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늦더위 풍년] "산전수전 다 겪고 '풍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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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09.24 14:37:27
  • [늦더위 풍년] "산전수전 다 겪고 '풍작'으로 간다"

    09/24(목) 14:37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올해 농업부문은 사실상 파산이 예고돼 있었다. 게릴라성 폭우로 전체농지의 8%가 유실 또는 침수됐고 일조량감소와 우박피해 등에 따른 악조건으로 상당한 흉작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IMF사태이후 처음맞는 올해 농사가 가지는 의미가 과거 어느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예측에 따라 한국의 경제·사회위기가 농업부문에서 올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일부 경제연구소는 지난 여름수해직후 기상이변으로 인한 흉작으로 농업부문 성장률이 -10%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았다. 이는 농업부문의 위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률의 추가적 저하(-0.7%대)는 물론 물가파동과 물가상승압박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다행히 이 예상은 봄철 고온과 여름 게릴라성 집중호우, 가을무더위 등 하늘이 여러차례 농민을 울리고 웃긴 이상이변이 막판에 농민의 손을 들어 주고 있어 빗나갈 것 같다.





    기상이변 예상, 벼수학 400만석 낮춰잡아

    농림부가 올 초 예상한 수확량은 3,394만석. 대풍이었던 지난해 수확량 3,784만석보다 약 400만석을 낮춰잡았다. 지난해 5월 엘니뇨의 발생으로 올해 기상이변이 닥칠 것으로 보고 올 수확량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엘니뇨 발생 다음해에 기상이변이 발생, 작황부진을 가져오는 주기적인 현상을 반복해왔다.

    농림부의 이같은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봄철 무더위와 여름 집중호우와 일조량감소, 가을무더위가 순차적으로 몰려왔다. 봄철 무더위때는 꿀벌의 양식이 되는 아카시아가 전국적으로 일시에 피는 바람에 양봉업자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전체 농경지의 8%에 달하는 10만ha의 농토가 유실 또는 침수됐고 벼생장에 필수적인 지난 6월부터 8월20일기간의 일조시간도 평년에 비해 거의 212시간이나 줄었고 6, 7월에는 평균기온이 예년에 비해 거의 1도 가량 낮았다. 벼멸구 잎도열병 등 병충해도 극성을 부려 벼멸구 발생률은 지난해에 비해 2배이상 높았다. 악조건이 겹친 여름 벼이삭이 나타나는 수전기간이 평균 5일에서 무려 7~10일정도로 늘어나 이삭수도 줄어들었다.

    이같은 악조건속에서 평년작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목표치의 80%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가을 무더위가 찾아왔다. 평균 19~22도인 9월 기온이 거의 24도에 달할 정도로 높았고 더불어 일조량도 평년보다 40시간이상 늘어났다.

    원래 풍·흉작의 관건은 벼이삭이 패는 출수(出穗)후 40일간의 기후조건이다. 평야지대의 경우에는 대략 8월15일에서 23일까지 벼이삭이 난뒤 알이 여물게 되고 9월하순무렵에 추수를 한다.

    하지만 9월 무더위가 마냥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원래 알곡이 제대로 여무는데는 일교차가 큰 역할을 한다. 최적의 일교차는 최고와 최저기온이 8도차이. 하지만 9월상순의 무더위는 열대야를 방불케할 정도로 밤 기온도 높아 오히려 벼이삭에 악영향을 줄 정도. 밤에 열기가 높을 경우 암호흡으로 낮에 축척했던 영양분을 소모, 알곡이 제대로 여무는데 장애가 된다.

    9월 무더위로 인해 방심할 수 없었던 것은 벼를 노랗게 말라죽게 하는 벼멸구 피해. 지난 7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벼멸구는 가을무더위로 더욱 극성을 부렸다. 농진청의 집중적인 방제권장에도 불구하고 방제에 소홀했던 일부 농가는 가을 무더위로 인해 벼멸구 피해가 컸다.

    하지만 9월15일을 전후로 한랭전선을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였다. 일교차에 대한 걱정거리도 사라진 셈이다.





    여름폭우로 벼농사 포기했던 농가 많아

    여름 수해로 80여만평의 논중 70여만평이 침수됐던 경기 김포시 양촌면 누산리 농민 염경호씨(34)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수해때 거의 대부분의 논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가까이 물에 잠겼다. 동네사람들은 올해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했다. 벼이삭이 패기 시작할 무렵에 물에 잠겨버렸으니 소출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가을 무더위가 여름에 못했던 생장을 도왔다. 평년작은 어림없고 적게는 60%, 많게는 80%정도는 소출할 것 같다. 하지만 도정을 해보면 정상적인 쌀이 70~80%는 됐는데 이번에는 불과 60%정도 밖에는 안되겠다. 동네어른들은 수해를 당하고도 이정도면 하늘이 도왔다는 말을 한다” 실제 김포들녘에는 여름수해로 농사를 포기했던 셈인지 곳곳에 ‘피’ 가 듬성듬성 올라와 있는 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씨의 말에 비추어보면 침수지역도 가을 무더위로 인해 그나마 최소 평년의 60~80%의 소출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뜻이 된다. 지난 여름 전국 농경지의 8%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은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논들은 최소 평년작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9월의 기상 호조건으로 인해 올해 벼수확 예상치는 최소 3,400만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임송수박사(35)는 “이같은 기상조건이 벼수확기인 9월하순에서 10월초순까지 이어질 경우에는 최소 평년작 또는 300만석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 밝혔다.

    물론 올해 기상이변의 여파가 벼수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전문가들도 없지않지만 현재의 기후조건에 비추어 수확전망은 긍정적이다.

    엘니뇨 다음해의 기상이변으로 매번 벼수확량 감소피해를 입어왔던 과거의 예에 비추어 본다면 올해는 ‘농사이변’ 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뇨발생 다음해인 지난 87년에는 여름철의 집중호우로 10ha당 수확량(436㎏)이 평년작(455㎏)에 비해 무려 19㎏나 줄었고 95년에는 잦은 강우와 일조부족현상으로 10ha당 수확량(445㎏)이 10㎏ 줄어드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풍작이었던 지난해 단위당 수확량이 518㎏였던 것을 보면 얼마나 심한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있다.





    악조건속에 찾아온 가을 무더위, 과일에도 혜택

    과일 채소류 역시 가을 무더위의 혜택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포도와 배는 지난 여름 호우로 인한 낙화로 수확량이 거의 10~20%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9월 무더위로 인해 수확량이 크게 호전돼 예년정도 수준을 바라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단감 역시 결실이 양호해 생산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 배추의 경우에도 여름피해가 남아있기는 하나 작황이 크게 나쁘지는 않다. 이에따라 5톤기준 도매가격도 9월하순에는 8월의 절반정도로 떨어질 것으로 농림부는 예측했다.

    물론 수확이 줄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도 없지않다. 감귤농사의 경우에는 지난해 대풍을 거두었던 여파로 해거리현상으로 수확량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사과 역시 재배면적이 줄어들어 수확량은 감소할 전망이다. 호우에 따른 탄저병 등 병충해피해가 컸던 고추는 평년보다 거의 20%정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MF사태이후 경제적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농업부문에서 현상유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현정부는 한시름을 놓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올해 수해피해가 서민과 농민층에 집중됐고 흉작은 경제적 측면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사회불안요소가 완화되는 셈이다.

    경제연구소의 예측대로 흉작에 이어 물가파동으로 이어졌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었다. 가을 무더위가 DJ정부를 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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