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구로자와감독 타계... "일본 영화계거장 3인시대 막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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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09.24 11:31:12
  • 구로자와감독 타계... "일본 영화계거장 3인시대 막내리다"

    09/24(목) 11:31



    일본, 아니 세계 영화계의 거성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이 지난 9월6일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숨졌다. 그의 죽음은 일본영화의 초석을 다지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자라는 황금의 3인 거장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무성 흑백영화시대부터 현재까지 일본영화는 세감독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이 일본영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88세의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영화 연출에 열정을 쏟은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자 했던 구로자와의 죽음 앞에 그의 조국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무한한 헌사가 쏟아졌다. “독특한 영역과 표현감각 사회현실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던 영화계의 거장이 사라졌다”(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 “영화와 함께 영원히 살분이라고 생각했기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는 영화계의 셰익스피어같은 존재였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거장이라는 단어는 예술가 앞에 너무 자주 사용되지만 이 단어는 구로자와를 위해 존재하는 용어다”(마틴 스콜세지 감독)

    구로자와는 이러한 헌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그렇다.”조국 일본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영화의 본고장에서는 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라쇼몽’이 대상을 차지한 후 ‘7인의 사무라이’ ‘가게무샤’ ‘스가타 산시로’ ‘란’등 구로자와 작품이 개봉될 때마다 무한한 찬사가 이어졌다.





    일본의 미학을 서구적 스타일로 표현

    그의 영상언어는 ‘스타 워스’의 조지 루카스,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 등 서양의 명감독 뿐만 아니라 중국의 장예모 감독 등 동양 영화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 상당수의 세계 명감독들은 구로자와를 영화의 스승으로 모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마쓰 ‘장례식’의 이타미 주조 ‘감각의 왕국’의 오시마 나기사 등 기라성같은 일본 감독들은 구로자와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로자와를 이같은 위치에 올려놓은 이유는 무얼까. 그 이유는 먼저 그의 영상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영화는 진정 놀라운 표현수단이지만 본질을 꿰뚫어 핵심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난 영화를 잘 모릅니다”라며 끊임없이 30편의 작품에서 변화와 실험을 추구했던 구로자와 영상의 공통점은 서구의 영화스타일에 일본적인 내용을 가장 잘 표출했다는 점이다.

    구로자와는 동적이며 화려한 테크닉과 현대적인 구성방식 등 가장 서양적인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그의 대표작 ‘7인의 사무라이’는 역동적이면서도 스펙터클한 영상언어로 농민들을 보호하는 사무라이들의 전통적인 생활을 담았다.

    일본 비평가 사토 다다오는 “구로자와 만큼 가부키나 노 등 일본의 전통양식을 서구영화 스타일로 잘 녹여낸 감독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철저한 모방에서 주체적인 변형, 일본적인 미학의 완성 그리고 미학의 세계화의 괘적을 그리면서 작품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고유의 주제와 내용이 담겨 있어도 서양인들은 구로자와 영화를 쉽게 이해한다.

    “나의 모든 영화에는 공통된 테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의 의문이다.왜 사람들은 서로 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는가 하는 의문. 그들은 인간이기에 그렇다”라는 구로자와 말은 그가 만든 작품속에 일관되게 수용되고 있다. 30편에 흐르는 주제 ‘휴머니즘’은 그의 영화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그의 영화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으며 이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영화를 주목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주로 암울한 결말이나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절망보다는 밝은 희망과 인간적인 믿음으로 끝이 난다. ‘라쇼몽’의 경우 원작에서는 인간의 허무주의 불신이 가득차 있으나 영화에서는 인간의 희망을 불어넣어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의 완벽한 조화

    또한 그의 영화에는 대중성과 작품성의 완벽한 조화가 존재한다. 그의 데뷔작 ‘수가타 산시로’에서부터 93년 ‘마다다요’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면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점때문에 65년 ‘붉은 수염’이 일본내 흥행 1위를 차지한 것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극장에서도 흥행에 호조를 보였다. 그의 높은 작품성은 각종 국제적 영화제 수상에서 입증됐다. 구로자와는 베니스영화제에서는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호위병’‘붉은 수염’ 등의 작품으로 수상했으며 칸영화제에서는 ‘가게무샤’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산다’와 ‘숨겨진 요새의 세악인’으로 각각 은곰상을 받았고 모스크바영화제에서는 ‘도데스 카뎅’으로 소련노동자동맹상을 수상했다. 90년 현대 영화의 메카 헐리우드는 ‘황색 거인’을 초대했다.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그의 영화 인생에 대한 공로로 특별상이 수여됐다.

    구로자와의 대척점에 있는 감독이 바로 오즈 야스지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철저히 일본미학을 수용해 가장 일본적인 영상언어를 창출한 감독이다. 27년 ‘참회의 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오즈는 62년 ‘어느 가을날 오후’에 이르는 53편의 영화에서 가정의 붕괴와 분화를 다루면서 동일한 스토리 구조와 영상적 스타일을 유지했다.

    오즈는 그의 영상에 다양한 카메라의 움직임 대신 철저한 절제와 엄격한 통제를 가했다. 그의 대표작인 ‘만춘’과 ‘도쿄 이야기’에는 할리우드 영화와 차별화한 플롯의 약화, 인위적인 편집의 배제, 순환적 내러티브, 디졸브나 페이드를 사용하지 않는 커트접속, 180도 관심선의 파괴와 360도 공간활용, 정적 숏의 활용, 놀라울 정도의 느린 템포 등 일본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자주 사용했던 다다미 숏은 오즈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를 바닥에서 2~3피트에 고정시켜놓고 등장인물들은 촬영하는 다다미 숏은 일본의 다도의식과 노 가부키를 관람하는 전통극을 원용한 것이고 일본미학의 정수인 덧없는 세상을 침착하게 수용한다는 의미의 ‘모노노아와레’를 가장 잘 표현하는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생을 가장 일본적인 영상스타일을 추구했던 오즈앞에 뉴저먼 시네마의 대표주자인 빈 벤더슨은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를 바쳤다. 그리고 세계 유명감독과 비평가들은 세계 10대 영화중 3위의 영화로 오즈의 ‘도쿄이야기’를 선정했다.





    일본영화 3인 거장시대의 마감

    고전적 리얼리즘의 대가 미조구치 겐지는 ‘오하루의 일생’ ‘우게츠 이야기’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에도시대를 다루며 남성본위의 사회의 여성이 겪는 비참함과 자기희생을 놀라우리만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렸다. 일찌감치 국제영화계에 인정받은 미조구치는 ‘우게츠 이야기’(1953년) ‘산쇼 다이후’(1954년) 등에서 특유의 탐미적 리얼리즘과 롱테이크의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며 3년연속 베니스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영화형식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클로즈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원신 원숏에 의한 롱테이크 카메라스타일을 구사하며 아름다운 영상을 만든 것이다. 미조구치의 어떤 영화라도 한장면을 정지시키면 한폭의 아름다운 동양화가 된다는 영화비평가 잭 씨 엘리스의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구로자와의 죽음으로 3인거장 시대의 막은 내렸지만 이들은 근래들어 부활하는 일본영화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97년 이마무라 쇼헤이 ‘우나기’와 기타노 다카시의 ‘하나비’가 칸과 베니스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최근 5년간 12편이상이 국제영화제를 휩쓴 것은 이들 3인 거장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배국남·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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