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스포츠 프리즘] 코엘류 신화의 서막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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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06.05 11:06:57 | 수정시간 : 2003.06.05 11:06:57
  • [스포츠 프리즘] 코엘류 신화의 서막 열리다

    도쿄대첩 승리 이끌며 정상 궤도 진입, 독일월드컵 향해 본격 발진



    “이런 잔디는 곤란하다.”

    5월29일 오후 6시30분 일본 도쿄 외곽의 니시가오카 축구 연습장은 점잖기로 소문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거친 항의로 한동안 썰렁했다. 한일전에 앞서 이날 도쿄에 도착해 한국 축구대표팀의 첫 현지 적응 훈련을 지휘한 코엘류는 “곳곳에 잔디가 패여 내가 구상한 훈련을 하기 힘들다”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니시가오카 구장이 ‘연습 불가’ 상태는 아니었다. 코엘류는 한국과 일본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연습 장소로 니시가오카를 함께 결정했으며, “도쿄 인근에 이만한 잔디 구장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마지 못한 듯 훈련에 임했다. 코엘류의 항의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일본 축구협회가 불어(코엘류는 포르투갈 출신이지만 공식 인터뷰 때 불어를 사용함)와 일본어 통역만 준비하자 즉석에서 한국어 통역도 필요하다고 주장, 관철시켰다.


    통솔력과 카리스마 빛나다



    시골 아저씨 같은 ‘푸근한 남자’ 코엘류가 일본에서 이처럼 깐깐해진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도착 당일 일본측의 무성의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김영철(27ㆍ상무)이 공항에서 비자 문제로 잠시 실랑이를 벌였고 투숙 호텔도 특A급이 아니었다. 일본측은 촉박한 일정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게 사실이다.

    그러나 4월 16일 서울 한일전 패배(0-1)를 설욕하며 감독 데뷔 3경기 만에 첫 승(1-0)을 일궈낸 코엘류는 이 같은 ‘사소한 감정’ 때문에 역성을 낸 게 아니다. 한일전에서 태극전사들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게끔 계산된 행동을 했다는 분석이다.

    코엘류는 특히 경기 전날 마지막 훈련을 지코 일본 감독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하는 등 비장함을 보였다. 태극호 주장 유상철(32ㆍ울산)은 “선배로서 한일전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코엘류 감독의 행동에서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후배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코엘류의 세심함은 경기 당일 벤치에서도 나타났다. 5만6,000여 울트라 닛폰의 일방적 응원 속에 신통치 않은 플레이로 전반을 마친 코엘류는 교체 멤버 투입 시기를 신중히 고려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그는 “양국 모두 죽기 살기식으로 덤벼드는 한일전 특성상 전반에는 체력이 뛰어난 최용수(30ㆍ이치하라)와 차두리(23ㆍ빌레펠트)를 기용, 일본 수비라인의 진을 빼려고 했다”며 “후반에 스피드와 기량이 탁월한 안정환(27ㆍ시미즈), 이천수(22ㆍ울산)로 교체한 게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미리 선수 교체에 대한 작전을 세웠다는 뜻이지만 타이밍이 특히 절묘했다.

    최전방 원톱 최용수와 오른쪽 날개 차두리는 그리 신통치 않은 플레이로 일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가 예상됐다. 그러나 코엘류는 이들을 모두 10분 이상 더 뛰게 해줌으로써 “전반 부진해 교체했다”는 ‘오해’의 소지를 아예 없애 버렸다.


    첫 승은 단지 시작일 뿐



    코엘류는 안정환의 결승골로 지코 감독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뒤 “태극 전사들이 내가 구상하는 플레이에 적응하고 있다”며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PSV 아인트호벤 감독)의 뒤를 이어 태극호 사령탑을 맡은 코엘류는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2월 취임한 그는 콜롬비아와의 데뷔전(3월29일)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한 데 이어 안방에서 일본에 패해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린 세계적 명장이라는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한일전의 열기를 몸소 실감한 코엘류는 리턴매치 격인 도쿄전을 앞두고 밤잠을 설쳐 가며 ‘필승 전략’을 짜는 데 몰두했다. 한번 패배는 용서받지만 두 달도 안돼 일본에 연속 패한다면 코엘류호는 거친 풍랑에 그냥 침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어깨를 짓눌렀다.

    도쿄전 승리는 이처럼 설욕의 의미를 넘어 코엘류호가 정상 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명승부였다. 특히 유상철과 이을용(28ㆍ트라브존스포르)은 매끄러운 공수 연결 등 플레이메이커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진공청소기 김남일(26ㆍ엑셀시오르)도 상대 공격의 혈맥을 적절히 차단했다.

    왼쪽 날개 설기현(24ㆍ안더레흐트)은 유럽에서 단련된 체력과 경험을 앞세워 측면을 마음껏 흔들어댔고, 결승골의 주인공 안정환의 킬러 본능과 이천수(22ㆍ울산)의 번개 같은 측면 돌파도 한일월드컵 때 못지 않았다.

    코엘류는 “태극전사는 체력과 기량, 조직력에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2006독일월드컵을 향한 웅대한 계획을 하나하나 실현시켜 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 자신감을 코엘류 감독이 어떻게 독일월드컵에서 또하나의 신화로 엮어낼지 주목된다.





    이종수 기자 jslee@hk.co.kr

    입력시간 2003/06/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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