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국제금융시장 헤지펀드의 위기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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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29 11:31:00


  • 대서양 해상의 버뮤다 군도는 영국 자치령이지만 미국인들 사이에 인기있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10월 13일 이 섬에 미국의 헤지 펀드 매니저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헤지 펀드의 거장인 줄리안 로버트슨을 비롯, 900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는 헤지 펀드들의 단합대회였다. 로버트슨이 사회겸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타이거 펀드의 회장을 맡고 있다.

    “우리는 험난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확실하고, 여건이 금세 좋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나도 15개 타구 중에서 한번도 못친 타자나 다름없습니다. 지금은 헤지 펀드 산업이 쑥대밭이지만,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에는 다시 강해질 겁니다.”

    모두들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회의는 화상으로 뉴욕 월가 트레이딩룸에 생중계돼 헤지 펀드의 총회 성격을 띠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투기행각을 벌이며, 고수익을 올렸던 헤지 펀드들은 지난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침체에 빠졌다. 스타급 펀드 매니저, 학자들이 참여한 헤지 펀드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일부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소로스의 퀀텀 펀드는 러시아에서 20억달러의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도 러시아에서 6억달러, 10월 엔화 폭등에서 20억달러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 펀드의 본격적인 위기는 지난 9월말 ‘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에 대한 월가 은행들의 구제금융이다. 9월 23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FRB의 집행기구격인 뉴욕 FRB의 윌리엄 맥도너 총재가 내로라는 월가 은행 회장들을 사무실로 불러모았다. 뉴욕 월가에서는 뉴욕 FRB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한국이 관치 금융을 한다고 하지만, 미국도 한국에 못지 않다.

    맥도너 총재는 LTCM이 파산 위기에 몰렸으니, 은행들이 도와주라고 권고했다. 말이 권고지, 지시나 다름없었다. 체이스 맨해튼, JP 모건, 뱅커스 트러스트, 골드만 삭스, 리먼 브러더스 , 메릴린치 , 모건 스탠리 , 살로만 스미스바니 등 월가의 터줏대감들이 각기 3억 달러씩 모금했다. 독일의 도이체 방크, 프랑스의 파리바, 소시에테 제네랄 및 스위스의 UBS 등 외국은행들도 돈을 내 모두 35억달러를 만들었다. 이 돈이 LTCM 구제에 사용됐다.

    LTCM은 월가의 전설적인 채권전문가인 존 메리웨더가 창립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머튼, FRB 부의장을 지낸 데이비드 멀린스등 저명 인사와 백만장자들이 투자해 누구라도 투자하고 싶은 펀드였다. 그러나 LTCM의 무모한 투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LTCM의 몰락은 월가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노출했다.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에 지나지 않는 러시아 경제붕괴가 국제 유동성의 절반이 모여 있는 월가를 대혼란에 빠뜨린 것은 바로 투기자본의 심리적 불안정성에 있다.

    LTCM이 러시아에서 본 손해는 18억달러로 알려졌다. 파산 위기에 몰린 LTCM은 최대 채권자인 메릴린치 증권에 손을 벌렸으나, 메릴린치가 대출을 거부했다. 뉴욕 FRB가 월가의 큰손인 워렌 버핏에게 구제를 요청했으나 그마저 등을 돌려버렸다. 부실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은행이 월가 은행의 팔을 비틀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라고 요구했다.

    LTCM에 대한 구제금융은 미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지는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금융구조 개선 방식을 스스로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헤지 펀드의 위험을 지적하며, 국제 단기자금의 국제 금융시장 교란을 막아낼 방안을 찾기 위해 국제포럼 개최를 제안했다.

    피를 흘린 헤지 펀드는 LTCM만이 아니다. ‘맥기니스 어드바이저’라는 헤지펀드는 러시아 채권에 투자했다가 물려 파산 절차를 밟았으며, 플로리다에 본부를 두고 있는 ‘III 오프쇼어’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10월 중순 들어 ‘엘링턴 캐피털 매니지먼트’도 부도직전에 몰렸다. 이 헤지펀드는 미국 금리인하로 재무부 채권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반대편에 서서 투자를 하다가 큰 손해를 보았다. 월가에서는 자산 10억달러의 엘링턴이 5억~15억 달러의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자본잠식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도 돌았다. 엘링턴 펀드도 LTCM의 메리웨더와 월가에서 어깨를 겨루는 유명 채권전문가 마이클 브라노스가 운영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미국 랭킹 2위인 뱅크어메리카가 파산 위기에 몰린 ‘D. E. 쇼’라는 헤지 펀드를 지원하기 위해 3억7,200억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200억달러의 채권 포트폴리오를 매입했다. ‘D. E. 쇼’는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오판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보았으며, 뱅크어메리카는 펀드 자본금 14억 달러의 3분의1을 탕감해주는 파격적인 결정을 단행했다. 이는 한달전 월가 은행들의 LTCM 구제에 이은 두번째 구제금융이다.

    헤지 펀드 위기는 국제 금융시장의 화약고와 같다. 유명 헤지펀드들이 잇달아 파산 위기에 처하자 그동안 헤지 펀드에 돈을 묻어두었던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헤지 펀드는 3개월마다 돌아오는 분기별 결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LTCM 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헤지 펀드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에 올 연말에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헤지 펀드들은 30일 전에 자금회수를 통보하도록 돼 있어 11월말께면 자금 이탈에 의한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헤지 펀드들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려면 금융자산을 대량 매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위험성이 높은 곳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사실은 헤지 펀드들의 운영자금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어느 시장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인영·서울경제신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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