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영화] 불안감 못떨친 '처녀들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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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0.14 14:48:00


  •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가지다. 영상 대사 연기 음악 효과 조명이 어우러져 하나의 영상예술로 나타난다. 물론 영화의 중심은 영상이다. 그러나 때론 영상보다는 소리로, 움직임 보다는 정지된 느낌, 인물보다는 빛이나 특수효과, 음악이 도드라진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뮤지컬’이니 ‘SF물’이니 하는 단순한 장르 특성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타르코프스키나 키에슬롭스키, 앙겔로플로스 감독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예술영화들이 영상에 의한 철학과 사색이라면, 프랑스 코미디는 무성영화시대 채플린의 희극을 연극적 언어로 변주시켜 풍자와 페러디를 자아내고, 논리와 추리를 동반하는 법정드라마는 영화의 또 다른 한 갈래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영화가 무엇을 애기하고자 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말의 영화다. 한집에 사는 세명의 여주인공이 저녁식사자리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움직임과 트릭이 없이 비춰주는 영상은 말하는 인물이 누구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를 확인하는 역할 정도다. 다분히 연극적인 전략은 영화가‘여성의 성에 관한 여성 자신들의 논의’라는 점에서 합당한 선택이다. 단순히 시각적 노출이 어렵고, 영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갖는 사회성 때문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처럼 젠더(Gender)가 아닌 육체적 섹스(Sex)로 시각을 좁혔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의 시각안에 있고, 남성과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 그것을 먼저 언어로 드러냄으로써 여성의 성에 대한 은밀한 엿보기를 벗어나려 한다. 영화는 구체적 묘사보다는 언어에 의한 풍자성과 비판성으로 오히려 쑥스러움을 씻어낸다. 그리고 언어는 마지막에 가서 행동(영상)으로 보여지는 결론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호정(강수연)은 자유로운 섹스관을 가졌고, 연이(진희경)는 섹스상대와 결혼해야 한다는 상대적 보수주의자. 순이(김여진)는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무경험자이다. 그들의 입에서 섹스의 느낌과 욕구, 자위행위, 결혼관이 꾸밈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자리에 남자인 영작(조재현)이 늘 끼어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얘기가 여자들만의 은밀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영화는 서로 가치관이 다른 세 여자의 행동과 갈등,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다. 자유분방한 호정은 무시했던 진정한 사랑과 섹스의 가치를 깨닫고, 남자에게 의존하던 연이는 주체적인 섹스를 통해 비로소 기쁨을 느끼며, 억제된 욕구를 임신으로 연결시키는 순이의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영화는 가장 좋은 무기와 전략을 갖고도 그것을 끝까지 활용하지 못했다. “혹시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따분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가장 상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정사장면을 무절제하게 반복했다. 결과는 오히려 상투성으로 비상업적이 됐고, 재치있는 언어로 시작해 실체로 마무리 되는 구도까지 흔들어 버리는 아쉬움을 남겼다.



    김민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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