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銃風, 공포탄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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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28 14:54:00


  •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격인가. 태산이 떠나갈듯 떠들석했는데, 잡은 것은 고작 쥐 몇마리 뿐인 셈이 됐다. 이른바 ‘총풍사건’ 의 전말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건이 종료되지 않아 무우자르듯 말하기는 어려우나, 도대체 온나라가 발칵 뒤집힐 일도, 정치판이 깨질듯 난리법석을 떨 일도 아니었음을 수사당국 스스로가 실토한 꼴이 됐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공안1부는, 여권이 이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동생 이회성씨(전에너지경제연구원장)를 소환해 조사했으나 “총격요청 사건에 개입한 단서를 찾지 못해 입건하지 않았다” 며 10월 22일 이씨를 귀가조치했다. 이씨에 대한 처리방침은 이미 그전부터 여권내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박상천 법무장관은 19일 국회 법사위원회에 참석했다가 기자들과 만나 “이회창 총재 관련 부분은 밝혀진 게 없다” 고 첫 운을 뗐다. 박 장관은 그 정도로는 미진했던지 다음날인 20일에는 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까지 (한씨 등) 총격요청 실무 3인방과 한나라당의 연계여부는 밝혀진 것이 없고, 이회성씨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을 것이며, 일단 기소대상자는 한씨 등 3명 뿐인 것으로 안다” 고 수사결과를 ‘예고’ 했다.





    높은 목청에 비해 어정쩡한 수사결과

    21일에는 신건 안기부2차장의 국회 정보위 발언이 있었다. 신 차장은 “(사건 관련자들이) 총격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총을 쏴달라고 했다기보다는 쇼라도 연출해 달라는 정도였다” 고 말했다. 신 차장의 발언은 자발적인 게 아니라, 야당측이 ‘짜낸’ 답변이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등은 “한씨 등 구속 3인에게 적용된 범죄가 당초 여권에서 언급됐던 외환(外患)유치죄가 아닌 국가보안법상의 회합죄인 이유가 무엇이냐” 고 집요하게 따졌고, 이에 법조인 출신인 신 차장이 마지못해 법률적으로 다소 어정쩡한 답변을 하게 됐던 것이다.

    사건이 언론에 첫 보도됐던 추석연휴 직전에서 시작해 이후의 전개과정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정치권에서 벌어졌던 지난 20여일간의 ‘준전쟁’ 상황은 고약한 헛소동에 다름아니었음을 여실히 확인하게 된다. 당시 언론보도의 골자는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씨가 대선직전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의 당선이 불투명해지자 청와대민정비서관 오정은씨와 함께 북풍을 기획했고, 곧바로 이후보의 비선조직과 접촉했다. 한씨는 이때 이후보의 비선조직 관계자로부터 ‘신중하게 하라’ 는 당부와 함께 여비를 받고 북경에서 북측 관계자와 만나 판문점총격전 요청을 비롯해 여러가지 북풍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문제의 ‘이후보 비선조직 관계자’ 로 이회성씨를 지목했다. “이 총재의 최측근 핵심인사가 총격요청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이후보측이 모르고 그런 일이 가능했겠느냐” “이 총재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 총재가 중간 커넥션을 두고 구속된 3인으로부터 상황을 보고 받았다는 증거가 있다” “이 총재는 정계은퇴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떠나야 한다” 는 등의 이야기가 여권의 ‘정보’ 저수지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국가전복 기도’ ‘전쟁유발 범죄’ ‘외환·내란에 준하는 반국가적 범죄행위’ 등의 극한용어들도 춤추듯 흘러 다녔다. 얼굴없는 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해방이후 처음 밝혀진 국가안보를 볼모로 한 범죄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다” 고 목청을 높였다.





    고문·도청 뒤엉키면서 사건은 ‘뒤죽박죽’

    자민련도 질세라 거들었다. 김용환 수석부총재는 “이 총재가 이제는 안보를 팔아 대통령직을 차지하려 했다는 의혹에까지 휘말렸다.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사람들이 이총재의 비선조직이든 공조직이든 이 총재의 책임” 이라고 몰아쳤다. 변웅전 대변인은 “청와대행정관이 이후보측과의 사전협의 없이 북경을 오가며 총기도발을 애원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고 이후보측의 사건연루를 기정사실화 했다.

    여권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민회의는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국세청 불법모금 사건’ ‘병역문란 사건’ 을 3대 국기문란 범죄로 규정하면서 “정치적 타협은 일절 없다” 고 선언한(10월2일) 뒤 추석연휴에 들어갔고, 연휴 마지막날인 6일에는 당 3역회의를 갖고 “이 사건은 전시상황이면 총살형에 해당되고 평시에도 사형감에 해당하는 사안” 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정 대변인은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한성기씨 등이 ‘기왕 총격을 해주되 촬영이 용이한 곳을 택해달라. 그래야 TV뉴스에 방영될 수 있다’ 고 까지 말했다. 이 사건과 국세청사건에 대해 이 총재와 한나라당은 응분의 책임을 각오해야 한다” 고 오금을 박았다. 정 대변인은 또 “이 사건의 본질은 반역성에 있으므로 이 총재와 소수 측근세력을 건전한 정치파트너로 인정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로 했다” 고 말해 이 총재 퇴출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기까지 했다.

    7일을 넘기면서 이회성씨는 물론 한나라당 박관용 의원과 이 총재에 대한 직접조사의 불가피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박 의원에 대해선 “총격요청의 대가로 북한측에 비료지원 등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는 말이 여권에서 흘러나왔고, “이씨와 박 의원 다음에는 이 총재 소환이 있게 될 것” 이란 ‘정보’ 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방일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회창 퇴출론’ 을 질책한 뒤 이 총재 개인에 대한 공격의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여기에 고문조작과 도청논란이 뒤엉키면서 사건은 머리와 꼬리가 모호한 형태로 꼬여들게 됐다. 이 와중에 당초 이 사건의 본질이자 핵심이었던 구속 3인의 배후 내지 한나라당과의 연계여부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 버렸고, 급기야는 구속 3인의 죄목마저 외환유치죄에서 단순회합죄로 쭈글어들게 됐다.





    사건 둘러싼 권력기관들의 복잡한 ‘관계’ 드러나

    총풍사건은 그 성격상 일이 매끈하게 처리됐어도 뒷말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사건진행 내내 정치판 전체가 들썩였으니 후유증이 없으리라 보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청와대-안기부-검찰간에 묘한 갈등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후일’ 을 대비한 책임소재 가려두기의 성격이 없지 않다.

    첫 언론 누설자가 누구냐를 두고 나돌고 있는 몇가지 설들 역시 그 배경은 동일하다. 안기부쪽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청와대 모수석과 비서관이 서로 다른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는 것인데, 사건 초반기엔 이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기부 고위간부 개입설이 추가로 제기됐고, 여기에 모 변호사의 발설설이 포개졌다. 설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사건을 둘러싼 권력기관간 복잡한 ‘이해관계’ 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몇몇 핵심 책임자에 대해 벌써부터 연말 경질설이 나도는 것도 이 문제가 조용히 매듭지어지기 힘들 것이란 관측의 근거가 되고 있다.



    홍희곤·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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