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총격요청 정보 북한측으로부터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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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14 11:35:00


  •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한 최초 수사당국인 안기부는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는 이 사건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을까. 이미 구속된 피의자들이 ‘고문조작’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은 사건 자체의 실마리 및 향후 전개과정을 가늠해 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안기부가 고문주장을 확실히 잠재우기 위해선 반박할 수 없는 ‘물증’을 내놓아야 하고 이같은 물증확보의 가능성은 이번 사건의 초기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안기부가 최근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제출한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최초 인지시점은 지난해 대선직전인 12월 중순께로 돼 있다. 안기부는 당시 전포스데이터 고문 한성기씨가 12월12일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측 요원을 만나 자신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특보라고 소개하고 대선전 판문점에서 총격전을 벌였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안기부는 이 첩보를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부터 입수했다고만 밝혔을 뿐 더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베이징 무대로 암약하는 북한 요원이 흘려

    이 대목에서 당연히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과연 어디냐는 데 관심이 모아질 수 밖에 없다. 또 안기부가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기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기부 및 검찰의 수사 관계자들로부터 흘러 나오는 단편적인 얘기를 종합하면 베일에 싸인 출처는 총격요청의 상대방인 북한측 요원, 즉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즉 우리측 안기부 요원과 비밀 채널을 유지하고 있던 북측 안전보위부원이 한씨의 총격요청 사실을 역으로 우리에게 귀뜀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국가안전부원이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을 무대로 암약하고 있는 이철(가명 이철운)이라는 보다 구체성을 띤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철은 방북을 희망하는 남측 인사들의 신원을 조사해 최종적으로 가부 판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측과 상당한 신뢰관계를 쌓을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이철은 최종 판정을 내리기 앞서 안기부측 카운터파트에게 방북 희망인사의 인적사항을 소상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일정한 정보를 우리측에도 제공하는 공생관계에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철은 자신들에게 총격요청을 해 온 한씨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측 요원에게 “한씨가 이회창 후보의 특보가 맞느냐”고 물어 온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북한의 실력자인 장성택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라인으로 알려져 있는 이철은 남측 기업인들이 줄을 대려고 애쓴 대상이었다. 이중에는 안기부에 의해 총격요청을 공모한 것으로 지목된 (주)대호차이나 대표이자 안기부 에이전트인 장석중씨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이철이 한씨와 장씨를 배신(?)하면서까지 우리측 요원에게 관련 사실을 귀띔해 준 것은 이들보다는 우리측 안기부 요원과의 신뢰관계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안기부가 출처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이 북측 요원이기 때문이 아니고 비합법적·비정상적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안기부가 국내외 도청 또는 공개할 수 없는 해외공작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첩보를 입수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구 안기부서 은폐, 새정부 들어서며 밝혀져

    출처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된다고 해도 이같은 사실을 포착한 안기부가 당시왜 수사를 중단했느냐는 것은 보다 더 큰 의혹의 대상이 된다. 안기부는 법사위에 제출한 비공식 자료에서 지난해 12월12일 베이징에서 귀국한 한씨를 조사했으나 한씨가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바람에 수사를 중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설명은 그러나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당시 권영해안기부장이 주도하던 구안기부내 친 이회창 세력이 이같은 정보를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 “구안기부 일각에서 포착된 사실을 권 전부장을 중심으로한 별도 조직이 의도적으로 묵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때문에 이같은 사실이 덮혀 있다가 새정부 출범후 안기부의 내부 감찰결과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사실일 경우 안기부 에이전트로도 활동한 장씨는 구안기부에서 보호의 대상이었지만 정권교체후 안기부 내부의 고발자에 의해 대북접촉 행위가 노출됐을 것이란 설명도 가능하다. 안기부는 이 부분에 대해 ‘새정부 출범후 한씨가 지난해 12월 조사받을 때 임의제출한 서류 등을 정밀 검토한 결과 대선때 이회창 후보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보고서 11건과 한씨가 베이징에서 북측 요원에게 건네 준 이후보 특보임을 밝히는 명함이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첩보내용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수사재개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같은 안기부 설명은 그러나 같은 결과를 놓고 구안기부는 수사중단을, 신안기부는 수사재개를 결정했다는 것이어서 무엇인가를 얼버무리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사건의 핵심으로 다시 되돌아 오면 새정부 출범후 수사를 재개한 안기부가 어떤 방법으로 증거를 확보했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구안기부가 최초의 사건 인지시점에서 확보했던 증거는 훼손됐거나 인멸됐을 가능성도 있다. 설사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있다고 해도 안기부의 속성상 증거수집 과정에서의 문제때문에 법원에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법정서 ‘회심의 증거 카드’ 내놓을 듯

    그렇다면 이 사건의 진실성에 “200%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는 안기부가 확보한 증거는 무엇일까. 일단 안기부는 지난 3월 수사재개후 지난 8월 한씨의 친구로부터 “지난해 12월 한씨가 이회창을 당선시키기 위해 북측에 총격도발을 요청키 위해 베이징에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결정적 제보를 입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안기부 주장은 한씨에 대한 직접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안기부가 기대하는 것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안기부가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것은 한씨 등이 대선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공모하는 과정을 감청한 자료라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이 감청 자료에는 한씨의 배후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동생 이회성씨가 있다는 사실까지도 드러나 있을 수 있다. 또 이밖에 한씨 등과 이 총재 측근과의 비밀스런 관계에 대한 각종 정황증거가 안기부의 확신을 굳혀 주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태성·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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