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만추] 가을에 젖어 역사속 영웅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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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28 15:07:00


  • “집안을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으며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었다. 가난을 탓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됐다.”

    13세기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칭기즈칸은 자신의 ‘위대한’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을이 겨울 문턱까지 다가섰다. IMF 시름도 깊어만 간다. 맥 빠지고 힘없고 앞이 안보이기 때문일까? 서점가에는 칭기즈칸같은 영웅이나 두드러진 역사인물을 소재로 한 책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를 두고 궁핍한 시대에, 세상을 주름잡던 인물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라느니, 어떤 영웅을 소재로 한 책이 잘 나간다니까 출판사들이 다투어 비슷한 유의 책을 찍어내는 상술 때문이라느니 하지만 썩 마땅한 설명같지는 않다.





    답답한 세상 “책속에서 시원함 찾는다”

    어쨌든 이런 책들이 요즘처럼 꼬질꼬질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방대한 스케일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만은 사실이다. 활자의 세계 속에서나마 그런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면 가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일 수 있겠다.

    대표적인 것이 칭기즈칸. ‘소설 토정비결’ 의 작가 이재운씨가 쓴 대하역사소설 ‘천년영웅 칭기즈칸’ (해냄 발행, 전8권)은 고려 무신정권에 항거하다 붙잡힌 의병 출신 김사영과 초희가 몽골로 탈출, 칭기즈칸과 인연을 맺도록 설정함으로써 그를 우리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오게 한다. 잔혹한 전투 장면들이 때로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쓰기 위해 7년간 연구했다는 작가의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담아냈다.

    저명한 역사저술가 해럴드 램의 ‘칭기즈칸’ (현실과 미래 발행)은 이 잔인한 정복자의 공과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평전. 이런 작업을 통해 칭기즈칸은 대제국을 지배하기 위해 엄격한 법체계(야사)와 효율적인 역마제도(얌)를 구축, 결과적으로 암흑시대라고 일컬어진 중세의 벽을 무너뜨린 인물이었다는 독특한 결론을 내린다. 소설류와 달리 학술적인 분석이 냉철한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19세기 유럽의 영웅 나폴레옹도 우리 독서시장에서 부활하고 있다.

    소설 ‘나폴레옹’ (세계사)은 기자 출신 프랑스 작가인 장 폴 카우프만이 나폴레옹 말년의 유배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을 방문한 것을 토대로 나폴레옹의 말년을 재구성하면서 그의 의식의 변화를 추적했다.

    반면에 프랑스 정치가이자 언론인인 막스 갈로의 대하소설 ‘나폴레옹’ (문학동네 발행, 전5권)은 그의 일대기를 소설로 풀었다. 일본인 나폴레옹 전문가 나가사키 류지의 ‘영웅 나폴레옹’ (오늘 발행, 전4권)도 소설 형식이지만 그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충실히 엮었다.

    일본 추리작가 아토다 다카시의 장편소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우석 발행, 전2권)도 마케도니아 왕으로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인도까지 정복하고 서른둘에 원정지에서 죽은 알렉산더 대왕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이들 세계사적 영웅 말고도 우리의 영웅이라 할 만한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다.





    정도전, 고구려 후예 등 우리 영웅들도 다뤄

    임종일 장편소설 ‘정도전’ (한림원 발행, 전3권)은 정도전이 추구한 민(民)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이상(理想)의 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그의 풍운의 세월을 흥미롭게 엮어냈다. 작가는 “나는 이 소설에서 정도전이라는 한 인간이 역사 앞에 품었던 이상, 모순된 현실 앞에서 분노와 허탈감에 빠지지 않고 끝내 찾으려 했던 희망과 그 의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고 말한다.

    이화여대 국문과 이인화 교수의 소설 ‘초원의 향기’ (세계사, 전2권)는 고대 유라시아의 대초원을 달렸던 고구려 후예들의 장대한 삶을 그렸다. 나라가 망한 후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끌려가 용병으로 전락한 고구려 관리 고문간과 고구려 왕녀 아란두의 길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축으로 희미한 고대사의 실체를 복원하려고 시도한다.

    요즘 영웅이나 역사인물을 소재로 한 책들은 대부분 소설류다.

    인물의 성격이나 행적이 워낙 강렬한데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만큼 ‘우상화’ 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 예컨대 주인공(칭기즈칸)이 전투에서 멋지게 싸워 승리했다면 그 자체로 시원하겠지만 전투내용을 보면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그만큼의 거리를 두는 것은 독자의 현명한 몫으로 남는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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