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책축제도 불황앞에선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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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21 15:10:00


  • “누구나 프랑크푸르트로 올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이곳으로 오기 때문이다.”

    올해로 꼭 반세기를 맞이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위원장 페터 바이다스)주최측이 낸 보도자료에 들어있는 말이다. 10월 6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이 도서전은 그 오만함에 걸맞게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장 면적만 17만9,000여㎡로 축구장 25개만한 넓이다.

    이곳에는 매년 100여개국에서 1만개에 가까운 출판사가 참여, 30여만종의 책을 전시한다. 전세계 도서 저작권의 25% 정도가 이곳에서 사고 팔린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출판사로선 여기서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느냐에 따라 세계 출판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지고 무엇보다 한해 장사가 결정된다. 특히 70여개국은 국가관을 설치, 자국 출판산업을 비롯한 문화 전반을 홍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종의 문화전쟁터인 셈이다. 비슷한 종류의 국제도서전이 여러 개 있지만 비교가 안된다.

    물론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지는 7일자 기사에서 도서전이 잘 나가는 상품만 계속 잘 나가게 하는 ‘터보 자본주의’ 의 축소판이라고 비판했다. 출판사들의 시장터, 국가간의 파워게임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100개도 안되는 서구 메이저 출판사들의 잔치라는 비난을 매년 들어왔다. 한국·일본·중국을 비롯, 비서구권의 국가관은 맨 구석에 쳐박혀 있고 소수 언어권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 모든 비판에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권위를 부인하긴 힘들다. 그것은 외형적인 규모보다는 전통과 정신에서 나온다. 이 도서전은 박해받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책을 출판해준 유일한 곳이다. 올해의 표어도 ‘집필의 자유, 출판의 자유’ 다.





    500년 전통 뒤덮은 짙은 ‘불황의 그림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시작은 15세기초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 발명 이후 ‘뷔혀 메세(책 시장)’ 란 이름으로 인쇄업자와 작가들이 모이면서부터. 조그만 전시회에서 출발했지만 2차대전때를 제외하곤 5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다. 전후인 49년 독일의 출판업자와 서적 업자들이 모여 다시 개최한 것을 계기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올해는 유례없이 썰렁한 분위기였다. 전통도 경제불황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50주년을 맞이했다는 축제 분위기는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저작권 주요 수입국인 아시아권의 경제 위기 때문에 출판 계약도 저조했다. 참여한 출판사 숫자도 줄었다. 97년엔 107개국 9,600여개사 참가했으나 올해는 105개국 6,700개사였다. 그중에서 독일 출판사가 2,500여개사에 달한다.

    참가한 출판사도 지난해보다 부스 크기를 줄인 곳이 많았다. 이런 현상은 아시아, 아랍 국가 등이 몰려있던 9관에서 두드러졌으며 특히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사태를 맞고 있는 러시아는 빈 부스가 눈에 띄게 많았다. 매년 30만명을 넘던 관람객도 올해는 21만명이 고작이었다. 부대 이벤트 행사의 부족, 대형작가의 참여도 저조 등도 전시장을 썰렁하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

    출판 관계자나 저작권 에이전시들은 “굳이 비싼 비행기 타고 전시장을 찾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저작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정도가 심하다” 면서 “올해는 7∼8년전보다 부스가 한산한 것 같다” 고 입을 모았다.





    전자출판물 이외에 특징적인 경향 없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설적이게도 ‘특징적인 흐름이 없다’ 는 것. 93년 ‘프랑크푸르트는 전자시대로 간다’ 는 슬로건을 내걸고 특별관을 설치한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전자출판물을 빼고는 눈에 띄는 경향을 잡아내기 힘들었다. 일각에선 이런 현상을 새로운 밀레니엄(천년)을 앞두고 나타나는 정신적인 공황상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전자출판물의 강세를 인문학의 퇴조, 사상사의 위기로 연결지을 수 있을까. 물밑에 흐르는 모색들은 국내 일각의 호들갑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도서전은 오랜 방랑 끝에 자기 길을 찾은 나그네를 연상시켰다. 종이출판과 전자출판, 인문학과 자연과학,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모색하는 움직임들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올해 전자출판관에 참여한 출판사 수는 240여개사로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이는 전자출판의 퇴조가 아니라 종이책과의 동거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CD롬, 인터넷 등 뉴미디어와 종이책을 결합한 새로운 도서를 선보인 출판사는 올해 1,700여개사에 달했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통해 언어를 배우도록 한 CD롬, 3D 입체영상을 이용해 인체를 해부하는 의학책, CD롬 백과사전 등은 서구 출판사들이 전자도서와 종이도서를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배우려는 움직임

    ‘모든 미래는 머리에서 나온다.’

    미래관 입구에 걸려있는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의 말이다. 이곳에선 새로운 밀레니엄을 2년 남짓 앞둔 지금, 인류의 과거를 더듬고 미래를 조망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이는 자연과학이 비대해지는 현상을 경계하면서 철학, 인문학, 역사 등을 한꺼번에 아우르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11∼12세기 당시의 미래서도 출판되고 있어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배우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도서전에 참여한 푸른숲 출판사의 박영구 기획위원은 “세기말이나 미래 관련서를 보면 인문과학이나 생명과학, 첨단과학을 하나로 모으려는 노력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 밝혔다.

    올해 우리로선 나름대로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참가 38년만에 처음으로 정부 지원금으로 국가관을 열었다. 다른 나라들은 규모를 줄이는 판에 한국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원 17개사가 참여, 50여평 규모의 부스를 만들었다. 출판인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08년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유치도 뜻밖의 성과다.

    또 출협측은 책 표지에 영문해설을 수록하거나 리셉션 마련, 가야금 공연 등 이벤트성 행사를 준비해 외국인들의 눈길을 끌려고 했다. 태극 문양의 부스도 한국적인 미를 잘 살린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저작권 판매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영진출판사는 컴퓨터책 ‘비주얼 베이직 바이블’, ‘윈도우즈 프로그래밍 바이블’ 을 각각 미국, 인도 출판사와 계약했다. 한울도 ‘경제대공황과 IMF’ 를 중국 상하이대학과 계약했고 ‘인동초가 피기까지’ 를 일본 출판사와 가계약했다. 시공사는 만화 ‘모범생’, 고려원은 ‘8체질 건강법’ 등을 팔았다.





    “한국적 색깔 보여주는 독특한 포맷이어야”

    그러나 이번 도서전은 한국 출판계가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문화와 전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문제의식 없이 단순한 도서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는 데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존 그리샴의 소설은 왜 전시했는지 모르겠고 서구사상을 번역한 인문서들도 문화적 종속성을 보여줄 뿐이었다. 문화적 격차나 언어의 벽 때문에 한계가 지워진 마당에 서구 흉내만 내려다간 눈길조차 받지 못할 게 뻔하지 않은가?

    또 온라인 출판물, 디지털 정보, CD롬 등 차세대 출판매체에 대해선 밥그릇을 빼앗는 적으로만 여길 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자세가 부족했다. 예를 들어 대하소설 ‘태백산맥’ 에 삽화를 넣어 CD롬으로 만들 생각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어린이그림책, 만화, 화보집 등 이른바 ‘돈이 되는’ 테마관에선 금성사를 제외하곤 진출도 못하고 있어 한국출판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출판 에이전시들은 “분단 문제나 태권도 관계서적을 찾는 외국인이 많았다” 면서 “한국의 순수 문학작품이나 동양사상의 지혜를 담은 CD롬 등 한국적 색깔을 보여주는 독특한 포맷이 아니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저작권 수입국일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일개 출판사 차원에서만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정부차원의 지원도 촉구했다.

    최형욱 서울경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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