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독일 '베를린 시대' 개막... 유럽맹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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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14 11:49:00


  • 2000년을 맞아 독일은 베를린 시대를 새롭게 연다. 신베를린 시대의 주인공은 전후 세대로는 최초로 총리가 된 게르하르트 슈뢰더이다.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는 9월27일 총선에서 16년을 집권한 헬무트 콜 전 총리의 기민·기사당 연합을 패배시키고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수도, 새로운 총리를 맞게 되는 독일은 명실공히 유럽의 맹주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제 4제국의 꿈’ 을 실현시킬 기회를 맞게됐다. 99년 현재의 수도인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 이전이 완료되면 독일의 중심축은 동·서유럽의 중심이자 구동독지역의 심장인 베를린으로 옮겨가게 된다. 수도 이전이 단순한 지리적 이동만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심리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 슈뢰더는 유럽과 동·서독 통일의 중심인 베를린에서 21세기를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슈뢰더, 역사적 짐 없는 홀가분한 행보

    헬무트 콜 총리는 통일을 이뤘지만 냉전시대의 정치가였고 냉전시대의 독일은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원죄’ 를 지니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제2차대전을 일으켜 유럽 각국을 침략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으며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는 등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전후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맞게 됐으며 서독은 본을, 동독은 베를린으로 수도로 삼아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후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 유럽에서 경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정치·외교적으로는 항상 가해자로서 과거의 죄의식에 빠져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피해를 주었던 유럽각국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콜 총리 역시 2차대전 당시 소년병으로 참전, 전쟁의 참화를 경험했고 이 때문에 필생의 목표가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통합을 통해 다시는 독일이 과거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유럽의 맏형’ 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슈뢰더는 종전 당시 겨우 한 살이었고 나치 독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않다. 아버지가 루마니아 전선에서 사망했지만 슈뢰더에게는 개인의 가족사일 뿐 국가의 잘못이나 나치가 자행했던 범죄에 대한 원죄 의식은 없었다. 콜 총리는 통일을 이뤄내기위해 끊임없이 국제사회에 과거의 잘못을 빌어야 했지만 슈뢰더는 콜 총리로부터 유럽의 최강국인 통일독일을 물려받았다. 이런 점에서 슈뢰더 차기총리는 콜 총리보다는 훨씬 과거로부터 자유롭고 국제사회에서 힘에 걸맞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통일독일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있다.

    슈뢰더는 특히 내년 1월 1일부터 출범하는 유럽통화동맹(EMU) 체제하에서 유럽을 선도하는 역할을 할 독일의 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또 좌파정당들이 대부분 유럽각국에서 정권을 잡는 추세로 볼 때 사민당 출신의 슈뢰더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더욱 목소리를 높힐 수 있게 됐다. 슈뢰더는 68학생운동 세대의 지도자로서 유럽연합(EU) 각 회원국 정상들과도 일정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슈뢰더는 또 EU의 최대 난제중 하나인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모범적 선례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세계공황에 의해 가속화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기위해 부의 평등분배를 주장해왔다. 또 대량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 동맹’ 을 추구해왔다.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와는 다른 발상이다. 경쟁력강화와 고용증대는 모순관계가 아니며 고용창출을 통한 복지정책의 강화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중도’ (Neue Mitte)를 통한 그의 정책목표는 현재 유럽 각국이 추진하는 노선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녹색당과 연정 환경문제 최우선 정책으로

    슈뢰더 정권의 또 다른 특징중 하나는 21세기를 맞아 인류의 가장 큰 적으로 등장한 환경오염문제를 철저하게 막고 자연을 보전하자는 녹색당과의 연정을 꼽을 수있다. 이미 프랑스의 사회당 정권도 녹색당에게 각료직을 내주었듯이 독일도 환경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녹색당이 정권의 한 축이 됨으로써 유럽에서 환경운동이 정치적으로 한단계 발전해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기여할 수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슈뢰더 정권은 2000년에 통독 10주년 기념식을 베를린에서 행할 예정이다. 콜 총리는 통일을 이뤘지만 정작 통일의 수혜자인 동독인들로부터는 외면당해왔다. 콜이 이끌었던 기민당은 구동독지역에서의 선거에서 비참할 정도로 패배했다. 수도 베를린시과 브란덴부르크주, 작센-안할트주에서는 단 한곳의 지역구 승리도 따내지 못했다. 통일을 이루었던 8년전만해도 콜 총리는 구동독지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급속한 통일에 반대했던 사람들조차도 “그가 아니었더라면 통일이 한참 뒤에야 이뤄졌을 것”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콜은 통일을 실질적으로 이루기위해 구동독지역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독일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구동독 경제부흥정책으로 통일 이후 지난해까지 약 1조1,000억마르크(한화 약 825조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이는 2차대전후 구서독에서 경제기적을 이루기 위해 투자된 액수보다도 50%이상 많은 것이다. 세제지원은 투자보조 220억 마르크, 특별세금공제 470억 마르크에 달했으며 이같은 세제지원이 약 5,100억 마르크의 민간 투자를 유발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90년이후 구동독지역에 투입된 산업설비투자의 75%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대금리 등 금융지원을 통해 이루어진 투자는 1,760억마르크에 달했다.





    동·서독 주민들의 실질적인 통합에 애쓸 듯

    독일정부는 또 산업기반시설 개선에 1,620억마르크, 철도 도로 등 교통부문에 760억마르크를 투입했으며 국영 전화회사 ‘도이체 텔레콤사’ 는 통신 인프라 구축에 500억마르크를 사용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통일이후 지난해까지 구동독지역에는 모두 51만여개의 기업이 설립돼 약 32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 하지만 콜은 통독된지 상당기간이 지나면서 이같은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구 서독지역과의 격차에 실망한 구동독주민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물론 각종 경제수치를 볼때 동서독간의 경제적 격차는 통일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제도적으로도 구동독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 경과조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통합이 이루어졌음을 알수있다.

    그러나 구동독지역의 경제성장률은 94년 9.6%를 정점으로 둔화하기 시작, 96~97년에는 1%대로 하락했으며 구동독지역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구서독지역의 74.3%까지 상승했으나 노동생산성은 60.4%에 머무는등 기업의 투자여건은 아직 취약한 상태이다. 이 때문에 구동독지역의 실업률은 구서독지역의 2배인 18%에 육박하고 있다.

    구동독지역 주민들은 이제 슈뢰더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다. 슈뢰더는 총선에서 승리한 뒤 구서독의 반세기 민주주의와 통일을 이룰수 있도록 선도한 89년 구동독주민들의 용기를 융화시켜 독일을 번영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민당은 선거공약에서 “사회·경제적 분야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진정한 통일은 없다. 구동독 주민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어야만 그들이 89년외쳤던 자유를 성취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사민당은 “우리의 목표는 동독지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 지역의 재건은 동·서독 주민 모두의 연대를 요구하는 국가적 과제” 라면서 “새롭고 경쟁력있는 일자리를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 이라고 강조했다. 슈뢰더와 사민당의 약속은 구동독지역 주민들이 그동안의 소외감에서 벗어나 동·서독 통합의 장기과제인 심리적 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슈뢰더는 베를린 공화국 시대를 열면서 대내적으로는 동서독 주민의 통합과 대외적으로는 유럽의 통합을 주도하면서 21세기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비젼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장훈·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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