔직히 말해 인권위가 인권침해의 예로 들었던 교무ㆍ학사 영역중 학생의 동거가족수, 소년 소녀 가장 여부 등은 굳이 NEIS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행정전산망을 통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또 감추고 싶은 학생의 출결 및 상벌사항 등은 접근 가능한 대상자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해킹과 같은 불법 접근을 막는 보안장치를 강화한다면 인권침해 소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권침해의 여지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론을 펴는 분들에게는 인권침해 방지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적 효과를 한번쯤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미국과 유럽 등 교육 선진국에서 자녀를 키워본 학부모라면 그들의 학생지도 방식이 얼마나 철저한지 기억할 것이다.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을 상담하고, 진로에 대해 조언한다. NEIS가 구축되면 우리 선생님도 그 학생의 모든 자료를 갖고 상담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해 보라. 건강에서부터 성격, 학습 수준, 집안 환경 등 학생을 완전히 파악한 다음 지도(교육)을 하는 것과, 얼굴만 보고 상담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더 교육적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제쳐 놓고 NEIS를 노사 차원에서 시행이냐 중단이냐를 다루는 표피적인 방식에 매달려 왔다. 정부도 이 문제를 전교조와 교육부, 전교조와 교총간의 투쟁, 혹은 힘겨루기로 보고 해결방안을 찾았다. 그것은 전교조가 NEIS를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한 방법으로 이슈화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NEIS의 효용성을 재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NEIS처럼 개인의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것 자체가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문제가 된다면 e-정부 계획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e-정부의 폐기가 아니라 정부 부문에 민간 부문을 덧씌우는 2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정보화 세계의 큰 흐름이다. NEIS의 중단과 같은 e-정부의 후퇴는 안 된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3/06/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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