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전시] 찬란한 문화, 발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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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21 15:01:00


  • 우리 역사에서 잊혀지다시피한 나라 발해(渤海).

    그 발해 건국 1,300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발해를 찾아서’ 를 기획전시하고 있다. 11월 29일까지.

    전시품은 서울대 숭실대 영남대 박물관, 고려학술문화재단, 일본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품과 중국 출토유물 복제품 등 모두 150여점. 화려한 문화를 자랑해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일컬어졌던 발해의 면모를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발해는 현재의 영토상 중국과 러시아에 걸쳐 있어 두 나라 모두 발해를 자국 소수민족사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한국, 북한과의 영토 문제 때문에 고구려와 함께 발해 문제에 대해서는 유물 반출을 금하는 등 상당히 예민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전시유물 중에서 중국 출토품은 실물이 아닌 복제품이거나 사진자료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발해 연구는 연구인력이 매우 적고 유적지가 주로 중국쪽에 밀집해 있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발굴 유물 유적 등 1차 자료를 중국측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지 30년 후인 698년 고구려 장군이었던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건국했다. 당시 피지배층은 대부분 말갈족(현재의 만주족 계통)이었다. 발해는 230년 가까이 통일신라와 남북국 형세를 이뤘다. 전성기의 영토는 통일신라의 4배. 15명의 왕을 거쳐 926년 1월 거란족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에 따르면 발해의 중심지는 만주 동부 지역으로 오늘날의 연변조선족자치주가 대체로 이에 해당한다. 전성기에는 영역이 동쪽으로 연해주, 서쪽으로 요동반도, 북쪽으로 송화강까지 미쳤고 남쪽으로 대동강과 용흥강(금야강)을 잇는 선을 경계로 신라와 접경했다.

    발해가 멸망한 뒤 거란은 이곳에 동쪽 거란국이라는 뜻으로 동단국(東丹國)을 세웠다가 928년에 요동지방으로 옮기면서 발해 유민들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후 유민들은 각지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킨다. 이들의 저항은 멸망후 200여년이 지난 뒤까지 계속됐다. 유민중에는 거란 지배층에 참여한 부류, 거란과는 반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면서 점차 여진족으로 변화해간 부류, 고려로 망명한 부류도 있다. 발해인들은 멸망 직전 시작해 이후 30여차례에 걸쳐 수만명이 고려로 들어왔다. 현재의 태(太)씨는 바로 발해 왕실의 후예다.

    이광일·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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