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고금리가 경제 죽인다] "돈, 구경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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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09.30 13:59:00


  • 금리는 과연 더 떨어질 수 있을까. 중소기업과 일반서민들에게도 금리 인하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을까. 대답은 한마디로 ‘노’(No).

    금리를 떨어뜨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지만 실현가능성은 극히 비관적이다. 금융시장 구조가 왜곡될대로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그 과실은 은행과 5대그룹에게만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어느 기업이 언제 망하고 멀쩡한 월급쟁이가 어느날 목이 잘릴지 모르는 상황, 이른바 신용경색하에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은행과 대기업에만 머무는 동맥경화가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최근 금리동향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시중금리지표’ 로 불리는 3년만기 회사채금리(유통수익률)는 연 12% 중반에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단기금리 지표인 하루짜리 콜금리는 연 8%대 초반.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이전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안정적이다. 자금수요가 많아지는 추석을 앞둔 금리안정세는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은행에 ‘꼭꼭 숨은 돈’ 혜택은 대그룹만

    재경부는 금리를 더 떨어뜨릴 생각이다. 재경부는 기업에게 회사채 발행축소를 요구하고 투신사등 금융기관에는 회사채 매입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이달안에 회사채금리를 연 10~11%수준으로 끌어내린다는게 목표. 재경부의 전방위 압력이 주효했는지 이달 중순까지 13%대에서 형성되던 회사채수익률은 12%대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문제는 금리와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는데 있다. 금리가 시장의 대표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은 ‘5대그룹 계열사만의 리그’ 가 된지 오래다. 연 12%대라는 회사채 수익률은 5대그룹의 몫일 뿐 나머지 회사들은 연 18~20%이상의 고금리에도 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울산에서 제법 큰 자동차 부품업을 하는 P사장은 지난해말 신용금고에 건물을 담보로 맡기고 빌려쓴 30억원에 대한 연 25%의 이자부담을 견디다 못해 은행 문을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허사였다. 그는 20%대 이하로 대출받아 신용금고에서 빌린 돈을 갚을 생각이었다. 담보와 지급보증을 세운다고 해도 은행은 아예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P사장은 은행에서 연 14% 짜리 대출을 구할 수 있었다.

    회사채시장 뿐 만 아니다. 금리가 아무리 내려가도 금융기관은 대출을 늘리지 않는다. 특히 중소기업과 개인에게 은행창구는 닫혀 있다. 정부 지원은 지원대로 받으면서 정작 풀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자금 흐름의 블랙홀’ 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은행이 자금분배 구조의 암적 존재가 되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총액한도대출. 총액한도대출이란 은행이 중소기업이나 무역업체에 대출해주면 한국은행이 대출실적만큼을 저리로 빌려주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은행에 대한 대출금리는 연 3%. 은행은 이 자금을 적어도 10%이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은행들에게 앉아서 돈버는 장사를 시켜주면서까지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는게 한국은행 총액대출의 취지. 그러나 국민의 부담으로 걷혀진 공적자금은 은행의 배를 불리는데만 이용되고 있다.





    금리내렸지만 중소기업엔 ‘그림의 돈’

    한은은 이달초 파격적인 은행지원책을 펼쳤었다. 지난 1일부로 중소기업 상업어음 할인이나 무역금융을 위한 총액대출한도를 2조원 늘려준 것. 은행들은 9월분으로 1조800억원을 새로 받았다. 금리도 연 5%에서 3%로 낮췄다.

    하지만 이 돈은 중소기업에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현재 은행들이 중소기업의 상업어음할인이나 무역금융에 실제로 대출해준 돈은 1,511억원. 무역금융은 1,952억원 늘었지만 상업어음할인은 오히려 441억원이 줄었다. 그러면서도 은행들은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상업어음금리를 연 12%까지 낮췄다고 선전했다. 실제로는 신규대출은 고사하고 기존에 나갔던 대출도 회수하고 있었다.

    한국은행에서 3%로 지원한 자금중 약 1조원은 연 8%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12%짜리 투신사 예금으로 운용되고 있다. 기업에 대출하라고 준 나랏돈으로 돈놀이만 하고 있는 셈이다.

    연초 20%이상으로 치솟았던 은행의 정기예금금리도 최근에는 연 10%선까지 내려왔지만 대출금리 인하는 거북이 걸음이다. 은행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들도 할 말이 있다. 언제 누가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신규로 대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하는 자기자본비율이 은행 생존의 척도가 되고 있는 마당에서 신규대출은 이 비율을 떨어뜨릴 위험이 많다는게 은행들의 논리다. 이른바 신용경색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원칙엔 서로 공감한다면서도 방법론엔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재경부는 한은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고 RP를 연 8%대에서 2~3% 낮춰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RP금리를 내리면 금융기관들이 한은을 상대로 한 돈놀이에서 벗어나 회사채를 매입하려고 들어 시중금리도 10%대로 떨어진다는 발상이다.





    재경부·한은 금리인하 방법론에 시각차

    한은은 이에 대해 인위적 금리인하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며 맞서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대내외금리차 역전으로 일부 기업과 부유층이 국내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에 나가 한국물을 사들여 외환유출 등의 폐해가 일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에도 시장금리와 4~5%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는 RP금리는 시장상황에 맞춰 운용하는게 순리라는 것이다. 연말까지 13조원 넘는 국채발행과 5대그룹의 회사채 발행제한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의 회사채매입여력이 약화돼 오히려 금리인상 요인이 크다는게 한은의 생각이다. 이달말 구조조정이 일단락 된후 시장상황에 따라 정책을 강구하자는 입장이다.

    통화공급 확대에 대해서도 재경부는 IMF와 합의한 본원통화 목표치에 비해 6조원의 여유가 있어 통화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 한은은 M3기준으로 이미 풀릴만큼 풀렸다며 맞서고 있다.

    재경부와 한은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분위기는 재경부쪽으로 기울고 있다. 주요 경제정책마다 발목을 잡았던 IMF가 정책실수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10월부터 본격적인 경기부양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은은 약 3조5,000억원이 풀리는 추석자금도 올해에는 예년과 달리 적극적으로 환수하지 않을 방침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돈이 풀리는 분위기인 것이다.

    문제는 신용경색으로 인한 자금분배 왜곡구조가 깨지지 않는한 여전히 재벌과 은행에만 금리인하의 과실이 돌아갈 수 없다는 점. 금리인하를 추진하기 앞서 은행대출 활성화를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구조조정에 모두 50조원을 투입하면서도 은행때문에 발생한 경제동맥경화에 나라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

    원홍우·서울경제신문 정경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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