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피노체트 전격체포 "독재의 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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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28 15:01:00


  • “칠레에서 나뭇잎 하나라도 내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지난 73년 쿠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90년까지 칠레를 철권통치하며 인권탄압을 자행한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2)가 10월 16일 신병치료차 머물던 영국에서 전격 체포됐다.

    피노체트의 체포는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들이 이 세계 어디든 더이상 도망할 곳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3년 발효된 유엔인권협약이나 테러에 관한 유럽협약 등에 따라 세계 각국이 인권외교 차원에서 독재자나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 등을 관련국에 인도하거나 국제전범재판소등에 넘겨 처벌하고 있다. 인권관련 조약은 고문이나 집단학살 및 기타 인권관련 범죄와 관련있는 용의자의 체포를 쉽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보스니아에서 ‘인종청소’ 에 가담한 세르비아 전범들이 체포돼 처벌을 받고 있다.

    피노체트는 집권초기 사회주의 정권 당시의 혼란을 안정시켜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상황이 안정되면 자신은 물러날 것이라고 국민에게 거듭 약속한 바 있으나 권력기반을 확보하자 의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행위를 금지했으며 좌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전개하는 등 본격적인 독재체제 구축에 나섰다.





    퇴임이후 대비도 허사. 병실에서 체포

    그는 경제건설과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칠레를 보호하는 것을 명분으로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다. 피노체트 집권 기간중 적어도 3,197명이 살해됐으며 1,000여명이 실종되고 수십만명이 체포되거나 고문을 당하고 혹은 외국에 망명했다. 경제위기가 심화됐던 80년대 초반 거리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피노체트는 수천명의 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시민이 희생되기도 했다.

    피노체트는 88년 자신의 집권 연장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압도적으로 부결된후 할 수 없이 89년 12월 19년만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돼 피노체트는 90년 3월 퇴진하고 칠레는 16년만에 민정에 복귀했다. 피노체트는 그러나 지난 80년 개헌에서 자신이 98년까지 군총사령관직에 머물고 그 이후에는 면책특권이 부여된 종신 상원의원직을 보유하도록 규정해 놓아 퇴임 이후까지 대비해 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처럼 자신의 신변안전에 대해 철저한 대비를 해온 피노체트가 어떻게 영국경찰에 체포됐을까. 피노체트와 수행원 등 일행은 9월 21일 칠레 산티아고를 떠나 영국에 입국, 런던의 특급호텔인 파크레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들이 런던에 도착한 같은 주에 피노체트의 딸 루시아가 일행에 합류했다. 과거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로 전쟁을 한 영국을 지원한 바 있는 피노체트는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각별한 사이였으며 영국을 안식처로 생각하면서 영국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허리 디스크로 몸이 안좋은 피노체트는 지난달 30일 진찰을 받고 9일 런던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고 있었다. 피노체트의 행적을 추적해온 발타자르 가르손 등 스페인 치안판사들은 14일 인터폴(국제형사기구)을 통해 런던 경찰에 피노체트 신문 의사를 밝히고 긴급 수배와 출국 금지를 요청했다. 런던경찰은 내부 논의를 거친 후 16일 저녁 외무부 의전과와 접촉해 피노체트가 면책특권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날 밤 수사관들을 피노체트의 병실에 보내 그를 전격 체포했다.





    수천명 납치·고문·살해 혐의

    스페인 사법당국은 96년부터 피노체트 군사 정권하에서 자행된 칠레의 스페인 국민을 살해, 고문, 실종 사건을 집중 조사해 왔다. 그는 칠레에 거주한 80명의 스페인 국민을 포함해 약3,000명의 살해및 실종사건과 관련, 대량학살혐의를 받고 있다. 영국이 스페인 사법당국의 피노체트에 대한 체포 요청을 수락한 것은 유럽연합(EU) 회원국간 협조를 규정한 유럽협약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대해 칠레 정부는 17일 피노체트 상원 의원 체포는 외교 면책특권을 무시한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하고 영국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그러면 피노체트는 과연 역사적인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게될 것인가. 영국은 피노체트를 서둘러 스페인 사법당국에 넘기려 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신병이 인도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피노체트의 처리문제는 그를 체포하도록 요청한 스페인 사법당국이 영국에 신병인도를 요청해야 하는데 스페인 치안판사들은 체포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영국 내무부에 피노체트를 넘겨주도록 요청해야 한다.

    피노체트의 신병인도요청이 전달되고 나면 영국법원의 심사를 거쳐 다시 내무부로 넘겨지며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이 신병 인도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스트로 장관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면 신병인도건은 공식화되지만 피노체트측은 이에 대해 법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있다. 피노체트가 이의를 제기하면 신병인도건은 영국 고등법원으로 이관되며 변호사들은 피노체트의 신병인도 보류, 취소 또는 제3국 추방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피노체트는 영국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다. 또 영국 고등법원이 피노체트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는 영국의 최고사법기관인 상원의 결정에 다시 한번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스페인으로 신병인도까지 수년 걸릴수도

    최근의 다른 사례들을 보면 피노체트의 신병인도까지의 과정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지난 95년 파리의 폭탄테러사건의 용의자인 알제리인 무스타파 부타르파의 경우, 2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지난 3월에야 프랑스측에 인도됐고 3년 전에 체포됐던 그의 공범 라치드 람다의 인도문제는 현재 상원에 계류중이다.

    피노체트가 스페인 사법당국에 넘겨지면 94개 항목의 범죄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게된다. 스페인의 가르손 치안판사는 이미 피노체트의 범죄혐의를 적시한 18쪽 분량의 문서를 영국에 보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피노체트는 군대와 비밀경찰을 동원해 수천명의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납치, 고문, 살해했으며 48년의 학살에 관한 협약을 포함해 각종 국제규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외교적 면책특권이나 정치적 망명을구할수 없으며 세계 각국은 그의 범죄행위를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법학계는 대부분 칠레측이 주장하는 피노체트의 외교특권을 부인하고 있다. 피노체트가 칠레정부의 외교관 여권을 소지했지만 영국정부에 주재하거나 다른임지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국 정부의 사전 협약이 없는 한 영국정부가 그에게 외교특권을 부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이다. “외교특권과 면제는 개인에게 이익을 주려는 데 있지않고 외교임무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려는 데 있다” 고 규정한 빈 협약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국제법은 전직 국가원수도 재임중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고 있다.

    피노체트 사건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던 독재자의 말로도 이처럼 비참해질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이장훈·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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