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은행원들도 장사꾼이 돼야합니다" 김정태 신임주택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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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09.16 11:33:00
  • "은행원들도 장사꾼이 돼야합니다" 김정태 신임주택은행장

    09/16(수) 11:33



    김정태(金正泰·51) 신임 주택은행장은 이달초 지난달까지 몸담고 있던 동원증권을 떠나 주택은행으로 옮겼다. 서울 여의도에 자리잡은 주택은행 본점과 동원증권 본점은 100㎙도 채 안된다. 하지만 증권사 순위 6위에 불과한 동원증권과 자산 70조의 거대은행 주택은행의 위상은 비할 바가 못된다.

    은행 부장급에 머물 나이에 행장으로 전격 발탁된 김 행장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김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내년까지는 월급을 1원만 받고 그 다음부터는 스톡옵션으로 월급을 받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취임후에도 파격적인 행동으로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직원들과 자판기 커피 마신걸로 ‘업무보고’

    취임식 다음날인 2일 점심시간, 김 행장은 직원식당에서 일반 행원들과 똑같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직원들은 새 행장의 얼굴을 잘 모르는 데다 행장이 직원식당에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자연스레 섞여들 수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카드영업부 직원들과는 직원휴게실로 옮겨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그날은 업무보고를 받는 날이었다. 김 행장은 카드영업부 업무보고를 그것으로 끝냈다. 다른 부서 업무보고도 이전 행장들과는 달랐다. 행장이 갈리면 행장실 앞에 부장·차장들이 줄줄이 서서 업무보고 순서를 기다리던 관행과 달리 김 행장은 각 부서를 찾아다니며 최대한 간단히 업무보고를 받았다. 김 행장은 “대리 과장들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할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와이셔츠 바람으로 이방 저방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 행장이 취임 이후 안팎의 사석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월급에 관한 것. 안 듣는데선 ‘평생을 월급쟁이로 살아온 사람이 월급을 안받으면 뭘 먹고 사느냐. 은행장 자리가 월급 말고도 생기는게 많긴 많은 모양’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없지 않다. 김 행장은 이에 대해 “동원증권 사장 퇴직금이 꽤 많습니다. 집사람에게도 당분간 월급 안받고 살아보자고 말해서 허락을 얻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을 안받으면 월급만 축냈다는 소리는 안들을 것 아닙니까”하며 웃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김행장의‘튀는 행동’들이 외부인사의 행장취임에 거부감을 표시했던 직원들을 달래기 위한 쇼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김 행장은 증권사 사장일때나 은행장이 되고 나서나 별 변화가 없다. 증권사 사장 시절에도 그는 ‘무차입 경영’‘수익증권 운영내역 공개’등 개혁경영은 물론 격의없고 소탈한 몸가짐으로 다른 증권사 사장들을 불편하게 했다. 동원증권 직원들은 “이제는 다른 은행장들이 상당히 불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계단식 발전방향’에 무게 실어

    김 행장도 원래는 은행원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조흥은행에 입사해 5년을 지냈다. 그때 입사동기들은 지금 부장급이다. 그리곤 대신증권으로 옮겼다가 불과 6년만에 상무이사가 돼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은행장이 됐다. 한 은행임원은 사석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루만이라도 은행장 하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은행장 자리가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지닌 자리인지를 상징해주는 말이다. 이 때문에 행장선출때만 되면 끈이란 끈은 다 동원되고 온갖 투서와 음해가 판을 치곤 한다. 거기에 비하면 김 행장은 너무 쉽게 행장이 됐다. 김 행장은 ‘운동’은 커녕 행장추천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동원증권 사장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행장추천위원회라는게 언제 열리는지를 물어볼 정도였다.

    감회를 묻자 부담스럽다고 했다. “일반시민들한테까지 전화가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어요. 어깨가 무거워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예요” 김 행장에게 맡겨진 임무가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행장추천위원회가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부인사인 그를 행장으로 선택한 것도 정부의 금융구조조정을 이끌어갈 개혁적인 파트너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김 행장이 조흥은행과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가 파견한 앞잡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김 행장은 합병에 무게를 싣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꼭 합병을 해야 하는 겁니까?”라고 되물은 그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계단식 발전방향’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우위에 있는 주택금융, 카드사업 같은 부문의 내실을 다진뒤 다른 사업을 하나씩 추가한다는 것이다.

    김행장이 취임후 공식업무를 보는날 아침 처음으로 맞은 외부손님들은 컨설팅그룹인 맥킨지사 사람들이었다. 은행의 발전방향을 자문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행장은 “안팎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은행에 가장 알맞는 발전방향을 채택하겠다”고 말했다.





    “실적보다는 이익을 내야 합니다”

    그가 주택은행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설파한 것은 ‘장사꾼 기질’이다.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엄청나게 벌면 구조조정이 왜 필요합니까. 남대문 시장 상인들을 보세요. 다들 버는 것 없다고 하고 체면 차릴 줄도 모르지만 실속은 다 챙기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은행원들도 돈만 많이 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대신 실적위주 영업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예금 얼마 끌어왔느냐보다는 돈을 얼마 벌었느냐를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금유치 캠페인도 함부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국내 은행의 총자산 이익율(ROA)은 0.39%밖에 안됩니다. 미국은행들은 1.5%입니다. 씨티은행 국내지점만 봐도 예금계수는 적지만 6개월동안 1,100억원씩이나 이익을 내고 있지 않습니까. 덩치가 커지면 위험도 커진다는 것을 그동안 우리은행들은 너무 무시해왔던 거죠.”

    그는 구조조정은 철저하게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생산성은 실적 나누기 사람수입니다. 사람을 자르거나 실적을 올리는 게 곧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실적을 올리는데 최우선 가치를 둬야죠.”

    주택은행은 지난해 민영화를 계기로 종합 대형은행으로 성장을 꾀해왔다. 기업금융, 국제금융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그러나 김 행장 취임후 진로가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취임인사차 금융감독위원회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그는 “주택은행이 우량은행인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은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돈 안되는 사업분야는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세부적인 구조조정안은 본인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은행사정을 잘 아는 내부직원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김 사장은 “동원증권 사장 시절에도 지점장들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을 맡겼더니 훨씬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직의 장이 직접 할 일은 사실 많지 않아요. 대출은 여신위원회에서 결정하면 될 것이고 구조조정도 직원들로 구조조정위원회를 만들어 계획을 짜도록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행장은 뭘 할까. 김 행장은 “의식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은행원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전도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제’(신분이 높을수록 책임도 크다)라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원 월급’이나 파격적인 업무스타일도 ‘은행장은 황제처럼 군림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부터 깨기 위한 개혁의 첫걸음인 셈이다. 김 행장이 앞으로 또 어떤 화제를 만들어낼 지 지켜볼 일이다.

    김준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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