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해외야구] 마크 맥과이어 "아들은 내가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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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09.16 14:44:00
  • [해외야구] 마크 맥과이어 "아들은 내가 사는 이유"

    09/16(수) 14:44



    37년과 3초.

    마법의 숫자 ‘61’ 을 푸는 데는 무려 37년이 걸렸지만 절정의 순간은 단 3초.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숨이 막힐 만큼 팽팽했다.

    9월8일 저녁8시19분(미 중부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부시스타디움. 전날 61호 홈런을 날린 마크 맥과이어(35)가 기립박수를 받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 1회에 이어 두번째 타석.

    마운드의 시카고 커브스 선발 스티브 트락셀이 포수의 사인을 받은 뒤 힘차게 볼을 던졌다. ‘쉭’ 낮은 직구가 홈플레이트 바깥쪽을 파고 들었다. 순간 맥과이어의 방망이가 바람을 갈랐다.

    “……” 스탠드의 5만관중과 TV를 지켜본 전세계 야구팬들이 일제히 숨을 죽인 채 타구를 좇았다. ‘째깍, 째깍, 째깍’ 초침이 채 세번을 움직이기도 전에 볼은 왼쪽 펜스를 살짝 넘어갔다.

    1루 베이스까지 힘껏 달려갔던 맥과이어가 두팔을 높이 치켜 들었다. 61년 로저 매리스가 세운 한시즌 최다홈런기록 ‘61’ 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것이다.

    그는 열광하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이아몬드를 돌았고, 홈플레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들 매튜(11)를 번쩍 안아들었다. ‘이제야 네게 진 빚을 갚는구나’ 아들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집에 불이 났다. 매튜는 무사히 빠져나왔다. 단 한가지만을 챙길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러” 라는 물음에 맥과이어는 “안 들어간다. 내 모든 것이 옆에 있지 않는가”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87년 ‘신인 50홈런’ 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둔 시즌 마지막 경기날 그가 경기장 대신 병원을 찾은 것도 바로 매튜때문이었다. “50홈런을 언제든지 칠 수 있지만 내 첫 피붙이의 출생은 다시 보지 못한다”





    지극한 아들사랑, 타구단 이적유혹도 뿌리쳐

    ‘자신의 전부’ 인 바로 그 매튜가 엄마젖을 떼지 못했던 88년 가을, LA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를 앞둔 맥과이어는 아내 캐시와 이혼했다. 어린 가슴을 할퀴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부상보다도 치명적이었다.

    바로 전해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쥘 만큼 잘 나갔던 그는 곧바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91 시즌에는 타율 0.201로 최악. 93년부터는 3년동안은 이런저런 잔부상에 시달리며 은퇴를 고려해야할 만큼 긴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그의 가슴앓이도 매튜가 구김없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차츰 아물어 갔다. 전 아내 캐시와의 사이도 좋아졌다. 캐시의 집에서 바베큐파티를 함께 할 만큼 캐시의 새 남편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96시즌 52홈런을 터트리며 비로소 제2의 전성기를 열었고 지난 시즌에도 58홈런을 쏘아올리며 ‘빅맥시대’ 를 본격 선언했다.

    지난해 말 맥과이어는 타 구단의 러브콜을 지겹도록 받았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인 그로서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유혹보다도 매튜의 말 한마디가 더 마음을 끌었다. “아빠,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요”

    맥과이어는 세인트루이스와 2,800만달러가량의 3년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며 이색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매튜를 팀의 배트보이로 일하게” “비행기에 늘 매튜의 좌석을 남겨두라” 는 두가지였다. 하나뿐인 아들을 가까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맥과이어는 올시즌 연봉 833만달러 가운데 100만달러를 따로 떼내어 아동학대방지기금으로 내놓았다. 어쩌면 유난스럽다싶을 만큼 지극한 그의 아들사랑이 조금도 비뚤게 보이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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