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공연] 아마 지휘자와 프로 오케스트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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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09.24 11:35:37
  • [공연] 아마 지휘자와 프로 오케스트라의 만남

    09/24(목) 11:35



    아마추어가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채로운 풍경이 16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벌어졌다. 국내 민간 오케스트라의 대표격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재일동포 사업가 강동우(41)씨가 지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화제가 됐다.

    강씨는 일본서 태어나 미국서 공부했다. 미국 인텔 등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도쿄에서 ‘글로벌 시너지 어소시에이츠’라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첨단 분야 한국기업의 외국 진출을 자문하는 게 그의 본업이다.

    강씨네는 음악가족이다. 어머니는 첼로, 아내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두 동생은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의 반주자로 내한공연에 동행했던 일본인 피아니스트 아키라 에구치가 그의 매제다. 네살부터 피아노를 배운 강씨는 어머니 손을 잡고 NHK교향악단 연주를 보러다니다가 지휘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이었을 거예요. 지휘자가 하도 신기해 보여서 오케스트라 악보를 구해 봤죠. 학교에서 야구를 할 때 외야수를 했는데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의 악보를 주머니에 넣고 틈틈이 보면서 노래를 외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바람에 가끔 외야로 날아오는 야구공에 맞기도 했지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경영인이 됐다.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 필립스 아카데미를 거쳐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휘는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배웠습니다. 1788년 설립된 이 학교는 교내에 따로 음악홀이 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도 있었거든요. 이때 교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했지요.”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보스턴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따라다니며 지휘자 어깨 너머로 공부했다고 한다.

    김씨의 프로 오케스트라 지휘는 이번이 두번째. 미국 인텔에서 일할 때 미국 서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새너제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지역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었다.

    “새너제이 오케스트라는 컴퓨터산업이 밀집해있는 실리콘밸리 지역에 있으면서도 이들 기업과 문화적 교류가 거의 없었어요. 그게 안타까워서 경제인들이 예술에 관심을 갖도록 제가 직접 지휘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니까 음악감독 말이 그럼 리허설 지휘를 한 번 해보라는 거예요. 오케스트라 이사회가 OK해서 지휘봉을 잡게됐지요.”

    이번 서울 연주회도 비슷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IMF 체제 이후 노사갈등이 깊어지고 문화예술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모두가 음악으로 하나 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서로 대립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게 음악의 힘 아닙니까.”

    이번 콘서트 수익금은 실업자 돕기 기금으로 기탁됐다.

    본업 틈틈이 음악을 하기란 쉽지 않다. 강씨는 외국 출장길에 시간을 쪼개서 현지 음악원을 찾아가 레슨을 받고 집에 오면 매일 피아노를 친다. 프로 뺨치는 아마추어들이 겨루는 일본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에서 리스트의 작품을 연주해 3등을 한 실력이다.

    “무엇인가를 정말 좋아한다는 건 무서운 일이예요. 인간의 능력을 무한대로 만들어 주거든요. 제 연주는 물론 전문음악인과 다르겠지요. 서로 인생이 다르니까 표현이 다를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예술 표현에 있어 그러한 다양성이 풍부할수록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요.”

    강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지휘자 중에는 비전공자가 꽤 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화학, 피에르 불레즈는 수학을 전공했고 주세페 시노폴리는 본래 뇌신경전문의였다. 외국 정치인 중에도 프로 또는 프로 뺨치는 음악가들이 있다. 에드워드 히드 전 영국총리가 대표적이다. 고집불통에 독설가로 악명 높았던 히드는 한동안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봉을 맡았었다. 78년 한국을 국빈방문했을때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해 화제가 됐고 정계를 떠난 뒤엔 런던심포니를 지휘해 음반까지 냈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총리도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에 일가견이 있었다.

    강씨는 이번 서울 연주회 프로그램을 베토벤 작품으로만 짰다.‘코리올란’서곡, 교향곡 3번, 7번. 가장 좋아하는 곡들이란다.

    “베토벤 음악에는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 그것을 딛고 넘어서는 힘이 들어있습니다. 극복, 승리, 영광의 드라마가 펼쳐지지요. 그러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이 IMF 상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실 아마추어에게 지휘봉을 맡긴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강씨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코리안심포니 단원들은 첫 리허설에서 강씨를 만난 뒤 ‘깜짝 놀랐다’며 박수를 보냈다. 연주할 곡을 속속들이 연구한 강씨의 치밀함에 감탄했다는 것. 프로와 아마추어의 만남은 즐겁게 끝났다.

    오미환·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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