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생보사 목에 상장 방울을 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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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6.03 16:06:48 | 수정시간 : 2003.06.03 16:06:48
  • 생보사 목에 상장 방울을 달아라

    생명보험업계 상장 회오리
    투명성 확보 위해 불가피, 자본차익 분배문제 논란




    “군사 정부도, 문민 정부도, 그리고 국민의 정부도 해결을 못했는데 참여 정부가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을까요?” 벌써 16년째다. 1987년 정부가 상장 원칙을 정한 이후 ‘생명보험회사 상장’은 2~3년 마다 한번씩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소모적인 논쟁만이 되풀이됐을 뿐이었다.

    그리고 2003년 5월,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오는 8월까지 생명보험회사 상장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생보 업계는 다시 한번 상장 회오리에 휘말렸다.

    하지만 반신 반의하는 분위기다. 적어도 수 조원의 돈이 걸려있는 문제인 데다 다투는 쟁점이 그리 간단치 않은 탓이다. 얽혀있는 이해 관계자도 한둘이 아니다. “괜히 또 벌집만 쑤셔놓고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73조원 공룡 삼성생명 자산의 주인은?



    자본금 1,000억원에 보유 자산 73조원. 우리나라 대표 생보사 삼성생명의 자산 구조는 누가 봐도 기형적이다. 해마다 자산을 10조원 이상씩 부풀려가며 자산 100조원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주주의 돈 1,000억원을 제하고 나면 모두 보험 계약자의 재산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생보 업계는 90년대 초반까지 회사 경영 실적에 따라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유배당 보험만을 취급해 왔다. 계약자 역시 주주와 함께 회사 경영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는 얘기다.

    생보사 상장 논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외형적으로는 주주가 돈을 출자해 만든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생보사는 계약자들의 재산으로 공동 운영되는 상호회사적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주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생보사들은 다른 업종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순수 주식회사임을 강변하는 반면, 계약자의 편에 선 시민단체 등은 상호회사에 더 가까운 형태의 회사라며 맞서 왔다.

    ‘주식회사 vs 상호회사’ 가 논란의 쟁점이 된 것은 상장 시 발생하는 적게는 수조원, 많게는 수십조원의 자본 차익을 누가 가져야 하느냐는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주주가 모두 가져야 한다는 생보사와 주주와 계약자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시민단체가 팽팽히 맞서왔다.

    처음 논의가 시작된 것은 87년 11월이었다. 84년 이후 생보사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올리면서 기업 공개 요건을 갖추자 정부가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생보사 기업 공개, 즉 상장을 유도한 것이다.

    89년과 90년 교보생명과 삼성생명은 차례로 기업 공개를 전제로 자산 재평가를 실시했다. 자산재평가란 생보사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의 장부가를 현재 시가로 재평가하는 것. 교보생명은 2,197억원, 삼성생명은 2,927억원의 자산재평가 차익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장부상 보유 자산이 순식간에 2,000억~3,000억원이 높아진 것이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생긴 이 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재무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생보사의 잉여금 및 재평가적립금 처리 지침’을 만들었다. 골자는 재평가 차익의 30%는 주주에게, 70%는 계약자에게 배당하되 이중 30% 포인트는 회사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사내에 유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보사 상장시 물량 부담으로 주식시장 침체를 부추길 거라는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생보사 상장 문제는 일단 수면 밑으로 잠복했다.


    주식 배당이냐, 현금 배당이냐



    그로부터 수차례 생보사 상장 논의가 재개됐지만 결론을 내는 데는 번번이 실패한 채 방치돼 왔다. 상장 차익에 대한 계약자 몫이 있느냐 없느냐, 또 계약자에게 차익을 분배한다면 주식으로 나눠줄 것이냐 현금으로 나눠줄 것이냐에 대해 의견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2~3년 주기로 공청회를 여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매번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현재 생보사 상장 논쟁은 상장 차익을 계약자에게 건네는 형식, 즉 현금 배당을 할 것인지 아니면 주식 배당을 할 것인지의 양자 택일로 좁혀진 양상이다.

    “주식 배당만 아니라면 비록 주식회사이긴 하지만 계약자의 공헌을 감안해 일정 금액은 현금으로 나눠줄 수도 있다”는 데 생보 업계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탓이다. 이 경우 금액이나 배분 비율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남겠지만 타결점을 찾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란 얘기다.

    주식 배당론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89~90년 재평가 차익 중 자본잉여금 항목으로 사내 유보된 30%, 즉 2,000억~3,000억원의 성격이다. 계약자 배당분 70% 중 30% 포인트가 사내 유보된 만큼 상장과 함께 이를 계약자들에게 주식으로 배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윈 정재욱 연구위원은 “이는 사실상 계약자 꼬리가 붙은 자본금 성격의 돈”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계약자들에게 주식으로 나눠줄 경우 이후 상장 차익 역시 계약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어 상장 차익 분배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식 배당론자들은 논란이 상장 차익의 분배 문제로만 비춰지는 것을 경계한다.

    참여연대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생보사 상장 문제는 상장 이익의 분배 문제가 아니라 89~90년 자산재평가의 회계 처리 문제임을 분명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반면 생보 업계를 대표하는 삼성생명은 “계약자 주식 배당은 개인 사유 재산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맞선다. 삼성생명 고준호 부장은 “국내 생보사는 주주의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상법에 근거해 설립된 주식회사”라며 “생보사 주식 가치는 계약자의 보험료 납입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주와 경영자의 경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의 의지만 남았다



    벌써 십수년째 똑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정재 금감위원장의 공언대로 생보사 상장 문제가 8월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자칫 경영권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젖은 생보 업계의 전방위 로비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압력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만약 생보사 상장을 더 늦출 경우 금융 당국은 그만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자본을 추가 조달하지 못할 경우 언제 퇴출될 지 모를 생보사들이 줄을 서 있는 데다, 다른 업종에 비해 뒤쳐진 재무 건전성이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도 기업 공개는 필수적이란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국내 생보사의 재무 건전성이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상장을 통해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고 권고한 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를 위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채권단에 사재로 출연한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의 처리 문제도 벌써 4년여간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만약 상장이 늦춰질 경우 채권단과 삼성이 2조4,500억원에 달하는 초유의 소송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소 생보업계 한 임원은 “벌써 몇 년 째 반복하고 있는 공청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이제는 각종 압력과 싸울 수 있는 정책 당국의 의지만이 필요할 때”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3/06/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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